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12. 26. 19:46

 

내 부하는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당신 부하는 시시각각 줄어가지
결말은 불 보듯 뻔해

 평소 관심이 가던 게임은 아니었다. 딱히 유명한 게임도 아니다. 그런데 왜인지 익숙하다. 왜일까. 디스코드 검색창에 "쥐잡자" 내지 "쥐잡이" 같은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동방 좋아하는 국모군이 2017년부터 계속 한 마디씩 던진다. "ㅠㅠ쥐잡자" "쥐잡자?" "쥐잡자.." "시민님 쥐잡자" "쥐잡이 레전드는 깨야지" 쥐잡이 2는 어떠냐구"... 기타등등. 그의 플탐을 엿보니 어느새 버민1,2 합쳐 140시간은 박은 모양이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에게 이렇게 어필하는 것인지 알아보았다.

 연중무휴 쥐잡이를 들이밀던 국모를 선장으로 삼아 결국 11월 초 버민2호가 출범한다. 멀리 가지는 못하고 앞바다에 침몰했는데, 흐지부지된 이유는 파티원 한 사람의 "마우스"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하하.

 스웨덴의 fatshark라는 개발사에서 이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다. 버민타이드 1은 15년 출시된 물건인데, 레포데가 연상된다는 유저 감평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의견을 개발자들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후속작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던 것인지, 버민타이드 2는 레포데 물이 좀 빠졌다. 일반적인 코옵 슈팅의 디자인에, 이 게임만의 개성이 약간.

그러나 이 파티가 다시 모이는 날은

 사실 이 게임의 개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게임의 디자인적인 면에서보다는 외형적인 부분,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IP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레포데라는 거푸집 안에 엔드타임을 부어 주조한 것이다. 최신 그래픽을 칠했다. 폐파밍이 생겼다. 크게 보면 그 정도가 끝이다. 근데 난 워해머는 잘 모른다. 그러니 할 말이 별로 없다.

 게임은 워해머 판타지의 엔드 타임을 배경으로 하는데, 말만 세기말이고 '미래는 우리 손으로 개척하는거야!' 같은 엔딩을 띄우는 여타 게임, 만화와는 달리 엔드 타임에서는 정말 세계관이 멸망한다. 워해머 판타지의 수익이, 한창 개가를 올리고 있는 40,000k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시리즈가 종결되었다고 한다. 근데 또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의 비디오 게임들이 인기를 끌면서 다시 부활한댄다.

 버민타이드 시리즈의 주적은 스케이븐이다. 쥐 수인들이다. 딱히 귀엽진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참피같다. 이들은 "뿔난 쥐"라는 악신을 숭배하는 종족인데, 그 신의 명령으로 다른 카오스 세력에 합세해 세상을 멸망시키 위해 분주분주하다.

 이들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5명의 영웅들이 뭉쳤는데, 과연 영웅의 품격이라 해야 할지,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코로나 시대의 강령에 부합하듯, 한 명을 빼고 4명의 영웅을 골라 캠페인을 돌게 된다. 게임에서 그리는 이들의 분주분주한 노력에도 올드 월드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구웨엑

 음, 단적으로 말해 쥐 옷 입은 레포데가 맞다.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캠페인 뺑뺑이다. 스케이븐을 비롯한 카오스 신도, 비스트맨 따위의 적이 떼거지로 달려든다. 적의 유형은 간략하게 쫄, 엘리트, 특수, 보스로 나눌 수 있는데, 쫄은 쫄이고 엘리트는 많이 쎈 쫄이다. 방패로 공격을 막거나 창을 찌르거나 한다. 특수는 레포데의 특수 좀비 포지션이다. 플레이어를 마운팅하거나 끌어당기거나 독가스를 던지거나 한다. 보스는 보스다. 너댓종류 있고 보스스러운 체력바가 뜬다.

 레포데와 비교하자면 개체 수 자체가 더 많은데, 근접 전투 위주인 이 게임 특성상 여럿의 적을 근접 스플래쉬로 잡아내게 된다. 원거리 공격은 장탄 수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캐릭터가 아닌 한 특수한 적들의 머리를 맞춰 원거리에서 끊어내는 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길에 어쩌다가 일회용 폭탄이나 힘 포션같은게 놓여있기도 한다.

 짜임새 있는 전투 시스템이다. 상대하는 적의 유형마다 타개하는데 적절한 무기들이 따로 있다. 리치가 길고 공속이 느린 대검은 참피떼를 상대로, 리치가 짧고 공속이 빠른 팔치온은 보스를 상대로 유용하다. 원거리 무기들도 비슷하게 여럿 있다. 근접 무기의 경우 공통적으로 가드가 가능하고, 가드 상태에서 공격하면 광역 밀치기가 되기 때문에, 꽤 넓은 가드 범위(체감상 전방위)를 이용해 능동적인 전투를 하게 된다. 가드 타이밍에도 플레이어 숙련도가 있는 모양. 숙달되면 고인물이다.

칼로 총알을 막는다

 자기 원하는 무기를 들고 캠페인에 들어간다. 캠페인 맵의 완성도가 좋다.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동선도 그렇고 잘 짜여 있다. 처음 돌려보는 맵에서도 길을 잘 헤메지 않는다. 맵 자체는 복도식에다가 방이 몇개 뚫려있고 막다른 길이 몇개 있는 정도의,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근데 시각적으로는 꽤 탁 트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가야 할 길 앞에 적절히 적을 몇 마리 배치해놓는 식으로, 현명하고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를 유도하고 있다. 야외 스테이지의 경우 배경 그래픽 또한 뛰어난데, 떨어지면 죽고 갈 일도 없는 절벽 아래의 도시를 이쁘게 꾸며놓는다던가 하는, 장인정신에 가까운 꼼꼼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선형적이라는 느낌은 덜 받는다

 맵을 하나 깨면 캐릭터 경험치와 함께 상자를 받는다. 이 상자의 등급은 다원적으로 올라간다. 우선 맵을 깼는지, 퀵 플레이로 찾은 랜덤 맵인지, 맵에 등장하는 "고서"와 "그리모어", 보스 잡으면 나오는 "전리품 주사위"를 몇 개나 주웠는지, 그리고 운이 좋은지를 따진다. 이것저것 다 주우면 대개 최고 등급의 상자를 받을 수 있다.

 불만스러운 지점은 이 곳이다. 플레이 반복성이 높은 게임의 경우, 다회차 유저나 일일권장량 이상의 캡사이신을 찾는 유저를 위해 "추가 하드모드 버튼"을 넣는다. 이를 게임 디자인 문법에서 뭐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슈퍼자이언트의 "배스쳔"의 경우 원하는 우상을 직접 선택해 전투 난이도를 높이고 추가 보상을 받는다. 같은 개발사 "하데스"의 경우 형벌 규약을 통해 난이도를 높이고 추가 보상을 받는다. GGG의 "패스 오브 엑자일"의 경우 맵을 강화해 무작위한 적 강화를 동반한 추가 드롭을 노릴 수 있다. 명문화된 이익 없이 플레이의 변화만 이끌어내는 사례는 "엑스컴 리부트"의 세컨드 웨이브 시스템, "리스크 오브 레인"시리즈의 아티팩트 시스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름이 뭐니

 아무튼 이런 비슷한 시스템이 버민타이드 2에도 있다. 앞서 적어둔 상자 등급에 관여하는 "고서"와 "그리모어"가 그것이다. "전리품 주사위"는 플레이어가 습득해도 그냥 텍스트만 남기고 사라지고 땡인데, 고서 그리모어는 각각 HP회복 아이템 슬롯과 포션 슬롯을 차지한다. 게임에 패널티가 생기는 대신 보상이 쎄진다는 면에서는 윗문단에서 설명한 그 디자인과 근본이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건 구리다.

고서와 그리모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지참하는 것이 아니다. 캠페인 맵 곳곳의 고정된 외진 공간에 숨겨져 있다. 추가 보상을 위해서는 매 게임 일일히 이것들을 찾아서 먹어줘야 하는데, 먹으러 가는 길에 특별한 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죽 걸어가서 먹고 돌아오면 그만이기 때문에, 솔직히 귀찮기만 하다. 안 먹으면 손해보는 기분이 드는데 위치를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귀찮다.

 게다가 "패널티와 추가 보상"이라는 시스템이 버민타이드에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상자를 까다보면 "영웅의 증서" 라고 불리는 특별 임무를 받을 수 있는데, "영웅이 부활할 수 없음" 따위의 패널티를 묻고 추가 보상을 따블로 가는, 디자인 중복이 있는 셈이다.

우효~

 어찌저찌 상자를 받아서 부화시키면 템이 3개씩 나온다. 아이템의 기본 성능은 파워 수치고, 고등급에서는 스탯 보너스, 패시브 스킬 정도가 추가된다. 안쓰는 아이템은 갈아서 강화나 옵션 리롤하는데 쓴다. 커스텀 범위가 좁다. 쓰레기 옵션만 빼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엄청 고민할만한 폐지 시스템은 아니다. 종결템까지의 계단이 높기는 한데, 개별 단의 높이는 일관적이다.

 캐릭터마다 3개 직업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DLC 나온 캐릭터는 4개중 하나다. 캐릭터 레벨이 높아지면 캐릭터가 쎼진다. 별개로 5 레벨마다 특성을 3중 1택하여 찍을 수 있다. 히오스마냥. 30레벨까지 6개 특성을 고를 수 있는 셈이다. 캐릭터마다 다르고 직업마다 다르다. 기능이 비슷한 몇 개는 겹친다.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 자기만의 뉴메타를 실현해볼 수 있겠다. 효율성이나 역할에 미미한 차이를 줄 순 있겠으나, 직업이 달라지는 수준의 변화는 없다.

 조작 자체가 어렵지 않고, 빨리 익숙해질 수 있다. 대신 마스터하기엔 어렵다. 잘 만들었다. 일퀘가 있는데, 그런 것 치고는 플레이 반복성이 조금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고서", "그리모어", "영웅의 증서" 같은 변화구 컨텐츠가 애매하다. 파밍이 얕다. 스킬 트리가 얕다. 액션 자체는 재미있는데, 오래 붙잡을 지구력이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다.

 앞서 언급했던 맵 배경도 그렇고 시각적인 부분, 그리고 음악이 꽤 괜찮았다. 급박해야 할 부분에서, 빵! 하고 정신없는 음악이 터져나오는데, 해수 구제하면서 듣기에 참 잘 어울리는 소리다. 쥐떼를 잡으면서의 피 튀기는 인상도 기억에 남는다. 뭔가 시커멓고 징그러운 분위기의 모니터 너머로, 닭장 냄새며 정육점 피 냄새며 썩어가는 야생동물 시체 냄새며 하는게 공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다시 낳으면 되는데스

 정리하자면, 몇날 며칠 붙잡고 있을만한 게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120시간을 한 국모라던가) 재미는 있다. 일단 켜면 몇 시간은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스케이븐이 참피나 제리같아서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