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2. 13. 20:52

최초작성: 2019. 1. 15. 20:21

​밝게 타오르는 뜨거운 영혼!

CHAMPHI SQUAD!

 

 저는 전대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저씨들은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전대물 패러디를 처음 접했던 곳은 메이플스토리였던 것 같습니다. 쫄쫄이 코스튬을 캐쉬로 팔았던 것 같은데, 이게 당시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서 배경 이미지로 자주 사용됐습니다. 어렸을 때 이게 되게 구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전대물 패러디가 메이플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찾아보면 스킨이 많거나 가챠가 많은 게임엔 하나쯤 전신 타이츠가 들어갑니다. 게임의 아트 기저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대물 자체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파워레인저를 유치하게 여기기도 했었습니다.

 

 크로마 스쿼드의 개발진은 다들 전대물을 좋아하나 봅니다. 트레일러도 보면 일뽕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어렸을 때 파워레인저라도 많이 봤었던 걸까요? 혼자 보기는 아까우니까 영상 링크 남겨둡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rl2bCBzqRc

 

 그래서 처음 크로마 스쿼드를 받았을 때는 의아했습니다. 크로마 스쿼드는 전대물을 표지로 내세우는 SRPG입니다. 일본틱한 키워드가 둘이나 있습니다. 들었던 것은 내가 이 게임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왜? 공짜니까.

 방송국에서 전대물을 찍던 배우들이 방송국을 나와 자기들끼리 새로 전대 프로를 만든다는 스토리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적들이나 우리 주인공들은 대부분은 일반인입니다. 괴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서 열면 땀찬 사람이 나오거나 그러죠. 맵 뒤편에서는 카메라맨들이 늘어서 있고 감독은 메가폰을 들고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면 스폰서가 붙고, 업체와 계약해서 소품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중후반부 전개에 들어가서는 진짜 통 속의 뇌가 나오고, 진짜 외계인이 나오고, 진짜 초능력이 나오고 그러지만. 플레이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전대물을 촬영하는 아마추어 배우들이라는 컨셉과, 그 컨셉을 살려주는 장치들이 게임 디자인으로도,장식적으로도 아주 잘 어울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크로마 스쿼드라는 전대가 어떤 에피소드를 촬영할지, 어떤 팬들이 보는지, 법리적으로는 또 어떻게 싸우는지를 다루는데, 재미있습니다. 게임 외적으로 크로마 스쿼드라는 게임은 일본과 한국에서 출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슈퍼전대 시리즈의 저작권을 쥐고 있는 토에이와 시비가 붙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로 국내에서는 스팀 상점 페이지를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같은 개발사가 만든 나이츠 오브 펜 앤 페이퍼는 많이들 한번쯤 봤을 테지만, 크로마 스쿼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18년 3월에 한글 패치가 나왔으니 스트리머들이 했을 법도 싶지만, 딱히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스프트맥스 사의 CHAMPI SQUAD

 게임은 턴제 SRPG입니다. 전투가 복잡한 게임은 아닙니다. 최고 난이도에서도 적당적당히 시나리오를 즐기면서 깰 수 있습니다. 우리 참피 스쿼드를 봅시다.왼쪽부터 핑크 마그나카르타, 그린 4Leaf, 레드 창세기전, 블루 SD건담, 옐로 BnB입니다. 아무튼 각각의 영웅들은 그 생김새만큼이나 능력이 제각각입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영웅(연기자)들을 고용해서 각각의 포지션으로 넣을 수 있는데, 원한다면 마그나카르타가 레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그나카르타의 특성은 힐입니다. 아마 독보적인 힐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약 추가 힐이 30%에다가 데미지는 -20%쯤 됐던 것 같은데, 이런 친구가 레드로 들어가서 딜을 하려고 하면 그것 참 장관이겠죠. 따라서 적절한 연기자들을 골라서 적절한 배역으로 넣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입은 쫄쫄이마다 역할이 있습니다. 쫄쫄이 색 자체는 바꿔줄 수 있는데, 5가지 역할은 바꿀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테키, 스카웃, 힐러, 어썰트, 리더로 나뉘는데, 이름을 보면 뭘 하는 역할인지는 대충 감이 오겠죠. 적절한 옵션을 가진 연기자, 또는 자기 취향, 컨셉플레이에 맞는 연기자들을 골라 각양각색 쫄쫄이에 넣어주면 됩니다. 중간에 멤버 교체는 불가능합니다.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시나리오적으로는 안될 일입니다. 각 캐릭터마다 대사가 있거든요. 해고가 안 됩니다. 해고라고 하니까 임금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생각난걸 보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다보면 게스트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섯번째 분대원도 등장한다. 화이트였던가 실버였던가.

 

 전투의 기본적인 시스템 자체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일정하게 돌아오는 턴마다 이동하고 공격합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역할군마다 스킬을 해금할 수 있는데, 스킬의 쿨다운은 관련된 스탯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각 캐릭터마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 턴일 때는 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대는 합동 공격이 가능합니다. 적을 둘러싼 다음에 팀워크! 를 하면 준비 자세에 들어가는데, 이때 다른 캐릭터로 적을 때려 주면 준비된 다른 연기자들이 한번에 공격합니다. 따로따로 때릴때보다 강한 공격이 들어갑니다. 5명이 모여서 한번에 때리면 멋있는 컷씬까지 나옵니다. 따라서 전대처럼 멋있게 싸우기 위해 고민해야하는데, 감독은 이런 컷씬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잡하지 않고 소소하게 재미있는 시스템입니다. 게임 종반부까지 물리지 않습니다.

 우리 연기자들도 사람인지라 먹고 살아야합니다. 좋은 에피소드를 찍으면 돈이 많이 들어오고, 홍보하거나 소품을 사는데 돈을 쓰고, 방송장비를 맞추고 계약하는데 돈을 씁니다. 이 운영 파트도 나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게임의 시나리오는 대부분 전투 파트에서, 에피소드를 찍으러 나가는 파트에서 진행하고, 선택지도 거기서 나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와서는 팬메일에 답신하거나, 오가는 계약서를 보거나, 소송 문제에 대한 메일들을 받습니다.

 

 운영 파트를 대충 하면 안되는 것이, 마케팅에 돈을 써서 시청자를 늘릴 수 있는데, 이 시청자들이 적으면 우리 크로마 스쿼드가 제대로 힘을 못 냅니다. 시청자가 적으면 변신하지 못하고, 시청자가 많으면 전투에서 보너스를 받기도 합니다. 전투에 사용하는 장비도 당연한 것이지만, 제때 티어업하지 않으면 에피소드의 서브 퀘스트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보너스를 받지 못하거나,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게임 오버되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 장비들은 사거나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데, 조합에 필요한 아이템들은 전투 시에 적 조무래기들이 드롭하거나, 직접 살 수 있습니다. 다 돈 때문이고 결국 스노우볼입니다.

돈 때문이지 뭐

 우리 인디 배우들은 시즌을 넘기고 에피소드들을 줄창 찍어내면서, 모종의 갈등 관계를 빚게 됩니다. 멤버들간의 성격 차이같은 것들인데, 이런 사소한 갈등들을 우-정으로 이겨내고, 우주적인 악과 맞서 싸우시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갈래의 분기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저는 2회차 플레이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시나리오가 꽤 큰 갈래로 찢어지는 모양이니, 다회차 플레이에 관심이 있거나, 이런 시나리오 분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장점이겠습니다.

 

 뽕맛이 느껴지는 게임입니다. CRT모니터 효과도 박을 수 있고.. 요소요소마다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있습니다. SRPG로서의 전투 파트는 사실 그렇게 깊이감이 있다고 하기는 힘듭니다만, 합동 공격이라는 이 게임만의 특징이 있으니 넘어갑시다. 새삼 전대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만, 크로마 스쿼드는 한 번쯤 해볼만한 게임입니다. 선물받은 게임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혹시 라이브러리에 있다면 다운로드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