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6. 23. 05:54

<그레이 시스터>는 예의 꿈쩍도 하지 않는 몸짓 하나만으로 나를 손짓해 불렀고,
오지 말라고 막았다.

 어차피 세상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힐링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죄수 장기 빼서 팔아먹고 가죽으로는 소파를 만들면서도 편안함이며 만족감이며를 누군가는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르 구분도 불분명한 "힐링 게임"류가 따로 있는 것도 사실이다.

 힐링 게임이라는 건 보통 분위기나 그래픽, 스토리상의 특징이나 미비한 폭력성 따위의 외관상 특징들로 라벨지어진다. Gris,Flower,오리나 투더문 같은 게임이 보통 힐링 게임으로 불린다.

 혹은 게임의 디자인 자체가 플레이어를 이완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유형도 있다. 달성 목표나 스토리상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거나 없어 플레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 경우. 아니면 목표에서 한참 외도해도 별 면박을 주지 않는 경우. 샌드박스가 이 범주에 들어가기 쉽다. 예로는 목장이야기, 스타듀밸리, 동물의 숲, 그리고 A Short Hike.

 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장르다. 사실 개발사가 힐링 게임을 표방하고 있으면 힐링 게임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편하다. 로그라이크나 인디랑 비슷하다. 퍼마 데스도 아닌데 로그라이크 맞나요? 로그라이크입니다. 대형 개발사의 투자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인디 게임 맞나요? 인디 게임입니다. 자기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이들에 비하면 릴렉싱/힐링 게임은 착한 편이다. 애초 애매한 장르라 뭐라 하기도 힘들다.

 아무튼 A Short Hike는 차분한 어드벤쳐(힐링)게임이다. 19년 4월 험블 오리지널로 선공개되었다가 동년 7월에 정식 발매됐다. 개발팀은 음악 한명 그 외 한명으로 두 명인 인디 규모다. 은근슬쩍 라이브러리에 있길래 켜 봤다. 험블 동봉으로 흘러들어온 것 같다.

 주인공은 이모 차를 타고 화산섬에 들어온다. 전화를 기다리는 주인공에게 이모가 이곳은 권외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해변 한 바퀴 걷고 산도 한번 타고 내려오라고 권한다. 올라가면 된다.

가족간 공감대를 형성해보자

 게임 땡 시작하자마자 정상까지 달릴 수는 없다. 해안가 숲은 그냥저냥 산책길인데, 높은 곳에서는 3D 플랫포머 비슷해져서 n단 점프와 글라이딩을 활용해야 한다. n단 점프를 하려면 황금 깃털이 필요하다. 이 깃털의 갯수만큼 점프할 수 있다. 이 깃털은 스태미나의 역할도 한다. 달리기나 벽타기를 할 때도 깃털 게이지가 조금씩 소모된다. 가만히 서 있으면 금방 충전된다.

 산의 높은 곳에서는 깃털이 얼어붙어 깃털 게이지가 자동 충전되지 않는다. 따듯한 불가나 온천에 들어가서 녹여줘야 한다. 덕분에 높은 곳에서는 조금 더 퍼즐적인, 플랫포머적인 면모가 강해진다. 그래도 마리오 1-1 스테이지보다 어려운 구간은 없다.

 이 중요한 황금 깃털은 섬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다. 이모네 산장 근처의 해변가에서 모래성 쌓고있는 친구한테 삽을 구해다주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바닷가의 작은 절벽을 올라도 하나 받는다. 구석의 보물상자를 뒤져도 하나 나오고 달리기 시합 상품으로도 하나 받는다. 아니면 바닷가 배구에 어울려줘도, 조개껍데기를 모아다줘도 받을 수 있다. 더 간단하게는 트레일 근처의 관리직원한테서 몇 개씩 살 수도 있다. 길 중간의 되팔렘도 몇 개 판다.

이동 관련 아이템을 상점에서 판다

 이 게임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산을 오르는 혹은 오를 준비를 하는 과정 자체를 이쁘게 포장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섬을 돌아다니는 npc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즐겨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산만 깔끔하게 오르려 해도 황금 깃털때문에 한번쯤 힐링 순회를 해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솔직히 어차피 '힐링/릴렉싱'하려고 이 게임을 켠 사람들은 안 시켜도 일일히 말 걸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이 펭귄인지 제비인지 비슷한 조류다. 덕분에 공중에서 글라이딩이 가능하다. 날아다니고 있으면 브금도 바뀐다. 맵 곳곳에 트램펄린이나 상승기류가 있는데, 이걸 타고 날아볼 수도 있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날 수도 있다. 산꼭대기같은 곳에서 글라이딩하면서 내려오면 기분좋다. 자주 하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관련 퍼즐 같은 것은 없다. 달리기 시합에서 가끔 쓰는 정도.

물론 낙뎀은 없다

 화산섬 곳곳에서 여러가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처음부터 들고 시작하는 모자나 바닷가 조개, 동전, 막대기 등 용도가 불분명한 폐지들부터 본격적인 도구들도 있다. 낚싯대, 삽, 곡괭이 같은 것들인데, 도구의 원래 기능을 한다. "생활 컨텐츠"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대놓고 동물의 숲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게임 분량상 깊이는 없지만 소소하게 가지고 놀 수 있다.

별 모양 구덩이가 어디 흔한가?

연못에서 70센티짜리 짱큰잉어를 낚았다

 등장인물들이 다 동물이라 동물의 숲 생각이 더 난다. 디자인 기괴한 친구들은 또 없어서 다행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온갖 동물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다. 개중에는 황금 깃털을 주는 친구도 있고 안 주는 친구도 있지만, 꽤 많은 동물들은 저마다 이벤트가 있고, 고유 대사는 다 있다. 왔다갔다 말 걸고 다니면 진행 상황에 따라 대화도 조금씩 달라진다. 반복도 어지간하면 없다. 말 걸 때마다 다른 대사를 뱉는데, 이정도면 꽤 공들였다.

 외곽선을 꽤 잘 처리한 것 같다. 카메라와 폴리곤, 그 뒤의 폴리곤 사이의 거리에 비례해서, 진하게 처리하면 좋을 부분에 진한 외곽선을 그렸다.

원경 표현도 괜찮다

 준비된 ost도 게임이랑 잘 어울리게 편안해서 좋다.

 카메라 움직임은 전반적으로는 괜찮은데, 섬 외곽을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홱홱 돌아가서 캐릭터도 화면에 제대로 못 잡을 때가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면 즐겁다. 도트 그래픽을 좋아하는데, 이건 픽셀 렌더링이긴 해도 분위기가 잘 살았다. 액션같은게 없고 워낙 느긋한 게임이라 잘 맞물린다. nds 시절 동물의 숲이 생각나는 것도 있다. 별 모양 구덩이같은 것을 보면 생각이 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주인공의 이야기도 있으니 직접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