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저 로스다.
고기가 안 들어가 있잖아?
문라이터는 구린 게임이다. 구린 게임을 일부러 하는 취미는 없다. 문라이터도 평생 안할 줄 알았다. 험블 먼슬리로 어떻게 들어왔을 때도, 이걸 하긴 할까 싶었다. 리뷰쓰기 괜찮은 게임일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얼마 전에 다시 본 문라이터의 스팀 평점은 올라 있었다. 분명 출시때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는데? 다시 보니 매우 긍정적(84%)을 찍었다. 이정도면 꽤 할만한 게임이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면 문명6도 평점은 80% 대니깐. 이것이 안일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라이터는 '인디'게임이다. digital sun games는 전문 외주개발사였는데, 첫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기 위해 펀딩을 진행했고, 성공해서 문라이터를 출시했다. 펀딩은 16년에 끝났고, 출시는 18년에 했고, 19년 중반에 (개발사 표현을 빌리자면) 문라이터 역사상 최대 규모의 DLC가 하나 나왔다.
게임은 던전구멍이 5개 나 있는 마을 리노카를 배경으로, 현지 상점 점주 월을 주인공 삼아 진행된다. 윌은 유서깊은 잡화점 문라이터를 물려받은 젊은이인데, 던전의 인기도 시들시들해져 쇠락해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던전에 뛰어든다. 잠겨 있는 "다섯 번째 문"을 여는 것이 목표이고, 낮엔 상점을 운영하고 밤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진행의 골자다.
예전에 엔드리스의 던전 리뷰글을 쓰면서 문라이터를 언급한 적이 있다. 엔드리스 던전은 두 장르간 통합이 매끄러운데 비해 문라이터는 대단히 소루하다고. 이것은 지금 봐도 사실이다. 스팀 평점이 올라갔길래 개선된 줄 알고 기대하면서 게임을 받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장르간 이음부 마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점 파트도 애매하고 던전 파트도 애매하다. 독자행동에서 발생하는 팀워크도 없다. 각자 살아남기도 어려운 편이다.
열쇠구멍 4개에 던전입구 4개인데 뭘 저리 쓸 말이 많은지 알 수가 없어요
우선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거나 상자를 까면 잡템들이 나온다. 대부분의 잡템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 던전에 드롭된 아이템들로 던전을 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들을 가치있게 사용하려면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와 상점에서 팔거나 장비로 조합, 포션으로 조합하는 방법밖에 없다.
던전의 한 층은 열 개 내외의 무작위 방들로 이어져 있고, 3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 2층엔 미니보스, 3층엔 던전 최종보스가 있어서 이걸 잡으면 다음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이런 던전이 4개가 있어서, 4개 던전을 다 깨면 게임 최종보스가 기다리는 다섯 번째 문이 열린다.
던전에서 죽으면 인벤토리 가장 윗칸의 아이템 5개만 건져서 나오게 된다. 혹은 돈을 내고 전체 인벤을 온존한 채 빠져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가져온 아이템들을 자기 상점 문라이터에 진열해서 판다. 모든 아이템엔 적절한 가격이 있으며, 부적절한 가격도 있다. 가격에 따라 손님들이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참고해 가격을 조절하면 된다. 특정 상품에 대한 손님들의 기대감이 높을 경우, 비싼 가격에도 사 간다.
템만 탱기고 빤스런도 가능하다
이렇게 팔아치워서 생긴 돈을 가지고 이제 게임의 진행 요소들을 언락한다. 대장간, 약국, 소매상, 가구상, 은행이 열리는데, 특별한 건 없고 이름대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기 상점도 키울 수 있다. 상자 크기도 키우고 침대도 비싼걸로 바꾼다. 건물도 리모델링해서 내부를 넓힐 수 있다.
전투 부분과 상점 부분을 나눠서 살펴보면, 전투 부분은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상점 부분은 지나치게 반복적이다. 게임의 장르명부터 부정확하다. 이 게임은 액션 로그라이크가 아니다. 로그라이트도 아니다. 퍼마 데스도 아니고 데스 패널티가 큰 것도 아니다. 장비만 갖추면 어렵지도 않다. 그냥 RPG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전투 설계가 좀 이상하다. 몬스터에게 근접 공격을 맞춰도 넉백이고 미니스턴이고 아무것도 없다. 원거리 공격형 적에게 붙어 열심히 때려도 아픈 척도 안한다. 근접 무기가 부무장인 게임도 아닌데 뭔가 어색하다. 대각 공격이 없는것도 불편하다. 몹의 공격 모션이나 판정이 상당히 거지같은데, 특히 초반에 만나는 몹인 골렘의 경우 사전 모션이 2~3프레임에 불과해 근접해서 한대 치기만 하면 나도 쳐맞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첫인상 자체를 상당히 깎아먹었다.
후반 적들은 그나마 나아진다
보스몹들의 경우에도 의아한 구석이 많았다. 던전별로 1,2층은 똑같이 생긴 보스가 패턴만 살짝 바뀌어서 출현하고 3층은 다른 보스가 나온다. 피격 마스크가 애매하다던가 2층 보스 체력이 1층 보스의 두배라던가 하는 점들은 차지하고, 난이도 설계가 조금 이상하다. 솔직히 최종보스보다 1-2 보스가 훨씬 까다로웠다. 1-2 보스는 맵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몇 초 뒤 사전고지 없이 나타나 공격하는 시간차 패턴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종보스는 공격 규모만 조금 클 뿐 패턴이 다 느릿느릿하다. 잡몹 피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리니지" 하면 그냥 깬다
던전엔 아무것도 없다. 맵은 다 비슷비슷하고 지형지물은 부술 수도 없다. 던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장비나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들고 나와서 쓸 잡템만 주우면 장땡이다. 모든 방은 단지 몬스터를 배치하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던전이 던전일 이유가 설정에 부합하기 위해서밖에 없다.
몇몇 아이템에는 저주가 걸려있어서, 캐릭터가 몇 대 맞으면 부서진다던가, 옆의 아이템이 집에 갈 때 부서진다던가 하는 퍼즐이 살짝 있다. 상자를 뒤져봤자 폐지밖에 안나오니까 재미있으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소소하게 괜찮았다.
여긴 대각선이 있는데, 대각선 공격은 안된다.
던전에서 주워온 아이템들을 가져다 상점에 진열해두고 가격을 책정해 팔아먹는 것이 문라이터 상점 파트의 전부다. "적정가"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허용범위 내에서 줄창 팔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손님과의 상호작용같은 것은 당연히도 없다. 손님은 산간 벽지의 상점까지 왔으면서 백화점 상품 보듯이 맘에 안들면 걍 안사고 만다. 흥정도 없고 사기도 없고 사기를 칠 수도 없다. 손님의 반응에 따른 후속 작용도 없다.
물건마다 기대치라는 것이 있긴 한데, 이걸 일일히 신경쓸 이유가 없다. 기대치가 아무리 낮아도 가격만 적정가면 하루 안에는 보통 팔린다. 상점 파트에서 머리를 써야 할 것은 결국 가격 책정하기밖에 없는 것이다. 혹은 가끔 오는 도둑 쫓아내기(스페이스바 한번 눌러서), 예약주문(이제 수준도 안맞고 갈 일도 없는 던전에 굳이 가서 잡템을 모아주세요)이 있지만 별 의미는 없다.
사장님은 카운터만 보면 된다
디자인상의 연결점이 희박한 두 가지 게임플레이를 결합시키는 것에 실패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애초 결합시킬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던전도 재미있고 상점도 재미있으면 별로 상관 없겠지? 이런 생각으로 기획된 게임일수도 있는 것이다. 둘 다 별로다. 이상한 게임이다.
그래픽이랑 음악은 좋다. 완전 도트 그래픽에다가 그라디언트 들어간 이펙트 레이어가 가끔 살짝 덮은 정도다. 대단히 공들였구나 싶은 수준은 아니어도 어울리고 이쁘게 잘 나왔다.
음악의 경우 게임성에 비해 아까울 정도다. 던전의 각 층마다 다른 음악이 나오고, 보스전 브금도 다 따로있다. 인게임에선 던전별 보스를 한 번씩밖에 못 잡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건 장인정신에 가깝다. 마을의 음악도 상점 npc랑 대화중이면 각 상인의 개성과 어울리게 바뀐다. 대장장이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중간에 망치 소리가 끼어들고, 은행가랑 대화하면 피아노 반주가 현악기로 바뀐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친 게임이다. 스팀 태그의 액션 로그라이트는 지워졌으면 좋겠다. 상점 운영하면서 던전까지 들어가는 rpg를 원한다면 루세티아를 건드려보는게 더 나을수 있다. 이런 본편의 스팀 평가가 84%인데 DLC는 53%다. DLC는 엄두가 안난다.
결국 엔딩을 보긴 했다. 중간중간 접고 싶었지만 참고 하다보니 그럭저럭 재미는 느낄 수 있었다. 아이기스 디펜더랑 비슷하다. 이쁘긴 한데, 추천할만한 게임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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