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6. 19. 04:19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은 그중 가장 저급한 방법이야

 차고넘치는 마인크래프트 아류작들은 3D에서도, 2D에서도 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한 채 스팀 상점 깊숙한 곳에서 먼지만 마시고 있는 게임이 한가득이고, 개발자가 빤스런한 타이틀도 수두룩하다.

 그런가 하면 마인크래프트와 차별화되는 게임성을 갖추고 성과를 거둔 게임들도 있다. 포탈 나이츠나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D 타이틀들 중에는 독보적으로 테라리아가 있다.

 테라리아는 리로직에서 11년 출시한 샌드박스 rpg다. 게임 개발 초기, ign과의 인터뷰에서 개발자는 마인크래프트에 자극을 받아 시작된 프로젝트임을 밝혔다. 당해 11월 경 출시된 게임은 지금껏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스팀이 서드파티를 적극적으로 받아 esd로 변화하기 시작했을 무렵, 테라리아는 스팀 동접수 상위권에 오르는 등의 활약으로 인디 붐의 총아가 되었었다.

 이 2D 마인크래프트는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마인크래프트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클래스' 구분이 있다. 캐릭터 스펙, 전투와 관련해서 꽤 깊이가 생겼다. 또 ‘상위' 무기가 점점 늘어나고, 강화도 생기고 이것저것 rpg 스러운게 많이 추가되었다.

 게임의 업데이트와 관련된 결정이 번복되었을 때, 사람들이 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빤쓰런이나 DLC 취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파판 15 DLC 취소의 사례처럼. 테라리아는 독특한 예외 사례인데, 개발자들은 테라리아의 업데이트 중단을 밝히곤 1~2년 뒤 이것을 번복하기를 7년 가까이 반복해왔다.

 그리고 저번 5월 16일에 1.4 업데이트가 있었다. 업데이트의 부제는 "Journey's End"로, 이번이 마지막임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안 켜볼 수가 없었다. 지인 몇명과 함께 마스터 하드코어로 멀티를 돌렸다. 최종보스 타파를 목표로 잡고 2주간 짬짬히 돌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Losing is fun

 스토리는 없다. 메인 스토리도 없고 은근히 전달하는 배경 스토리도 없다, 열린 필드에서 샌드박스 탐험을 하면 된다. 맵은 무작위로 생성되어 몇 가지 바이옴으로 뒤덮인다. 어색하지 않고 알차게 잘 만들어졌다. 맵에서 폐지를 싹싹 긁어서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이다.

 레벨업이 없기 때문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를 얻어야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보스를 잡아야한다. 특정 보스를 잡을때마다 추가적인 게임 콘텐츠가 풀리기 때문이다.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던가, 이전엔 없었던 아이템 드롭 확률이 생기거나, 새로운 npc가 오거나 한다. poe의 액트 보스랑 비슷한 개념이다. 컨텐츠의 수문장 또는 수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난이도에 따라 패턴이 바뀌는 등, 개성있게 잘 만들어뒀다.

 돈의 개념이 있는 게임이다. 옛날 양판소마냥 쿠퍼-실버-골드-플레티넘의 돈단위인데, 상위주화는 하위주화의 100배의 가치를 가진다. 이 돈을 어디에 쓰냐, 이건 npc랑 거래할때 쓴다. 게임의 경제시스템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잠자리채나 저금통같은걸 살 수 있다. npc가 파는 아이템은 대부분 장식물이나 소모품에 속한다. 일일히 드롭시키기엔 조금 그런 아이템들이 주다.

 보이는게 다양해서 좋다. 스타바운드는 이게 땅을 파보면 맨날 지형만 바뀌고 가구 블루프린트만 많지 실속이 없다는 느낌이다. 무기가 나와도 그냥 저냥 다 비슷하다. 외형 dps 공격방식이 랜덤이라 스프라이트가 다양한 것은 좋은데 사실 개성적인 무기는 결국 보라색 테두리 두른 유니크 무기들 정도밖에 없다. 반면 테라리아는 일단 지하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은 든다. 지하에서 캐야 할 것도 많고 함정도 많고. 다른것도 있지만 몬스터가 다양한게 가장 큰 것 같다. 스타바운드는 보면 지형마다 몹이 한두개씩 반복적으로만 나오는데, 테라리아는 그보단 많다. 흔한 몹은 스프라이트도 여러개다. 행성 여러개 안 돌아다니지 않고 한 우물만 판 성과가 있는 것 같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탐색은 즐겁다

 테라리아 리뷰를 2020년에 쓴다고 할 때, 스타바운드 이야기를 뻬 놓을 수 없다. 스타바운드는 13년경 킥스타터 후원을 받아 13년에 얼리엑세스, 16년에 정식으로 출시한 게임이다. 스타바운드이 개발 소식이 당시 테라리아 카페에 퍼졌을 때의 분위기는 꽤 긍정적이었다. 테라리아의 후속 업데이트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스타바운드는 테라리아의 정신적 후속작이라 받아들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것은 테라리아지만.

낚시만 했는데 세계최강!?

 두 게임이 공유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2d 샌드박스라는 정체성이다. 그 하위에는 빌딩 시뮬레이터가 있는데, 이건 스타바운드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블럭이 얼마나 많은가랑 가구가 얼마나 많은가, 조명이 뽀샵을 얼마나 잘 해주느냐인데, 몇년 전까지는 분명 여러가지 면에서 스타바운드가 앞섰다. 광원효과도 원형으로 뚜렷하고 블록 쉐이딩도 부드러웠다. 미학적인 디테일이 얼마나 들어가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테라리아가 훨씬 앞서고 있다. 물론 이건 취향의 차이가 들어가는 부분임은 맞긴 하지만, 우선 텍스쳐가 엄청 오밀조밀하다. 옛날 도트도 꾸준히 개선되었고, 가구 갯수도 꽤 많아졌다. 광원 효과는 스타바운드의 그것이 더 정확하긴 하지만, 텍스쳐가 앞서니 이정도는 지고 넘어갈 수 있다.

스타바운드 덩쿨은 안 흔들린다

 멀티플레이를 꽤 밀어주고 있는 게임이다. 아이템중엔 다른 플레이어가 있음을 전제하는 효과가 달린 것들이 꽤 많다.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고 온다던가, 팀을 힐해준다던가. 실제 다른 사람이랑 같이 플레이하면 꽤 든든하고 재미있다. 마스터모드 하드코어에서는 특히 그렇다. 애초 샌드박스면 여럿이 해야 재미있긴 하다.

 다만 보스 설계에서는 멀티플레이를 고려하는 것이 조금 부족했다고도 할 수 있다. 보스 어그로가 제멋대로 튀는 것은 그렇다 치는데, 급박한 공격 패턴 실행중 갑자기 타겟을 바꿔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을 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마지막 보스인 문로드의 공격 중엔 특정 플레이어 주변을 높은 데미지로 쓱 훑는 데스 레이저 패턴이 있는데, 사거리가 무한이고 벽도 뚫기 때문에 공격 타겟이 아니고 보스의 사전 모션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는 캐릭터를 이 공격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다. 문로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뚝딜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테라리아는 업데이트 잘못했다고 욕먹기 어려운 게임이다. 룰이 애초에 복잡하지 않은 샌드박스 기반 게임인데다가, 추가 요소는 성장 수직선 좌우로, 아래위로 차곡차곡 넣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밸런스 망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1.4의 추가요소에 대해서도 조금 써보자면, 우선 대대적인 아트 개선이 있었다. 풀이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이번에 와서야 추가된 기능이다. 그리고 여러 블록들, 가구들, 옷들, 보스 2종이 추가되었다. 최종보스는 아니고 중간에 끼어들어간다. 수직선상에서 볼 때 살짝 빈약한 숫자눈금 부분에 넣어둔 것이다. 그리고 표 밖에는 골프가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직접 코스를 만들어서 치는 것이다. 골프 잘한다고 무기를 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기분만 좋아진다. 우리는 20골드 내기골프를 한번 쳤다. 내가 이겼는데 벌소는 결국 안주고 떼먹었지만.

소소하게 재미있는 편이다. 블록마다 배팅감이 다르다.

 내겐 나름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테라리아때문에 스팀을 깔았고, 이게 내 인생 두번째 PC게임 구매였다. (대망의 첫번째는 마인크래프트, 세번째는 끔찍하게도 에이스 오브 스페이드 스팀판) 게임 너무 많이한다고 컴퓨터에 비번 걸렸을때도 몰래 다른컴퓨터에 깔아서 했던 게임이니, 다른 건 몰라도 싹수 노란 것은 알 만 하다.

 의미있는 게임이다보니 뭔가 쓰기가 힘들었다. 리뷰를 하기엔 너무 많이 받아들인 것이다. 뭘 더 써야할 것 같고, 그래야 의미있는 게임이라는게 거짓말이 아니게 될 것 같은데, 새삼 어렵다. 롤 스타 도타 프로게이머가 자기 종목에 대해 리뷰하려고 하면 꽤 난감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비디오 게임은 단순 오락이니만큼 한 타이틀은 적당히만 하는게 건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튼 테라리아는 리로직의 대표적인 게임이다. 스튜디오의 다른 게임인 픽셀 파이러시는 큰 성과를 거두고 못했고, 후속작인 테라리아 아더월드는 불발되었다. 리로직은 이제 다음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까? 기대해 볼 일이다.

베트콩 전략

혼자 죽으면 서럽지만 셋이 죽으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