posted by jogaq 2022. 11. 20. 22:04

집 안에는 고무나무 외에는 생활의 냄새를 풍기는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개인적인 정보로 연결될 것은 모조리 처분했다. 서랍은 모두 텅 비었다. 내일이면 나는 이미 이곳에 없다. 떠난 자리에는 내 기척 하나 남아 있지 않으리라.

 

 올해 여름은 힘들었다. 뭔가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그냥 더워서 힘들었다. 작년 여름도 힘들었다. 힘들기 싫다. 모기도 많다. 건물 안에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여름 모기가 10월 중순인 지금까지 날아다닌다. 가을 모기라고 해야 하나?

 

 에어컨 바람 빵빵한 곳에 의자 갖다놓고 앉아 핸드폰이나 보는게 낙이었다. 모바일 게임을 한다 치더라도 몇 시간씩 계속 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 보는건 이제 웹진의 게임 소식이다...

 

 늦여름의 독일 쾰른메세에서 온오프라인으로 게임스컴이 열렸다. 여러 신작 게임들이 출시되거나 발표되는 가운데, 눈길이 끌린 타이틀이 하나 있었으니, 무빙 아웃 2 되시겠다. 이번에 처음 발표되는 것 같은데, 출시는 2023년이고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다.

 

 왜 내 눈길을 끌었느냐, 우리가 예전에 시도했던 4인 무빙아웃호가 캠페인 절반도 가지 못하고 침몰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작이 이미 반이거늘 그 나머지 반을 가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지. 물고기 밥이 되어버린 그 배는 내버려두고 올해 가을 새 배를 띄우기로 했다.

 

솔직히 3은 안 나올 것 같다

 

 무빙 아웃은 SMG studio 개발의 카우치 코옵이다. Team17이 배급인데, 여긴 오버쿡드의 배급사이기도 하다. 캐주얼하고 선명한 색감의 3D 그래픽, 물리 기반, 4인 로컬 코옵이라는 면면마다 오버쿡드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 배급은 같아도 개발사는 다르다. Team17이 게임의 개발에 어느만큼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는 알 것 같다.

 

 그래도 무빙 아웃이 오버쿡드에서 받아온 "영감"을 아주 게으르고 뻔뻔한 형태로 재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출시 예정의 모바일 게임 무경서열이 인디게임 배드 노스에서 어떤 식으로 "영감"을 받은지와 비교해보면 아주 명확하다. 무빙 아웃이 고대로 빼다박은 게임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엄청 다르다.

 

 카우치 코옵이 가능한 것과 카우치 코옵에 최적화된 것은 다르다. 로컬 코옵을 지원하는 시늉만 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로컬로 모여서 하는게 아니면 좀 그런 게임도 있다. 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나 인디비지블이 그렇다. JRPG주제에 로컬 코옵을 지원하는데, 이걸 정말 누가 재미있다고 돌리나 싶다. 반면 무빙 아웃은 싱글로 하는 게 반쪽짜리인 게임에 속한다.

 

리모트 플레이 최고~

 

 이삿짐 센터의 직원이 되어 물건을 나르는 게임이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서도 할 수 있지만, 혼자는 재미없고 4인을 채우는게 낫다. 키보드도 되고 패드도 된다. 온라인 멀티는 안된다. 장르부터가 카우치 코옵이지만 자체적인 온라인 멀티가 없어서 아쉽다는 것이 뭔가 미묘하긴 하다. 그래도 스팀에서 리모트 플레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나름의 보완은 되는 셈이다.

 

 메인 캠페인은 30개 레벨(맵)이 준비되어 있고, 따로 빠져있는 보너스 스테이지가 몇 개 더 있다. 각 레벨마다 달성 수준에 따른 메달이 세 개(금은동) 있고, 귀찮은 걸 시키는 추가 목표가 3개 있다. 금메달을 많이 따면 기분이 좋고, 추가 목표를 많이 깨면 보너스 레벨이 열린다. 보너스 레벨은 기본 캠페인 레벨이랑은 설계 방향이 다른, 특이한 맵들이다. 쉽게 생각해서, 메인 캠페인이 짐 나르는 게임이었다면, 보너스 레벨은 짐 멀리 던지는 게임이다.

 

마치 인간 경마

 

달성한 보너스 목표가 몇 없어 많이 해보진 못했다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레벨이 시작되면 전체 맵을 한번 쓱 훑으면서 다수의 지정 이사 물품을 비춘다. 이후 물건들을 모두 이삿짐 트럭으로 영차영차 옮기면 클리어다. 옮겨야 하는 물건의 형태는 여럿 있지만, 유형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로, 혼자 옮길 수 있는 짐과 둘이서 옮겨야 하는 짐으로 나뉜다.

 

 짐은 혼자 혹은 여럿이 들어서 던질 수 있는데, 무거운 물건은 두 명이 합을 맞춰서 던져야 제대로 날아간다. 사실 이 게임의 "코옵" 부분은 이 "두 명이 합을 맞춰 짐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후술한다.

 

 이삿짐을 트럭에 집어넣는 것도 일이다. 물건을 별 생각 없이 짐칸에 던져넣었다가, 용량 초과로 삐져나오고 굴러떨어지는 것이 예사다. 물건을 다 옮겨놓고도 여기에 시간을 낭비해 메달의 랭크가 하나씩 깎이곤 한다.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두지 않으면...

 

이렇게 하나가 자꾸 짐칸에 안들어간다

 

 조작하는게 재미있는 게임이고, 주어지는 과제는 오버쿡드와 비교해 덜 복잡한 편이다. 레벨을 클리어하는 전체 과정은 주어진 과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의 반복이다. 오버쿡드를 비롯한 다른 카우치 코옵을 같이 놓고 이야기해도 얼추 맞는 이야기다.

 

 이 두 게임은 하나의 과제를 복수 인원이 나눠서 수행하는 것으로 더 효율적인 해결이 가능하게끔 만듬으로서 카우치 코옵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전체 과정을 어떻게 분할할 것이고 누가 어떤 부분에서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중요하고, 이후 그것의 실제 실행은 비교적 부수적인 면모가 있다. 시작이 반이니, 나머지는 총합해도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오버쿡드에서 식사 제조라는 하나의 과정은 작고 다른 여러가지 작업으로 나뉠 수 있었다. 쌀 끓이기, 패티 굽기, 또띠아 조립하기, 설거지 등. 그리고 나뉘는 각 부분은 맵 디자인에 따라 다른 부하(장애)가 삽입됨으로서 각 레벨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무빙 아웃의 경우 각각의 짐에 대한 전체 과정은, 짐을 원래 놓여있던 위치에서 트럭까지 옮기는 것이 전부이다. 이 게임의 협동은 2명이 붙어야 하는 물건에, 어떤 식으로 들러붙어서 좁은 코너나 구석, 장애물 따위를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며, 이러한 하나의 과정은 외부 영향 없이 분할되지 않는다.

 

 때문에 각 과정의 분할은 맵 디자인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여기엔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이 절약되었다면 캠페인 레벨이 몇개 더 많지 않았을까? 싶지만 결과물이 충분히 괜찮으니 문제삼을 부분은 아니겠다.

 

 오버쿡드와 무빙 아웃이 이것을 조성하는 데 있어 가지는 차이는 이러한 분할이 "과정" 자체에 내재하고 있어 그것이 자연스럽게 동작하는지, 아니면 이러한 분할이 오롯이 맵 디자인에 의존하고 있는지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분업에 얼만큼의 강제성이 있는지에 대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삶든 굽든 자르든 뭘하든 기다리는데 한세월, 자연스레 다른 파트를 돕게 된다

 

혼자하나 여럿이 하나 비슷한 느낌

 

 그렇기 때문에 무빙 아웃에서 분업의 동기는 플레이어의 기록 개선 의지가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있다. 금메달을 따고자 한다면 어떻게 어떻게 더 최적화를 해 보겠지만, 동메달만 따고 넘어가려고 하면 적당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차례대로 트럭에 싣기만 해도 깨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분업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분업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으니, 오버쿡드에 비해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지 아닌지는, 독립된 플레이어 집단의 역량에만 달려있는 것으로, 개별 플레이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겠다.

 

 다시 얘기하자면 오버쿡드는 플레이어의 분업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도록 작업의 디자인에서부터 유도하고 있으나, 무빙 아웃은 그 내재성이 약한 대신, 짐 하나하나의 운반에 대한 조작 협동에서 물리 엔진의 힘을 빌어 원초적인 재미를 준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분업을 위해선 스코어 갱신에 대한 플레이어 각자의 자발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맵이 복잡해져도 그냥 들고 나르기만 하면 땡

 

금메달 단 하나

 

 그러나 과제의 해결 과정을 다양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은 재미있다. 또한 기반 물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게임이라, 나쁘게 얘기하자면 엉성하고, 좋게 얘기하면 공략의 성패와 관계없이 재미있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 개개인의 조작 능력이 크게 반영된다.

 

 말하자면, 생각을 안 하면서 깨려고 하면 안 할 수 있는 게임이고, 그런다고 엄청 재미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좀 더 성취감 있고, 도전의식이 고취되는 경험을 원한다면, 그럴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이 가능한 환경을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게임을 해야한다는 것이 맹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치 코옵 중에서 간단히 하기 좋은 접대 게임을 고른다면,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오버쿡드보단, 대충 어떻게 열심히 나르기만 하면 이런저런 사고가 나도 재미로 넘기고 클리어할 수 있는 무빙 아웃이 더 나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어떤 식으로 분업하면 될지 대강 짐작이라도 되는 오버쿡드보다는, 분업의 답도 안보이고 조작도 까다로운 무빙 아웃이 더 어려웠다.

 

 그래픽은 깔끔하니 이쁜 편이다. 텍스쳐가 간단하고 색감이 화사하니 도트를 보는 것 같다. 음악도 꽤 괜찮았다. 이래저래 비주얼의 부분에서부터 카우치 코옵이랑 잘 어울려서 경험이 만족스러웠다.

 

캐릭터도 나름 커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