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3. 3. 23. 15:12

 

 내게 여행이라고 하면 별로 와 닿는 것이 없다. 처음엔 재미있었다가 금방 올라오는 떫은 맛에 뱉게 된 도타 2를 이달의 bad trip이라 할 수 있겠다. 10년 된 해외 마인크래프트 서버를 구경하러 들어갔던 것도 일종의 여행이랄 수 있겠다.

 

 복무가 끝나면 여행을 한 번 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전 팀장님의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내가 기억 속에 새록새록하다. 직장 인근의 새로 개업한 부대찌개 집이었는데, 점심부터 그런 헤비한 메뉴를 주문하러 오는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했다는 것에 감복했다. 얻어먹는 처지에, 혹은 팀장님의 펩 토크의 일부 취지에라도 공감했던 나는, 입에 발린 말이라도 여행 꼭 가겠다고 얘기하였으나, 결국 마지막에 좌초된 곳은 도타였던 것이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명승지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그 자체의 심미적인 가치도 있겠지만, 당시 여행에서의 심상을 저장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기억이 휘발되는 것을 대비해 문서화를 하고 일기를 쓰듯, 외지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셔터만 딸깍 누르면 되니 더 간편하기도 하다.

 

 Toem은 작년 12월 험블 먼슬리로 받은 게임이다. 상점 페이지의 정가를 보니 2만원이었다. 가격에 비해 리뷰에 찍히는 볼륨은 그리 크지 못한 것 같다. 대체로 3시간 내외다. 그런데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찍었다. 99% 긍정적이다. 이건 신앙의 레벨이다. 대체 어떤 매력을 갖춘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개발사 Something We Made는 스웨덴의 인디 개발사이다. 상점 페이지의 소개문이 중국어로 되어있길래, 그쪽 회사인가 했는데 아니다. 단순한 실수인 모양. 눈에 띄는 경력이 있는 개발사는 아니다. 게임 잼 참가 이력이나 넷에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업로드해둔 것 정도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Toem은 인디 어드벤쳐 게임이다. 개성적인 비주얼의 좁은 세계를 돌아다녀 볼 수 있다. 주인공은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받아, 'TOEM'이라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거쳐가는 객지 주민들의 사소한 퀘스트를 몇 가지 들어주는 것으로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스탬프러리에 일정 수 이상의 도장을 받아 제출하면 다음 지역으로 보내준다.

 

 각지에서 수행하게 되는 퀘스트라고 하면 잔심부름에 가까운 것들로, 대부분 사진을 촬영해 보여주거나, 특정 오브젝트를 카메라 조리개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으로 간단하게 클리어할 수 있다. 과제가 명확한 것들도 많지만, 선문답마냥 모호한 경우, 눈치채기 힘든 곳에 숨겨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 스탬프러리 올 클리어를 노리려 한다면 약간 고민이 필요하다.

 

 포토그래피 어드벤쳐를 표방하고 있는 Toem이므로, 사진 활동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언급할 것이 많은 것도 아니다. 원하는 위치에서 서서 카메라를 꺼내 피사체를 조준한 뒤 찍으면 끝이다. 사진에 대한 평가 기준이나 구체적인 목표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오브젝트만 화면에 잘 넣으면 퀘스트는 모두 깰 수 있다. 약간 틀린그림찾기같은 걸 하는 느낌.

 

 솔직히 사진 찍는게 조금 번거롭다. 게임을 진행하려면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자주 찍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이번 맵에서는 뭘 찍어야 하나 훑어보면서 움직이게 되는데, 여행지에 놀러온 관광객의 관점에서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는, 자료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진기자가 된 기분이 자주 든다. 퀘스트로 찍어야 하는 피사체의 힌트가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고, 평소의 이동하는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리개를 열고 여기저기 두리번 두리번 해야 하는데, 갈수록 귀찮았다.

 

나름 볼만하다

 

 내가 이쁘다고 생각해서 찍은 사진은 쓸 데가 없다... 게임 내에서 자체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픽이 깔끔하긴 해도 엄청 예쁘다기엔 또 뭐하고, 세계가 생동한다기에도 뭐하기 때문에, 사진 찍는게 금방 질린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피사체를 기록한다는 것이고, 배경과 물건, 인물을 사진 속에 담아 기록한다는 것인데, 배경이나 인물 모두 캐주얼한 것이 장점이라, 무게감이 생기질 않는다. 엉뚱하고 유머러스하고 가볍다. 그러므로 사실 사진 촬영은 Toem의 시선이 끌리는 개성이고, 재미있는 진행도구이긴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이라기엔 미묘하다.

 

 3시간 가량의 Toem 플레이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은 촘촘히 박혀있는 이벤트들이다. 사진 촬영은 일종의 미니게임이고, 몇 시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는 이벤트를 구경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위 말하는 병맛, 가볍게 재미있긴 하지만 여운이 대신 희소하다. 게임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TOEM'을 촬영하는 순간조차 임팩트가 전혀 없었다. 

 

 개발진이 구현해 놓은 독특한 비주얼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열심히 준비해놓은 사소한 개그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 평소랑은 다른 시점에서 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사진 촬영 부분이 빈약하다는 것은 게임을 갉아먹는 특별한 단점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사실, 특징에 지나지 않지만, 소소한 개그와 "힐링"의 순간만 이어질 뿐,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장면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

 

 짧은 인디 어드벤쳐라는 점에서는 A Short Hike가 연상되고, 사진 촬영이 소재라는 점에서는 포켓몬 스냅 시리즈가 떠오르는데, 그 둘에 비해 더 낫다고 생각되는 구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