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에 무신이 산다 들었다
누군가 내게 밀리터리 버거를 권한 적 있다. 논지로는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음","대화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음" 정도가 있었는데, 말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굳이 돈 주고 사 먹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도 그런 게임이다. 한번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이밀어볼 게임은 아니었다. 타자에 대한 게임 추천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고, 그 기회를 잘못 사용하면 피추천인에게 "똥겜이나 추천하는 사람" 이 되어 버리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취향이 갈릴만한 수준을 넘어 만듬새 자체가 애매한 게임은 내 라이브러리에만 고이 간직하는 것이 건전한 생활태도가 아닐까.
Dead in Vinland는 프랑스계 개발사 CCCP에서 2018년 봄에 내놓은 게임이다. 배급사는 Dear Villagers 라는 곳인데, 내 식견이 좁은 탓이겠지만 둘 다 생소하다. 대형 개발사를 끼진 않은 모양. CCCP가 최근에 스팀에 낸 3가지 게임은 공통적으로 Dead in~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시리즈물인데, 스토리적 연관성은 없고 "시뮬레이션", "턴제 전투" 정도의 디자인적 방향성만 공유하고 있다.
나름 꾸준한 개발사
Dead in Vinland는 그 시리즈의 두 번째 타이틀로, 약탈자들에게 거처를 잃고 한 섬에 표착하게 된 바이킹'틱'한 pc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섬에 자기들뿐이 없으면 적적해도 편하련만, 하필이면 또라이 깡패가 사는 섬이다. 매 주 상납금을 요구한다. 게다가 피부가 파란색이며 반투명하고 후광까지 비치는 신적인 존재들까지 있는 모양이다. 깡패 Bjorn의 횡포에 맞서 도광양회 존버하며 자유신장 파벌을 결성해 제위를 따먹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뮬성, 전략성이 부각되며 플레이어가 조작하게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노동과 전투로 나눌 수 있겠는데, 노동 파트는 주사위굴리는 보드게임이고 전투는 다키스트 던전의 열화판이다. 그 외로는표착한 섬을 탐험하면서 발생하는 이벤트 및 스킬체크가 있다.
우선 캐릭터는 스탯이 5개. 스킬이 20개 있다. 5개 스탯은 hp다. 100%까지 쌓이면 캐릭터가 간다. 스킬은 노동 능력치다. 벌목이 높으면 나무 캐는 수량이 많아지고 힘이 좋으면 나무를 캐면서 퍼티그가 덜 쌓인다. 김성근 감독의 말씀대로 스킬은 쓰면 쓰는대로 알아서 레벨이 오른다. 스탯 상태에 따라 스킬 레벨이 내려가고 어쩌고 하여간 복잡한데, 깊이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스탯은 낮을수록 좋고 스킬은 높을수록 좋다는 사실만 기억해두면 그 이상 신경쓸 일도 없다.
결국 두어가지 노동만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스킬들과 스탯들은 전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벌목, 채광, 요리 이런것들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힘스탯이 100이여도 0이랑 데미지가 똑같다. 어질리티가 100이여도 전투 시 속도가 0이랑 똑같다. 인저리가 99%여서 죽기 직전이라도 잘만 싸운다. 데드 인 빈란드의 전투와 노동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 게임의 전투는 다키스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굉장히 얕다는 점이다. 모든 캐릭터는 몇 가지 스킬셋을 공유한다. 스킬 아이콘만 다르고 내실은 완전히 똑같은 캐릭터가 여럿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스킬들은 5개 고정이다. 레벨업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 캐릭터 스펙도 레벨업만으론 오르지 않는다. 이는 후술한다.
똑같은 스킬을 매 턴 4번씩 쓰는게 정말 재미있을까?
전투가 굉장히 루즈하다. 우선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6ap에 10hp 정도의 스펙으로 시작한다. 이후 강화하게 되면 8ap에 15hp 정도의 스펙을 갖게 되는데, 적의 스펙도 이와 비슷하게 스케일링된다. 스킬마다 먹는 ap가 제각각이고, 평타에 해당하는 스킬이 보통 2~3을 먹는다. 후반부가 되면 한 캐릭터의 턴마다 이러한 평타를 너댓번씩 써가며 싸우게 되는데, 괜히 느리기만 하고 재미없다. 평타 스킬은 또 쎄지도 않기 때문에, 적이 피해 저항이라도 달고 나오면 한 전투가 10턴은 족히 먹는다. 캐릭터들의 기본 명중률도 애매한데, 표기는 90%인데 실제 명중률은 명백히 그에 못 미친다.
버프/디버프도 애매하다. 초반에는 쏠쏠하게 써먹는 디버프가 중반만 넘어가도 땅볼을 찬다. 적들의 디버프 저항이 근 40%를 찍기 때문이다. 뭐 엘리트 몹이라던가 보스라던가 이런 개체도 아니고, 길에 굴러다는 쫄이 이 정도 저항을 가진다. 아군에게 적용되는 버프는 전부 지속시간이 1턴이다. 2ap짜리 버프를 걸고 2ap짜리 평타를 세 번 쳐야 캐릭터의 턴이 겨우 넘어간다. 애니메이션도 길고 지연시간도 길어서 기다리다보면 조금 화가 난다.
똑같은 스킬을 계속 쓴다. 애니메이션이 길다. 디버프 저항이 쓸데없이 높다. 적 회피율도 미묘하게 높다. 한 턴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전투 밸런스가 애매하다. 가끔씩 무작위 스탯 보너스를 달고 나오는 적이 있어, 포장을 까서 일일히 확인해야 한다. 등장하는 적의 가짓수 자체도 적다. 전투가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다. 다키스트 전투도 하다보면 질리는데 이건 더 빨리 질린다.
전투 출전 상한은 3명 고정이다. 이벤트전이고 뭐고 없음
어이없게도 캐릭터 키우기 자체는 퍽 재미있다. 전투에서 이기거나 스킬을 올려 캐릭터 레벨을 올리게 되면 트레잇 가챠를 돌릴 수 있다. 다키스트 던전으로 치면 perk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노동에 도움이 되는 트레잇과 전투에 도움이 되는 트레잇이 나눠져 있는데, 캐릭터 육성 방향에 따라 골라잡으면 된다. 소소하게 즐겁다. 아마 이 부분이 dead in vinland라는 게임에서 내 전략이 방해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서가 아닐까. 다른 부분들은 후술하겠지만 RNG 폭풍이다.
야 호
트레잇은 레벨업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다. 각종 이벤트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고, 처음부터 달고 시작하는 것도 있다. 병이나 부상은 일시적인 트레잇 취급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쓸데없이 빈발하니 솔직히 귀찮다. 기분이 좋고 지루하고 손가락을 다쳤고 배부르고 어쩌고 뭐가 많은데, 이럴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이런 사소한 트레잇은 보통 존재감이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실속은 없는 느낌이지만 큰 흠은 아니다.
캐릭터가 한두명도 아니고 이런걸 일일히 확인하면서 관리해줄 순 없다
여기서 애석한 것은 이 게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벤트는 내 조작과는 전혀 상관 없이 강제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밥을 잘못 먹어서 설사를 한다. sickness가 오르고 노동 스킬이 낮아졌다. 이해할 수 있다. 나무를 베다가 어깨를 다쳐서 공격력이 낮아졌다. 장작을 패다보니 노하우가 생겨서 공격력이 올라갔어요~ 이런 이벤트는 절대 안뜨고 저런 부상만 뜨지만 넘어갈 수 있다. 캐릭터끼리 싸워서 오늘 하루 우울하다. 넘어갈 수 있다. 캐릭터 하나가 물자 도둑질을 하다가 걸렸다. 이미 훔쳐간 물건은 도로 뱉지도 않는다. K-사기꾼같은 행동거지에 화딱지가 나지만 참을 수 있다. 주인공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딸은 레즈가 되었다. 어이가 없지만 넘어간다. 캐릭터끼리 싸우더니 한 명이 탈주했다. 정말 화가 나서 그 세이브는 날렸다.
위의 사례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략적인, 어떠한 시뮬레이션, 엑스컴 리부트나 림월드 같은 게임을 상상하고 철인으로 박으면 이 게임 못해먹는다. 모르면 죽어야지 남발은 아닌데, 그보다 더 심하다. 게임에 RNG가 지나치게 많다. 이 뒤로도 언급해야 할 것이 많은데, 지금까지 위에 써놓은 게임의 모든 시스템에는 RNG가 들어간다. 그냥 하는 소리같겠지만 엄정한 사실이다. 벌목 액션으로 얻는 장작 수량은 RNG. 얻는 경험치도 RNG, 트레잇도 RNG, 밥 먹어서 차는 배도 RNG, 자다가 뜬금없이 걸리는 감기 RNG, 스킬 피해량 명중률 저항 RNG, 적 스탯 보너스 전투 보상 RNG, 그리고 놀라운 스킬체크 남발까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걸까?
미지로 가득한 이 세상
주인공 가족이 난파한 이 섬은 무신 Bjorn을 비롯한 깡패들의 낙원이다. 노동의 일환으로 섬을 탐험할 수 있는데, 각 칸마다 인카운터가 있다. 다른 피난민을 만나 섭외를 시도해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시체를 뒤지거나 호수에서 낚시를 하거나 할 수 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쓰면 뭔가 할 수 있는게 많아 보이겠지만, 사실 모든 선택지는 스킬 체크로 귀결되기 때문에, 꽤나 지루하다.
올려둔 노동 스탯을 여기서 쓴다. 이럴거면 그냥 전투 스탯에 보너스를 넣어주지
대부분의, 아마 95%이상의 거주지 외부 인카운트에서 스킬 체크를 한다. 가끔 중간보스 전투도 있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 스킬 체크를 한다. 놀랍게도, 이 스킬 체크에 실패했다고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일부 아이템을 못 먹는 경우가 생긴다. 어이가 없어서 로드로 확인해봤더니 정말 나와야 할 게 안 나왔다. 한참 나중에 다시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면 말라죽는다. 약 60% 확률을 못 뚫더니 캠페인이 터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변수통제가 뭐 하나 플레이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시뮬성과 전략성이 미흡하다. 최소한 게임 진행에 치명적인 이벤트정도는 좀 미리 알려줬으면 좋을텐데, 굉장히 불합리하다. 어쩌면 제작사는 "깡패가 지배하는 섬에 사는 것은 굉장히 고달픈 일" 이라는 감상을 전달하고자 이렇게 불합리한 디자인을 한 것은 아닐까. 아니겠지. 그냥 RNG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개발진인 것이 분명하다.
마냥 혹평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주 못해먹을 게임은 아니다. 두 번 하고싶지는 않을 뿐이지. 생존 시뮬이라는 장르 자체가 꽤 어려운 모양이다. 좀비 생존이 되든 무인도 생존이 되던 결과물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 나온 게임들로는 the survivalists, zhelter 정도가 있다. 이전 게임으로는 project zomboid, 7days to die( 이 둘은 생존보다는 샌드박스 느낌이 강하다.). 엄청 옛날 게임이라면 로스트 인 블루... 이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생존 시뮬같은건 AI 소녀처럼 2지망 컨텐츠 정도로 들어가는게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게 봤을 때 생존 파트 자체는 꽤 잘 만든 편이다. 스킬이나 스탯 시스템도 꽤 체계적이다. 일을 효율적으로 시키기 위해서는 꽤 머리를 굴려야한다. 일 시키면서 피곤하기는 해도 재미없어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다. 생존 말고 전투가 엄청 재미없는데다, 전략이나 시뮬을 게임 태그로 달아놓은 것 치고 강제 이벤트가 너무 많아서 그렇지. 철인으로 하지 않고 세이브로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어드벤쳐 게임 하듯이 하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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