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예술이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런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참여작가들의 작업물이 그들 sns에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궁금했던 것은,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게임이지? 아트가 이쁜 것은 확인했으나 굳이 어떤 게임이고 어디 개발사에서 만들고있는지는 찾아보지 않았고, 출시했을 때도 구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그 존재를 까먹고 있다가 험블 초이스로 받아온 것이 불과 지난달이다. 개발사 예상 플레이타임이 2시간 남짓이길래 별 거부감 없이 켜봤다.
그래서 해 본 게임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게임 외적으로 부담스러웠다. 플탐 2시간에 걸맞게 막히는 부분도 딱히 없었고 난이도도 그럭저럭이었고. 그렇지만 딱히 게임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 게임의 디자인에 대해, 평소에 해 오던 방식의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가 없다.
자잘한거 필요없이 그냥 스타트만 누르면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198X는 Hi-Bit Studios의 아케이드-풍 체감형 내러티브 전달장치다. 5가지 (아트가) 잘 만들어진 오락실-풍 게임이 컷씬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고, 세이브 로드도 없이 2시간동안 쭉 앉아서 보면 되는 짧은 게임이다.
게임은 짧은 빗뎀업으로 튜토리얼을 대신하고, 교외에 사는 주인공을 비춘다. 얘는 가족관계도 그리 원만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평범하게 지낸다. 옆구리 주머니에 소니 워크맨을 꽂고 귀에는 헤드폰을 꽂은 채 길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니는 얌전한 우범소년이다. "따분한 일상"에 질려있던 주인공은 어느 날 오래된 건물 지하의 오락실을 발견하게 되고, 도피성 오락을 즐기기 시작한다. 오락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고, 거기서 방랑하는 10대로서의 위안을 찾는 타입이다.
친구는 상상친구가 있어요
일련의 서사를 전달하는 과정은 gif로 딱 떼서 트위터 올리기 좋아보이는 컷씬들의 연속이다. 참여 아티스트 여럿이서 각자 자기가 잘 묘사하는 파트를 맡아 괜찮게 그려내고 있다. 캐릭터 얼굴이 크게 보이는 장면은 메기솔 캐릭터 gif같은게 넷에 퍼져있는 einzbern이, 비오는 장면은 대부분 motocross-art인가 하는 일본인이, 그리고 세룰린 톤이 진한 많은 야경은 wanella가 담당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케이드 게임쪽 리소스의 경우 모션 잘그리는 짬킹들이 맡고있다. 어떻게 모았는지 모르겠네. 하이비트 대빵은 비밥 감독이라도 되는 것일까?
핀터레스트에 pixelart 검색하면 하나쯤 나올듯
컷씬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아케이드-풍 게임들의 경우 오락 자체는 옛날 오락처럼 잘 재현한 반면 절대적인 분량은 아주 짧다. 데모판이랑 비슷한 분량이다. 게임의 끝부분에서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화면 전환 효과가 들어가면서 다시 컷씬 파트로 넘어가는데, 덕분에 똥 싸다 만 것 같은 느낌은 들어도 장면 흐름은 퍽 자연스럽다. 이런 오락실 게임들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할 것도 없다. 본격적으로 재미있으라고 넣어놨다기보다는 그냥 체험이나 좀 해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무튼 그래서 198x는 게임이라기보다는 1980년대 게임과 감정, 그시절의 유년세대에 관한 모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닐 드러그맨 선생과 평론가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영화같은 게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8x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인터랙티브 무비와 나란히 서있는 유사 상호작용이 가능한 영상물에 가깝다.
애초 이 게임에는 갈등 구조라고 할 만한것도 없다. 오락실에서 위안을 찾는 10대를 조금 그릴 뿐이지, 명확한 엔딩도 없기 때문에, 단순히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드라이브하고 있으면 나레이션이 나온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난해한 물건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4D 영화를 본다고 하자. 디지털 영사기가 돌려주는 3D 화면이 눈 앞에서 어지럽게 움직이는 동시에, 우리가 앉은 의자 또한 마구잡이로 흔들린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198x는 흔들리는 의자랑 3D 안경 대신 중간중간 오락실 게임의 데모를 첨가했다. 이게 게임이 맞을까? 게임과 영화의 차이라고 했을 때, 게임은 플레이를 위해 서사가 있는 것이고 영화는 서사의 전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를 위한 플레이가 있고, 이 플레이가 조연이나 엑스트라 수준에 불과한 이 198x는 두 매체 중 어디에 가까운 것일까?
이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잡소리를 떠나, 눈여겨볼만한 사실은 이제 게임이 특정 세대의 집단이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일종의 추억이나 기억따위가 되었으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198x같은 시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예술활동, 문화재생산 활동이 늘어나는 셈이고, 이런 활동을 통해 기존의 게임들에 있어서도 인식 개선따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198x와 같은 시도는 다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다 떠나서 잘 찍은 도트가 한가득 들어간 게임이니 라이브러리에 있다면 한번쯤 켜보면 된다. 이 사람들 돈은 제대로 받았을까? 받았겠지? 킥스타터 후원받고 시작한 게임이니?
비중있는 캐인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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