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여러분의 계획이 불운으로 실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좋은 계획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가 세운 계획이 불운히 무너진다면, 그건 잘 세운 계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확률은 공평하지만 주어지는 기회의 총량은 불공평하다. 상황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며, 따라서 전투는 불합리하다. 여기 적응하거나 순응할수는 있겠으나 이걸 즐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 내 95%가 2번 연달아 빗나가고 상대의 30%는 당연한듯이 맞아버리고 하는 것을 보면 도무지 불쾌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더 나아가기 앞서 지난 이야기를 먼저 하자. 솔직히 배브 리뷰 1편은 딱히 내용이 없다. 겉핥기식의 감상으로 끝났고, 리뷰 2편은 이딴 게임을 하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뒤덮여 있다. 이번 결정판의 작성에 와서는 한발 뺀 자세로 임하고 있다.
배브를 처음 접했던 것은 17년 중순일 것이다. 이미 카카오tv가 되어버린 다음팟에서 모 PD가 폐인처럼 하는것을 봤었는데, 그 당시의 정확한 감상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다. 18년 초봄에 위쳐3,파이어와 함께 샀고 그 후로 간간히 돌린다. 철인 세팅으로 돌리다 몰살이 나면 게임을 얼마간 접는 식이다. 20년 1월에 첫 번째 리뷰를 업로드했고 그 해 6월에 최신 DLC가 나왔다. 구매를 참다참다 9월에 사서 두 번째 리뷰를 남겼다.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되리라.
20년 초까지 리뷰를 써볼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로우 판타지 세계에서 아저씨처럼 생긴 참피들을 데리고 용병단을 굴리는 게임이다. 단체 운영 시뮬은 아니고 싸움만 잘하면 된다.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면서 참피들을 키운다. 자신의 한계를 잘못 파악하고 안일해지면 죽는다. 혹은 쉬운 전투만 하다가 질린다. 질린다. 대충 게임 시간으로 300일쯤 지나면 질린다. 실제 시간으로 따지면 40시간쯤 된다. 그쯤 되면 용병단은 클 만큼 큰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만큼 자신의 캠페인에 애정을 갖는다. 혹은 경험이 쌓여 팀의 한계를 파악한다. 고된 전투를 치뤄도 점차 리턴은 적어지고 수백일 키운 용병이 사망해버릴 리스크만 커진다. 캐릭터의 성장세가 둔화되어 점점 경험은 숙제에 가까워진다. 안전지향적인 플레이로 가닥이 잡히면 게임은 천천히 지루해진다. 이것은 배틀 브라더스의 컨텐츠 부족보다도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40시간쯤 했으면 슬슬 접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왜 작성자는 이 시점의 성장 곡선에, 혹은 컨텐츠 만료에 불만을 가지는 것인가? 왜냐하면 배틀 브라더스가 제시하는 마침표는 한없이 완만해져, 당장 음전해도 자연스러울만큼 둔화된 용병단 성장 곡선의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블랙 모노리스나 크라켄 따위의 전설 던전들이 그것인데, 실제 클리어를 위해서는 수백일 키운 에이스의 희생이 불가피한 정도의 난이도가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강제 인카운터도 아닌 마당에 피해 없는 클리어를 위해선 수백일을 키워도 스펙이 부족한 것이다.
배틀 브라더스는 이러한 리스크에 대해 납득이 가는 리턴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몇 없는 엔딩 컨텐츠랍시고 만들어놨으니 나 좋아서 꼴아박는 식이지, 수백일 키운 용병들이 숱히 죽을만큼의 리스크를 충분히 보상해주진 못한다. 말이 전설 장비고 뭐고지, 그냥 일반적인 유니크 장비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며, 솔직히 이런 것들보단 게임 화면 어딘가에 [다깼어요] 스탬프러리를 만들어두고 어려운거 하나 깰때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씩 찍어주는게 나을 법도 싶다.
살짝 흥분한 것 같으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 가자... 구체적인 예를 들면 블랙 모노리스의 경우 사정이 나은 편인데, 충분한 사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개체의 데미지가 아닌 물량이 위협적인 던전이기 때문에 로테이션 몸빵 돌려막기로 예상 피해량을 어느정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전히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크라켄 전에서처럼 뜬끔사는 없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주는 갑옷도 멋있다! 솔직히 받는 피해량 25% 반사는 있으나 마나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하나만 주고 깼다.
크라켄 이야기를 해보자. 그 뒤에 첫 단락에서 언급했던 확률 문제도 재론할 것이다. 크라켄전은 배틀 브라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종 던전들 중 하나인데, 전형적인 모르면 죽어야지식 보스 패턴 설계가 예술이다. 패턴 모르고 들어가서 다음 장 뜨면 굉장히 화가 나겠지만 이건 넘어가기로 하자. 문제는 또 촉수의 일반 공격인데, 기본 데미지 70-110에 방어구 효율 100% 방관 50%라 헤드에 맞으면 체력 52까지는 확정 사망인데다 최대 피해량이 82.5에 달한다. 배틀포지 방어구 피해감량 21%까지 챙긴 20렙 중갑 석궁병이 이걸로 한방에 갔다. 난 버그난줄 알았다.
배포 21%가 문제일까? 배틀포지 30%를 챙긴 300/300 중갑병도 첫타 헤드에 27.5~60.5HP가 빠진다. 몸샷이 나도 18~40이 나가는데, 체력에 어느정도 투자가 들어갔다고 해도 1~3방이면 다 죽는다는 소리다. 님블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뒤지기 싫으면 공격퍽 포기하고 철뚝에 고양이까지 찍으라는 소린데, 2열 딜러들까지 저런 수비적인 퍽을 찍기엔 일반 전투에서의 효율이 너무나 떨어진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
로또딜 터지면 뒤지는 경우가 이렇게 몇몇 있다. 바바리안 양손무기에 헤드가 뚫리면 60딜쯤 나온다. 린트부름 본체 2열 공격은 피해 80~140에 방관 40%라 이것도 맞으면 그냥 죽는다. 린트부름은 특히 잡아도 제대로 주는게 없어서 아무도 안 잡는다.
정리하자면 약 10%확률로 용병을 한방낼 수 있는 적들을 비교적 안전하게 상대하고 싶다면 그보다 약한 적들과 싸울땐 공격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누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용도가 굉장히 한정적인 퍽을 굳이 찍을까 말까 강요하고 있다는 거고, 어차피 직접 선택한 철인 모드인데 아쉬운 놈이 찍는게 맞지 않냐 이러면 또 할말은 없는데, 하루이틀 파밍해야하는것도 아닌 마당에 이러면 게임이 너무 지루해진다.
이 게임은 갈수록 지루하다! 물론 게임 시간으로 300일쯤 넘기면 슬슬 볼장 다 봤으니 지루지는게 맞지 않나 싶긴 하지만, 솔직히 그게 아니더라도 전투가 다 비슷비슷하다. 드롭도 거기서 거기인데다 FFTA의 law시스템 같은것도 없고 누군가 난입한다던가, 날씨 영향이라던가도 없다. 사실 전투가 살짝 지루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번거로운 것은 따로 있으니...
용병 하나가 손실났을 때 후반으로 갈수록 메꾸는 것이 귀찮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건 갈수록 높아지는 리스크에 해당한다. 게임의 후반부까지 갔을 때에도 신병을 새로 실전 레벨까지 키우려면 컴퓨터 시간으로 8시간은 걸린다. 경험치 획득 보너스 포션이나 트레이닝이 있긴 한데 솔직히 이것들만으론 부족하다. 꾸준히 이용하면 6시간쯤 걸린다. 포켓몬 학습장치 차고 레벨업 노가다해도 레벨 60 넘어가면 엄청 안오르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열심히 키워줄라쳐도 재능있는 신입을 찾기도 어렵다. 용병단 규모나 명성에 관계없이 모집 풀은 고정인데다가 그 수도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신병 찾기도 한세월이다. 화면 전환도 미묘하게 느려서 정말 귀찮다. 게다가 면접 교통비 챙겨주다보면 돈이 안모인다. 들고있던 폐지 놓고가서 일일히 다시 팔아야 하는것도 귀찮다!! 게임이 피곤한것 투성이다.
개뿔 줍는것도 하루이틀이지
심호흡을 다시 한번 하고 가자... 그리고 확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잘 큰 전열 양잡의 근접 회피율은 35쯤 된다. 크라켄 촉수 근접 명중이 80에 린드웜 본체가 75인데, 이러면 각각 평타 명중률은 45~40%쯤이 된다. 달리 연막같은게 있는것도 아니라서 생으로 노출되어 있는데, 맞으면 죽는다. 이게 뭔가?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다. 인간 경마보다 더하다. 엑스컴마냥 저확률 공격에 대한 찰과상 보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출혈 페이즈가 따로 있는것도 아니다. 여기 적응하거나 순응할수는 있으나 즐길 수는 없다.
명중률 캡이 5%,95%라는 부분이 도리어 문제다. 적의 명중률은 95%가 나오는 일이 없고 5%를 자주 치는데, 나는 5%가 나오면 공격을 포기하고 95%를 자주 친다. 내가 95%를 피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시피하고 적이 5%를 시도하는 경우는 차고 넘친다. 나는 5%가 나오면 공격을 포기하고 적은 애초에 명중이 95%가 안나온다. 즉, 디자인상 AI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확률 체계인 것이다. 난수표 문제에 대해서는 이게 정말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의견이 분분한데, 양측의 공감을 모으는 것은 다른 확률 기반 게임에 비해 배브가 상당히 불합리하다는 감상이다. 다른 것보단 설계 미스다.
상대가 5% 체크를 5번 할때 나는 95% 체크를 한번쯤 한다. 내가 유리해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용병 목숨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상대 유닛의 가치는 갈수록 낮아진다. 내가 95%를 100번 연속으로 맞춘다고 게임이 즉시 gg치고 개발자 크레딧을 띄워주진 않는다. 그런데 고블린이 5% 단찌를 두번 연속으로 맞추면 내 에이스가 죽는다. 고블린 궁수의 단찌는 명중이 0%인데 5% 캡때문에 낭낭한 명중이 나오는 것이다. 나 좋으라고 씌워놓은 캡은 아니다.
난수표 연속성이 이상하다느니 어쩌느니 포럼에서도 말은 많지만 이건 기억의 취사저장이 맞는 것 같다.
이제와서 배틀 브라더스의 게임성에 대해 더 할 말은 없다. 하면 재미있다. 여러분도 즐기십시오. 본고는 평소 쓰던 리뷰의 형식을 포기했다. 게임에 대한 소개를 생략하고, 세부 요소에 대한 설명도 건너뛰고, 내 하고싶은 이야기만 했다. 조악하긴 하지만 예전에 이미 같은 게임을 소재로 써 두었던 리뷰가 두 편이나 있기 때문인데 솔직히 이제와서 다시 보면 지우고 싶을 따름이다. 원한다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배브의 마수에서 드디어 벗어났으니 이제 다른 택틱스도 건드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쌓인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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