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6. 22. 04:44

지구제 물건치고 변변한게 없어

 데저트 차일드는 Oscar Britain이 개발한 인디 게임이다. 이 사람이 SNS에 업로드하는 작업물들을 보면 전문 개발자라기보다는 인디 크리에이터에 가까워 보인다. 데저트 차일드에서도 그 자취가 좋던 나쁘던 잘 드러나 있다. 아트나 게임성이나 뭐 이런 다양한 부분들에서. 잘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개발자가 원하는 분위기/감성은 잘 살아있다.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든 것 같으니 다분히 인디스러운 게임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흑인 촉법소년이다. 지구에 사는 이 소년의 취미는 오토바이다. 레이싱 상금으로 라-멘을 사 먹는게 일상인 것 같다. 어느 날 빨간 바디슈트를 입은 누나가 화성에서 열리는 오토바이 대회 Grand Prix에 참가하라고 꼬시고, 거기 혹해서 우리 소년은 화성으로 간다.

넘꼴린당

 연고자도 없이 화성에 간 소년은 Grand Prix의 예선 참가비가 1만 달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돈을 모으기 위해 몇주간 피자 배달을 하거나, 레이싱에 참가하거나, 무기 실험에 참여한다. 현상금 수배범을 쫓을 수도 있고 위스키 한잔 빨고 은행을 털 수도, 승부조작에 가담할 수도 있다. 혹은 담백하게 남의 오토바이 부품을 털어먹는 것도 가능하다. 미성년자라 경찰이 봐주는 모양이다.

 오도바이 대회 참가금을 모으는 몇 주간,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소년을 조작해 화성의 마을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매일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npc가 조금씩 바뀌고, 어제는 분수대 앞에서 킥보드를 타던 배경 엑스트라가 오늘은 건물 옥상에서 타고 그런다. 마을의 다양한 시설을 돌아다니며 말을 걸고 다니고 오늘 할 알바를 고르는게 데저트 차일드의 마을 파트다.

 마을은 이어진 여닐곱개의 구역들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게도 구역마다 카메라 위치가 다르다. 평범하게 사이드스크롤이었다가, 뒷골목에서는 발만 비추도록 카메를 낮게 잡고, 해안가에서는 고정 롱 숏으로 캐릭터와 마을을 작게 비춘다. 시장 거리에서는 탑뷰가 나오기도 한다.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어디로 어어진건지 알기 어려웠다. 미니맵이 따로 없기 때문인데, 초반에는 어디서 뭘 할 수 있는지도 몰라서 답답하고 깜깜했다.

이쁘게 잘 꾸며두긴 했다. 지도가 없을 뿐이지

 대회 참가비 모으기라는 큰 목표만 플레이어 앞에 던져둔 셈이다. 일단 자유롭게 풀어주고는 있지만 마을 자체가 넓지는 않다. 정말 담백하게 서브 퀘스트같은 것도 안주고 돈만 모으게 시킨다. 이 반복이 나는 좀 불만스러웠다. 마을에 풀어둬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알바밖에 없는데, 이 알바는 전부 오토바이 레이스로 귀결된다. 카우보이 알바는 캥거루랑 레이스하기. 현상금 사냥은 범죄자랑 레이스하기. 은행 해킹은 베이퍼웨어 배경에서 레이스하기.

ammo = 피자

 문제가 있다면, 이 레이싱이 딱히 파고들만큼 깊이있거나 연출같은게 대단히 훌륭해서 보고만 있어도 즐겁거나 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변변찮다.

 벨트스크롤 시점에서 무기 달린 공중부양 오토바이를 몰게 된다. 자연 충전되는 게이지를 모아서 부스터를 쓸 수 있다. 다른 경쟁자가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도 있다. 무기로 경쟁자를 쏴버리면 상대 오토바이가 느려진다. 결승선에 먼저 도달해서 이기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속도감은 꽤 괜찮은 편

 tv라는 명칭의 100점 장애물 표적들이 다양한 겉모습으로 등장한다. 총으로 쏘거나 사이드부스터로 박아서 부수면 점수 100점이 뜬다. (의미있는 숫자는 아니다. 집계도 안한다.) 투사체를 쏘는 것도 있고 부술때 현금을 드롭하는 것도 있다. 맵에 등장한 tv를 몇대나 부쉈느냐에 따라 A~F까지의 등급이 매겨지고 보너스 오토바이 부품을 받는다. 타겟을 쏴서 부수면 부스터 게이지가 리필되는데, 이걸 전략적으로 반복하면 어렵지 않게 상대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

 아쉬운 점들이 많다. 우선 코스가 단조롭다. 커브 없는 직선 코스 위에 장애물만 몇개씩 놓여있다. 골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나중에 오토바이 부품을 꽂아야 대강 알 수 있고, 점수 책정도 납득하기 어렵다. 상대가 부순 장애물은 얄짤없이 내 점수로 안 들어오기 때문에, 경쟁 레이싱에서는 승패와 관계없이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난 Grand Prix 결승전에서도 D랭크를 받았다.

 스타2 노바 비밀 작전 팩에 도심 벌쳐 레이싱 미션이 있는데, 그게 생각난다. 단일 게임으로서는 완성도가 좋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미니게임 수준이다. 위쳐3판 궨트랑 비슷한 느낌이다. Grand Prix 참가에 필요한 돈은 1만 달러인데, 레이싱 한판에 100달러, 시급 좀 쳐주는 알바는 300달러정도 받는다. 오토바이 수리비나 식비 튜닝비까지 생각하면 대략 40번은 달려야 하는 셈이다. 참고 하면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복성이 심하다.

 오토바이 튜닝도 가능하다. 원하는 모듈을 사서 빈 공간 안에 잘 채워넣고 전선을 이어주는 퍼즐이다. 순정으로도 어렵지 않은 게임이고, 효과가 체감되는 모듈도 얼마 없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사실 엔딩 직전까지 모듈이 없어서 못 쓰고 있었다.

 사실 다른 요소들보단 비주얼이랑 음악이 인상적인 게임이다. 도트 그래픽 자체는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수준인데, 연출이 상당히 좋다. 마을 카메라의 시점도 그렇고 배경/컷씬도 그렇고 꽤 멋진 장면들이 자주 있다. 게임의 트레일러만 봐도 어떤 범위의 매체들로부터 레퍼런스를 얻어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면 안다.

 

흔한 연출이기야 하지만 당장 보이는 유사품도 있다

 트레일러 음악부터 시작해서 게임의 ost 전반은 퓨전 재즈/힙합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확한 장르 구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개발자 본인이 만든 곡이고, 일부는 다른 사람들의 곡이라고 하는데, 완성도가 괜찮다. 1인 개발 게임이라는 사실이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솔직히 돈 값은 못 하는 게임같다. 데저트 차일드의 정가는 12500원이다. 놀랍게도 테라리아가 2000원 더 싸다. 플레이타임을 보니까 4시간이 찍혀있다. 테라리아는 600시간인데!! 험블번들로 받아온 게임이니까 별 불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