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스트레이라이트 안에 육체의 연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의 뒤에 숨어서 스스로를 봉인하고 내부를 향해 성장하여 단절 없는 자아의 우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인디 게임이 차고 넘치는 시대가 왔다. 동시에 인디라는 구분칭이 노트북에 붙이는 스티커와 다를 바 없는 장식이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그램 뒤에 애플 스티커를 붙여놨다고 뭐라 지적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버린다.
게임은 팔려야 하고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니 인디"씬"이라는 것이 자본(혹은 안정) 에 유착되는 것은 또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여하튼 필피쉬 시절의 개성적인 (필피쉬 개인으로 말하자면 무슨 해적과도 같은) 인상은 사라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분히 "인디스러운" 게임층은 아직 남아있는데, 쯔꾸르식 스토리 게임이 바로 그런 류다. 사실 게임의 틀 자체가 막 개성적이진 못하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인디로 소개할 경우, 아 인디구나 하고 슥 넘어갈 수 있는 정도.
과연 대기업의 입사지원서는 다르다
이 지면에서 다루는 Yuppie psycho가 이런 체급이다. 탑뷰 도트 그래픽의 어드벤쳐 게임이다. 개발사는 Baroque Decay고 배급은 Neon Doctrine인데, 둘다 인디 사이즈이며, 특기할 점은 없다. 다만 개발사 Baroque Decay의 전작을 살펴보면 여피 싸이코와 마찬가지로 탑뷰 어드벤쳐 계통(마더-류 라고 해야하나?)의 도트 그래픽 게임인 Count Lucanor가 나온다. 여피 싸이코는 나름의 기술적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라이언 패스터넥이라는 이름의 사회 초년생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사람의 가치가 ABC의 등급으로 나뉘는 사회에서, G등급 시민의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새 제도권 대기업의 입사제안을 받게 된다. 헐레벌떡 달려간 주인공이었지만 어딘지 회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동으로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도착한 10층, 그리고 비어있는 사장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조건의 계약서였는데, 요구하는 업무라는 것은, 회사를 자신의 둥지로 만들고 있는 마녀를 사냥하라는 것이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모양. 위쳐인가?
여피 싸이코의 배경은 살짝 특이한 편이다. 비록 타자는 쯔꾸르 게임에 딱히 관심이 없지만, 근미래 혹은 현대의 회사 빌딩을 배경으로 두는 미스터리라고 하면 꽤 생소하게 느껴진다. 어디 심상세계 이세계 꿈나라 이런 곳이 쯔꾸르 맛집으로 유명한데, 빌딩이라? 여피 싸이코는 회사라는 소재도 잘 살리고, 오컬트적인 내용도 같이 소개하고 있으니 가히 흥미롭다.
여튼 소재는 흥미로운 편이지만, 솔직히 이야기의 진행 구조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진행에 있어서도 걸리는 부분이 많은데, 엔딩 구성도 별로 내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선 모르고 지나가면 스토리 상 놓치는 것들이 좀 많다. 하라는 대로만 슥슥 진행해도 엔딩을 띄워주기는 하는데, 이러면 엔딩을 봐 놓고도 뭔 일이 일어난건지 잘 모른다.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꽁꽁 숨겨둔 것인데, 이런 전략이 먹히는 유저층이 얼마나 될까 의심스럽다. 사실 그냥 그런 사람들 좋아하라고 만든 게임이라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안경을 잃어버렸더니 화면이 이래 됐다.
스토리를 꼼꼼히 훑어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좀 있고, 맥거핀으로 버려지는 것들도 좀 있는데, 사실 뭐 이런 것들도 "즐기는" 타입이라면 별 문제 아닐 것이다. 내겐 문제지만. 내겐 문제다. 책으로 따지면 나는 작가와 독자간의 수수께끼 한 판 승부 같은 것엔 취미가 없다. 내가 유별난 것은 아니라서 보통 "잘 팔리는" 는 미스테리 소설은 마지막 정답 파트에서 친절하게 다 해설을 해 주는데, 이 게임엔 그런 파트가 따로 없으니(엔딩마다 파편화되어 있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디지털 게임이니만큼 해당 기능을 커뮤니티에라도 이양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그런 면에서 자신이 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캐릭터는 썩 괜찮다. 특별히 인상이 강렬한 캐릭터는 따로 없었지만, 게임 분량에 비해 등장한 캐릭터가 많음에도 각자 개성은 있었는데, 디자인 자체가 대단히 매력적이진 않았기 때문에, 대사나 행동이 잘 짜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별로 꼴리진 않네요
여피 싸이코의 레벨 구성이 조금 재미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일종의 홀로 사용하고, 각 10여개 층이 독립 어트랙션으로 분리되어 있다. 종종 엘리베이터가 아닌 층간 통로도 있지만, 보통을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게 된다.
각 층은 단순히 말하자면 던전이라, 그 층 안에서 퍼즐을 풀거나 보스전을 하거나 하는데, 퀘스트를 따라 이 층 저 층 자주 재방문할 필요는 없어 좋다. 동선이 깔끔하다.
게임의 세이브가 다소 불합리한 것은 마음에 안 들었다. 모르면 죽어야 하는 퍼즐이 몇 있는데, 이런데서 죽으면 다시 넘겨야하는 대사창이 좀 길다. 이 게임은 일종의 수동 세이브를 채택하고 있는데, 세이브 스팟이 적절한 곳에 없으면 이 사달이 난다. 스토리 집중력을 까먹는 결함이다. 대사창 스킵도 안된다.
게임의 공략에 사용되는 아이템을 유한하게 만들어놨다. HP 회복 아이템부터 손전등 용 밧데리까지 전부 마찬가지다. 세이브에도 횟수 제한이 있다. 이런 장르엔 경험이 없어서 추측하자면 긴장감 부여를 위한 술책인 것 같다만. 결국 자원이 막히는 일은 없이 계속 주어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HP 회복용 음식 아이템이 조금 빠듯해서, 이거 어쩌면 진짜 회복 아이템이 다 떨어져 세이브 날리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지만…
탕비실 전문 털이꾼
어지간한 인디 도트 그래픽만큼 상투적인 것도 없다! 그리는 방법도 색감도 다 비슷비슷하니 솔직히 이거랑 비슷한 그래픽의 게임을 열댓개는 본 것 같다. 그럼에도 여피 싸이코의 그래픽에서 눈여겨볼만한 것들이 있다면 인게임 애니메이션 컷씬, 그리고 자체엔진빨의 연출력이 되겠다.
애니메이션 컷씬은 정말 잘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인게임 연출도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사항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음향인데, 이것도 꽤 괜찮다.
볼만한 편
게임의 담당 작곡가가 괜찮은 사람이다. va-11 hall-a ost의 작곡가인데, 내 취향엔 맞았다. 여피 싸이코의 ost 풀 자체는 발할라보단 좁고 따로 제대로 된 보컬곡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들어볼 만 하다. 하지만 풀 트랙리스트를 작업용으로 틀어놓기엔 미스테리한 컨셉의 곡이 많아서 애매하다.
전작인 루카노르 백작과 비교하는 사람들은 나아진 점도 있지만 전작한 못한 점도 있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일보 전진 이보 후퇴는 아닌 모양이다.
나로서는 불만족스러운 요소가 많긴 하다. 스토리도 명쾌하지 않고, 여러 번 플레이를 강요한다. 지가 로그라이크도 아니고. 세이브 구조는 귀찮게 되어 있어서, 일단 한 번 죽으면 자기가 죽었던 자리까지 가는게 정말 번거롭다.
그래도 심미적으로 봤을 때 괜찮은 부분이 꽤 있었고, 굳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둘로 나누면 긍정에 무게를 싣겠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평가로서의 긍정과 부정이지, 추천할 수 있느냐와는 또 별개라서,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별로 추천하고 싶은 게임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개인 리뷰 > 조각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에이리언:파이어팀 엘리트 (Aliens: Fireteam Elite) (0) | 2022.01.09 |
---|---|
[리뷰] 마인크래프트 던전스 (Minecraft Dungeons) (0) | 2022.01.04 |
[리뷰] 배틀 브라더스,결정판 (Battle Brothers) (1) | 2021.04.15 |
[리뷰] 펠릭스 더 리퍼 (Felix the reaper) (0) | 2021.02.20 |
[리뷰] 킹덤: 클래식 (Kingdom: Classic) (0) | 2021.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