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오두막일 뿐이었다.
Felix the Reaper, 험블 먼슬리로 받은 게임이다. 클래식 플랜으로 매달 12개씩 받고 있지만 그걸 다 켜볼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구독형 상품이라는 것이 어찌나 위험한지... 이제와서 끊기도 애매하다. 나름 결제할때는 만족스럽기도 하고? 나름 괜찮아보이는 게임도 한두개씩 끼워주고?
Kong orange라는 곳에서 만든 게임인데, 일반적인 개발사같지는 않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게임에 한정되지 않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곳인 것 같은데, 스스로 소개하기를 2011년 Felix the Reaper를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라 하니 이 게임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펠릭스라는 이름의 춤추는 사신이 주인공으로, 그가 일하는 모습을 그린다. 사신의 일이라 하면 보통 생각하는 그건데, 그냥 죽은사람 영혼을 주워온다기보다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마냥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느낌이다.
그만큼 신나셨던 거지
아무튼 춤을 추면서 일한다. 아이들도 춤이고 이동 모션도 춤이다. 퍼즐은 간단하다. 사신은 어둠=그림자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형지물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태양의 위치를 바꿔 길을 만드는 식이다. 통이나 짚더미 같은 것들을 직접 움직여 그림자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목표는 매 판 달라지지만 보통은 특정 사물을 특정 위치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20개 레벨에 5개 챕터로 쪼개진다. 분량은 대략 4시간정도 되는듯.
어렵지는 않은데 몇몇 스테이지에서 길을 잘못 들면 클리어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이 있다. 디자인의 한계인지 내 뇌세포의 한계인지, 진행이 막혔다고 따로 알려주지 않는다. 클리어에 필수적인 진행 단계가 몇 가지 있어 달성 시 때마다 화면에 표시는 해 주는데, 그 시점의 캐릭터 위치는 반영이 안되기 때문에 정확성이 부족하다. 어디서 실수했는지도 모른 채 스테이지를 재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만듬새는 투박한 편이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다. 직관성이 떨어진다. 이동 가능한 타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기가 힘들다. 스테이지 목표도 매번 간단한 그림으로만 표현해주기 때문에 목표 힌트를 매번 봐야한다. 카메라는 캐릭터 위치에 고정이고 줌인과 회전만 허용하기 때문에 맵을 넓게 보기 힘들다.
솔직히 알아보기 힘들다
"규칙은 어렵지 않지만 승리는 그렇지 않은, 그리고 대체로 정해진 정답이 있고 논리-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적 놀이"가 대충 퍼즐의 정의라고 한다. 펠릭스 더 리퍼의 퍼즐은 전형적으로 이 정의에 부합한다. 그리고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물론 난 퍼즐은 즐기지 못하므로 아무리 놀라운 솜씨로 설계된 퍼즐이라 해도 역정을 내겠지만, 잘 만든 퍼즐이 어떤 것인지는 대강 이해하고 있다.
메인 스테이지 외에는 하드코어 모드, 보너스 레벨이 있는데 다 해보진 않았다. 그냥 어려운 추가 레벨만 넣어둔 모습. 메인 20개만 다 깨면 크레딧이 뜬다.
특이하게도, 매 챕터마다 A4 3장정도 분량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잡지 부록같은 느낌이다. 인문사학적인 관점으로 '죽음'이 인류 문화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모티브가 어떤 식으로 게임의 설정에 적용되어 있는지에 대해 대강 알 수 있게끔 설명해주고 있다. 축약하면, 주인공 펠릭스가 춤을 추는 것은, 약 10세기 이래 발전되어가며 다뤄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은유, 낫을 든 해골이 희생자와 함께 춤을 춘다는 상승과 하강의 모순적인, 매력적이고 상투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펠릭스가 찾아 헤메는 그의 여인 역시 이 모티브의 큰 조각, '죽음과 함께 춤추는 소녀'에 해당한다. 마지막에 한번 등장하지만 대사는 없다. 솔직히 이런저런 설정을 열심히 구상해둔데 비해 주인공의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용이 너무 실속없지 않나 싶다. 피상적인 묘사에 만족하고 넘어가는 것일까.
게임의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얼굴로 디포르메되어있다. 사람같지 않은 생김새인게 마치 참피와 요코타로의 오촌 친척처럼 생겼다. 큰 호감은 가지 않는 모습인데, 이게 일부러 정이 안가게 만든 것인지, 약간 캐릭터의 사망 연출이 고어하다. 색감은 밝고 클러스터는 단순화되어 있지만 상황 자체가 꽤 잔인한 편이다.
낫닝겐
펠릭스라는 캐릭터에 관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나?
솔직히 소재가 무거운 것에 비해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죽임당하고 춤춤당하는 불행한 희생자들에 대한 인물 묘사는 꽤 그럴듯하다만, 개인 취향 차원에서 굳이 덧붙이자면 이런 스플래터 필름같은 연출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5초면 리스폰하는 팀포트리스도 아니고 말이죠.
그리고 의인화된 죽음-사신이라는 주인공 펠릭스에 대한 묘사도 단지 "춤을 잘 추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물론 퍼즐 게임에서 주인공이 어쩌니 주변인물이 어쩌니 길게 주절대는 것도 우습지만.
구성 자체는 의외성이 있었다. 뜬금없이 읽을거리를 들이미는 것도 웃기고. 로어를 이런식으로 대놓고 읽어보라고 만들어놓은 게임은 처음 본다.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그거 조금 보시라고 어디 추천할 만한 게임은 아닌 것 같다. 답도 없는 퍼즐 마니아라면 한번 건들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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