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6. 8. 21:06

보고 싶었다#SRPG

 프랑스 연고의 게임 개발사라 한다면 흔히들 유비소프트를 떠올린다. 관심이 있다면 후순위로는 앙카마의 언급이 나올 것이다. 앙카마는 단순 게임사라기보다는 조금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다. 2003년 srpg 도푸스를 출시한 이후 관련 게임, 애니메이션 제작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신 출시작은 크로스플랫폼 카드게임Krosmaga인데, 아쉽게도 만듬새에 비해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한국에선 왁푸라는 이름은 게임보다는 동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mmorpg 왁푸의 후속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 게임 출시에 발맞추어 더 빨리 공개되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아쉽지 않은 관심을 받아 후속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나(킥스타터로 조금씩 후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게임의 경우 연식이 오래된 탓인지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양도 하루이틀 패는게 아니다

 내가 왁푸를 처음 접했던 것도 벌써 6년 전이다. 게임 자체는 2006년 개발을 시작하여 2011년 오픈 베타를 거쳐 12년에 정식으로 출시했다. 스팀 입점 및 기존 클라이언트와의 연동을 위해 14년 스팀에서 베타 엑세스가 있었는데, 학교 여름방학과 시기가 겹친 덕에 잠시 돌려볼 수 있었다. 당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맵이 엄청 넓었다.

 꽤 시간이 흘러 한달 전, 올해 5월 초순에 꾹모군을 필두로 몇명의 사람들이 다시 왁푸를 다운로드 받았다. 1명에서 최대 5명의 인원이 왁푸를 켰는데, 아쉽지만 6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잡았던 것은 나였다. 2주정도 돌려 100레벨을 찍었다. 메이플도 이렇게 열심히는 안 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본 게임엔 큰 외형적, 시스템적 변화는 없었다. 다만 기존 게임의 거대한 필드맵이 상당히 쪼그라들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지역에 따른 레벨업 곡선도 상당히 가팔라져, 적정레벨 35의 필드 옆에 110의 필드가 떡하니 보이기도 한다. 선공몹은 없었던 덕에 비명횡사는 안 했다. 게임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속칭 레벨업 구간이 명확해지는 모습이다.

 게임은 개발사의 전작 Dofus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배경 World of Twelve를 공유한다. 주인공인 플레이어는 어스시마냥 마법사 섬에 들어가서 해리 포터를 찍기도 하는둥, 뭐 어떻게어떻게 이것저것 하는 것 같긴 한데, 솔직히 텍스트를 열심히 안 읽어서 잘 모르겠다. Ogrest라는 메인 빌런이 Zinit 산 위에서 펑펑 울어버린 탓에 세계의 대륙들이 물에 잠겨 제도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내 생각에 이 게임의 핵심은 불가피하다면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투 시스템, 둘째는 경제 시스템, 셋째는 에카플립으로 대표되는 비주얼이다.

많이 봤을 배치 화면

 일단 게임의 주력이 되는 전투의 경우, 이소메트릭 타일 위에서의 턴제 AP 시스템이다.. 매턴 재생되는 다량의 포인트를 전략적으로 투자하여 몹, 다른 플레이어, 보스와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가짓수가 좀 적은 편이다. FF14나 WOW를 보면 당장 쓰는 스킬바만 1~0 꽉 채워 대여섯줄씩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만렙을 찍어도 스킬바에 넣을 수 있는 스킬은 총 12개 뿐이다. 실제 열리는 스킬은 그보다는 많긴 한데, 그것도 총 서른개를 밑돈다.

 클래스별로 파고들기가 조금 얕아보이긴 하지만, 사실 가용 스킬의 가짓수가 전략성에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턴마다 각자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어 있는데, 스킬이 많다 해도 다 쓰지도 못할 뿐더러 시간만 괜히 오래 쓰게 되었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므로 밸런스 맞추기도 어려웠을 것이고...태생적인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신 클래스 밸런스는 잘 잡고 있는 것 같다.

 이 전투 시스템은 꽤 확장성이 좋다. 고정 타일 위에서 하는 퍼즐이라면 대부분 구현 가능하다. 여기저기 퍼즐이 들어가 있고, 덕분에 게임의 퀘스트 내용이 꽤 알차다. 소코반도 해볼 수 있고 식물 대 좀비도 있다. 모양새만 대충 만들어둔 것이 아니라 나름 도전정신을 부추길 정도의 난이도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Sunflower"에서 "Sunpower"를 얻어 "Peashooter"를 배치하는 미니게임

 타인과의 접점이 많지 않은 게임이다. 대신 시장에서 금전관계를 자주 맺게 된다. 게임엔 제작 시스템이 있다. 필드에서 자생, 재생하는 원자재를 수확해 npc에게 배운 기술로 직접 여러가지 만들어 쓸 수 있다. 장비에서부터 호주머니, 집에 꾸미기용으로 설치할 수 있는 장식물, 퀘스트용 아이템까지 다양하다. 사실, 제작의 세부 카테고리가 17가지나 되는데, 이것들의 레벨을 일일히 올려두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온갖 아이템이 마켓에 올라온다. 약간의 수수료만 선불로 내고 등록하면 사려는 사람이 알아서 사 간다. 재료 아이템이 부족하거나 가방이 필요하면 여기서 살 수 있다. 퀘스트 관련 아이템도 마찬가지다.

 왁푸의 마켓 경제는 안정적이다. 게임 입문자도 어렵지 않게 진입할 수 있다. 초반부터 드롭되지만 극후반 레벨구간에서야 쓸모가 있는 아이템의 경우 쏠쏠한 값을 받고 팔아제낄 수 있다. 저렙서부터 폐지만 열심히 주우면 중-고레벨까지 재정난은 없는 편이다.

 장비 종류가 다양하고 레벨 외 기타 착용제한이 없는 것도 한 몫 한다. 캐릭터 클래스 자체는 17종이나 되는데, 클래스 전용의 스탯이나 게이지를 쓴다던가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모든 장비를 돌려쓸 수 있었다. 덕분에 캐릭터 옷 입히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우린 부자가 될 거야

 왁푸의 아트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사실 뭐 "압도적"인 그래픽이라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이소메트릭 시점에서 꽤 볼 맛 나게 꾸몄다. 맵 자체가 타일 기반이긴 한데, 중복 타일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레고의 일회성 부품마냥 새로 그려지는 부분이 많았다.

 넓은 세계를 꼼꼼히 구현한 것도 눈에 띈다. 2018년경 단행된 업데이트로 전체 맵이 한번 메이플스토리 '빅뱅'업데이트처럼 쪼그라들었다. 아쉽긴 하다. 넓은 맵이 '모험'에 대한 약간의 로망을 충족시켜준다는 감상도 있었으니.

오밀조밀한 디자인 개선이 있긴 하다

 아종족을 비롯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을 매력있게 잘 그려내기도 했다. 게임 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꽤 훌륭하다. 프레임 장수가 꽤 많아 부드럽다. 장비 아이템 착용에 따른 캐릭터 외형 변화도 세세하다. 워낙 그려야 할 것이 많은지, 스킬 모션들 중엔 겹치는 것도 왕왕 있는데, 이 경우 추가 이펙트를 달아 차별화하고 있다.

시내의 모든 집은 단순 배경에 지나지 않으나 내부가 구현되어있다.

 돌이켜보면 왁푸는 한 번쯤 건드려 볼 가치가 충분한 게임이다. 자세히 적지는 않았지만 보스 기믹도 꽤 다양하고 탐구해볼 깊이도 있다. 커뮤니티 시스템도 그럭저럭 합격선이고, 폐지 줍기도 꽤 즐거웠다.

 하지만 게임은 아쉽게도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 들날 있듯 왁푸도 흥푸인 시절이야 있었을 것이다. 수박 겉핥기하듯 조금 해본 내가 뭐라 더 길게 쓰기도 힘들겠지만, SRPG 왁푸는 태생적으로 만인에게 먹히는 게임은 아니다. 아쉽지만 턴제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고, 울티마류 자원 채취 시스템도 이젠 낡고 지루하다.

 게임의 유인요소가 애매하다. 애니메이션 왁푸를 보고 원작 게임을 시작해본 사람도 많을 테지만, 게임의 전투가 나란히 준비 땅 하고 시작하는 턴제라, 돌발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적대 국가의 플레이어가 pvp를 걸어도, 턴 제한시간동안 질질 끌어 기습이 무의미해지기도 하고, 전투 중도 참가가 불가능해 도와줄 수도 없다. 덕분에 pvp는 필드보다는 전용 전장에서 주로 하게 되는데, 당연스럽게도 이건 이제 고인물 컨텐츠가 되셨다.

 일종의 다인 협동 컨텐츠가 적다. 20인 레이드같은거야 어차피 불가능하고(자기 턴까지 20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pvp 완성도는 아쉬운 수준이다. 최대 파티 인원인 6명이서 던전을 도는 것밖엔 딱히 즐길 것이 없다.

 이런 개인주의 양상에 부채질을 하는 것은 다중 클라이언트 플레이어의 존재인데, 여러 계정을 한번에 켜 혼자 여섯개의 캐릭터를 키우는 것이다. 턴제 게임이라 가뜩이나 하기 쉬운 편법인데다, 제제할만한 근거도 없고 방법도 없다. 앙카마는 이런 기형적인 플레이를 게임 속에 편입시키기 위해, 하나의 클라이언트에서 자기 계정의 캐릭터를 3명까지 직접 조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유료 플랜을 출시했다. MMO로서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찌라시에 따르면 앙카마는 게임 wakfu에 대해서는 유지보수만 계속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신작 waven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dofus나 wakfu랑 비슷한 srpg인데, 매번 중박은 치는 앙카마이니만큼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턴제 전투에 있어서는 상당한 노하우가 쌓이지 않았을까?

 베타를 진행하고 있는 waven에 관심이 간다면, 전작인 왁푸 역시 한번쯤 건드려볼만 하다. 금방 망하지는 않겠지만, 망하기 전에 한번쯤 해 보자. 나는 같이 돌릴 사람이 없어서 100레벨 찍기를 자체 종점으로 두고 마무리했다.

바이바이, 도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