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3. 1. 28. 06:12

三人成虎

 

 Evan's Remains는 어드벤쳐 퍼즐 게임이다. 스토리 중시형 게임이다. 하는 감각은 옜날 쯔꾸르 게임들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 Evan이라는 이름의 천재가 실종되어 유관 단체에서 찾고 있는데, 어느 날 태평양의 한 무인도로 찾아오라며 편지를 보냈다. Dysis(표지의 관광지룩 장발녀)는 이 편지에서 호출된 여성으로, 동료 Nikola의 원격 도움을 받아 섬을 탐색하게 된다...

 

 구성은 대충 퍼즐 3에 컷씬 7이다. 퍼즐과 스토리가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구색 갖추기 수준이고, 스토리 전체 진행은 컷씬에서 한다. 넘기기 키(엔터였는지 스페이스바였는지 그새 까먹었다.)만 탁탁 누르다 보면 넘어간다.

 

 Evan's Remains의 퍼즐은 1종이다. 하나의 기본 규칙이 반복되며, 새로운 기믹 서너개가 전체 게임에 걸쳐 서서히 추가된다. 퍼즐의 기본 규칙은 단순하다. 플레이어는 사이드스크롤 점프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대부분의 발판은 한번 밟은 뒤, 표면에서 점프하면 비활성화된다. 표시된 특정 발판을 밟으면, 모든 비활성 발판과 활성 발판의 상태가 역전된다. 여러 개의 발판을 순서대로 밟았다 말았다 한 다음, 개별 퍼즐에 클리어 기준이 되는 특정 구간을 넘기면 해당 퍼즐은 클리어다.

 

첫인상은 좌우로 안 돌아가는 페즈를 보는 느낌이었다.

 

흔한 느낌의 플랫포머 퍼즐. 초록색 막대기를 넘어가면 클리어다.

 

 게임의 퍼즐은 그럭저럭 간단한고 재미있는 편이다. 염가형 스토리 인디 게임의 퍼즐이라고 했을 때, 거기 기대되는 수준으로서는 만족스럽다. 물론 이제 어떤 퍼즐은 푼 것 같지도 않은데 뚫리고, 어떤 퍼즐은 묘하게 어렵다. 난이도에 따른 배치가 약간 오락가락이긴 하다.

 

 까다로운 점프 조작이 요구되거나, 타이밍을 맞추거나 하는 종류는 아니어서, 별로 집중해서 할 필요도 없었다. 전체 게임의 시간비중이 퍼즐 3이고 컷씬 7쯤 되기는 하는데, 컨텐츠로서의 좀 더 본질적인 비중은 퍼즐1 컷씬9다.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해 얘기를 좀 해 보자. 등장하는 캐릭터는 적다. 조연에 엑스트라까지 다 해서 10명이 안 넘는다. 중심 등장인물들은 실종된 천재 Evan, 주인공 Dysis, 다른 주인공 Clover까지 해서 셋이다.

 

주인공 생긴 게, 처음 봤을 땐 여장한 보추인가 싶었다.

 

 스토리는 중후반까지 꽤 흥미롭게 흘러간다. 이들이 도착한 무인도는 고대의 문명이 잠들어있는 미지의 섬이었고, 먼 미래가 배경인지 SF틱한 기술이 이것저것 나온다. 중간중간 지나가는 과거 컷씬도 재미있다.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이방인이 이들의 뒤를 쫓아오고, 하나 둘 밝혀지는 캐릭터들간의 관계성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다소 어정쩡했다. 풀리지 않은 떡밥들이 많이 남아있고, 이야기가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있다. 애초에 주인공이 무슨 생각인지 조금 이해도 잘 가지 않아, 떨떠름한 느낌으로, 오잉? 별론데?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의 결말부가 너무 끔찍했다. 이하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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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대충 요약하자면, 이 게임은 친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친구를 유인하고 세뇌한 다음, 외딴 섬에서 독을 먹여 죽여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게 뭔 개소리야? Evan과 Clover는 친구였는데, Clover와 그 여동생이 일종의 유전병으로 인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Evan은, Clover를 치료하기 위해 고대 문명이 잠든 섬을 탐색했으나, 치료 방법은 없었다.

 

 그런고로, Clover가 엑스터시-한 죽음이라도 맞을 수 있게끔,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영생의 비밀이 잠들어 있다는 식으로 섬의 소문을 조작해, Clover를 섬으로 유인한 다음, 여동생을 연기할 배우(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 Dysis)를 고용해,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적절한 순간에 Clover를 살해했다.

 

 시추에이션이 너무 공포스럽다. Clover는 그가 진정한 죽음을 맞기 전부터, 세뇌당해 자아를 상실하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이런 끔찍한 시추에이션은 이런 것으로 발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이너한 떡인지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계획의 실행에 대한 게임의 연출도 가관이다. 나는 이런 과거가 밝혀지면서부터는, 일종의 스릴러로 장르적 전환을 이루어 보려는 것인가 싶었다. 봉준호의 기생충마냥. 그런데 또 아니다. 훈훈한 결말인 척 스토리를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죽여버려서 슬프긴 하지만, 좋은 일을 한거야. 😥 Clover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하면서 크레딧을 띄우기 시작한다. 유전병의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해 Clover 옆에 같이 묻혀있는 그의 여동생은 덤이다. 후일담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당장 게임을 끄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냥 끄면 쫓아올 것 같아 두렵다.

 

 친구의 거짓된 이야기를 믿고, 여동생의 미래를 위해 움직였으나, 남아있던 가족과의 짧은 시간마저 빼앗긴 채 살해당한다. 이걸 감동적인 일인 마냥 연출하고 있으니, 너무너무 무섭다. 심지어 여동생은 가족도 없는 곳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진심으로 무섭다. 배경음악도 너무 평화롭다. 스토리가 무서운 것을 넘어, 이 게임의 제작자가 무섭다. 시발 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거야?

 

 그러한 이유로, 스토리에 굉장히 몰입되는 놀라운 게임이었다. 도트도 찍을 게 많지는 않았어서 그런지, 이쁘게 잘 찍혔다. 사실 스토리의 짜임새는 부족하고, 퍼즐은 깊이가 없어서, 누가 Evan's Remains를 두고 내게 잘 만든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게임의 시나리오가 내게 상당한 놀라움을 주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