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2. 1. 4. 06:18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 - 광기

 마인크래프트 얘기를 먼저 해보자. 매년 하는 게임이다. 리뷰도 전에 한 번 했었다. 당시 버전은 1.14였던 것 같은데 최신은 1.17쯤 되려나? 나중에 다시 하겠지. 완성된 게임이다.

 그 개발사인 모장은 2014년 경 마소에 인수되었다. 게임계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알 법한 사실이다. 피인수된 이후 마인크래프트 프랜차이즈는 스핀오프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5월경 출시한 마인크래프트 던전스, 이건 놀랍게도 폐지줍기 게임이다. 개발사 명의는 모장 스튜디오와 더블 일레븐의 공동으로, 정확한 개발 주체나 개발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 게임은 아직 폐지줍기에 찌들지 않은 어린 게이머를 타깃으로 한다는 점이다.

 게임의 서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해도 좋을 것 같다. 엄청 건전하다. 유치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유튜브 보고 못된말 배워오는게 문제라던데, 이 게임에 대해서는 그런 종류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던전스는 폐지 줍는 게임이다. 스핀오프라고는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본판의 시스템적인 특징을 어느 한 군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트 그래픽의 피죽을 뒤집어 썼을 뿐이다. 블록을 쌓는다던가 아이템을 조합한다던가 지형지물을 부순다던가, 간단히 생각해봤을 때 떠오르는 어떤 변주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냥 폐지만 줍는 게임이다.

그나마 재미있는건 TNT?

 캠페인 진행 구조는 이렇다. 구조가 고정된 맵이 여럿 준비되어 있다. 맵들은 스토리를 따라 수직선 위에 배치되어 있다. 독립된 맵 하나를 완료하는 게 런이다. 맵을 하나씩 깨고 스토리 끝까지 가서 최종 보스를 잡으면 끝이다. RPG로서는 그렇다. 물론 이건 폐지줍기 게임이기 때문에, 엔딩 이후론 폐지줍기의 반복이다.

로그라이트 맵도 있긴 함

 장비하는 폐지의 유형은 4가지이며, 장비 슬롯은 6개다. 근거리 무기, 갑옷, 원거리 무기의 셋, 타 게임에서의 액티브 스킬을 대신하는 "유물" 칸이 셋이다.

 폐지는 유형별로 다양한 모습을 한다. 망치모양 폐지, 칼모양 폐지, 곡괭이 모양 폐지는 모두 근거리 무기 슬롯에 들어가는 같은 유형의 폐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폐지엔 희귀도라고 하는 속성이 부속되는데, 이것은 일반, 희귀, 유일의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희소할수록 스탯이 높다.

 모든 폐지엔 또한 3개까지 효과(인챈트)를 부여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부여 슬롯마다 무작위로 정해진 2-3개의 효과 중 하나를 고르게끔 정해져 있다.

 "유물" 폐지는 다르다. 일반, 희귀의 두 등급으로만 나뉘어 있으며, 따로 효과를 부여할 수 없다. 장착한 다음 배정된 단축키를 누르면 유물에 딸린 액티브 스킬이 나간다.

본인의 레벨이 곧 인챈트용 자원. 장비 분해하면 환불해준다

 폐지 스탯은 외형별로 고정 항목을 가지며, 희귀도와 아이템 레벨에 따라 수치가 등속 상승한다. 즉, 레벨 높은 장비에다 효과 부여만 잘 띄우면 되는데, 이 효과 부여 자체도 그리 다양하진 않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의 폐지 시스템은 얄팍하다.

 또한 여타 본격 폐지줍기와는 달리, 던전스는 캐릭터 성장 요소와 장비 강화 요소가 통합되어 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효과 부여 포인트를 1점씩 주는데, 이름대로 효과 부여에 사용된다. 이 점 역시 게임의 얕은 깊이에 일조한다.

 맵의 종류가 적다. 개별 런 자체도 흥미로울 구석이 별로 없다. 모든 스토리 맵은 매번 구조가 똑같고 상자도 얼마 없어서 벌이가 짜다. 그나마 앵벌이가 되는 맵은 상자도 많고 구조도 절차적 생성이라 반복감이 덜한 "오싹한 지하실"과 "낮은 사원"의 두 곳이 끝이다.(숨겨진 카우방도 있다고는 하나 찾는 과정이 극히 번거로워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일부 맵에 설치된 퍼즐,함정, 기믹은 마인크래프트 느낌이 물씬 나긴 하는데, 절차적 생성되는 랜덤맵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다른 폐지줍기는 애초에 다 랜덤맵인데 여기서만 "절차적 생성 맵" 이라고 따로 분류를 해야하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

오싹한 지하실, 곡괭이가 나온다.

 월드맵의 난이도는 3단계로 나뉘어져 있으나, 개별 맵의 세부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처음부터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설명하자면, 기본-모험-아포칼립스의 3가지 난이도를 고른 뒤, 거기서 다시 기본1,기본2,기본3,... 모험1,모험2로 세부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정하게 되는데, 게임을 처음 켜는 사람들에게 '자기 적정 레벨에 맞춰서 맵 난이도를 하나씩 올리세요' 라고 던져주는게 정말 세련된 조치인지 의문스럽다. 기본 캠페인 진행도에 따른 난이도 조정을 제작자 측에서 수행할 수 없다고 시인하는 꼴은 아닌가?

 세부 난이도의 자가 조절 자체가 아니꼬운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것을 들이미는 시기의 문제인데, 이를테면 디아블로3의 난이도 구조는 이렇다. 보통-어려움-고수-달인-고행1-고행2-고행3-고행4-고행5-... 이렇게 쭉 이어진다. 이런 형태의 숫자 표기는 "달인까지 다 깨셨으면 여기서부터는 자기만족의 영역입니다~" 라고 일러주는 배려가 엿보이는데, 처음부터 자유를 주는 던전스의 난이도 조절 방식은 다소 게을러보인다.

 디자인의 깊이도 얕지만 달리 게이머를 붙잡아놓을 만한 꿀단지도 따로 없다. 경쟁심, 공명심을 자극하는 시즌 래더나 희귀한 장비가 있는것도 아니다. 단조로운 숫자띄우기 스펙업만 끝없이 어이지는게 눈에 훤하다. 아무리 목표 플레이어 연령층을 낮게 잡는다고 해도, 오래 붙잡아보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유료/무료 시즌패스가 이번달 14일 도입되었는데, 다른 폐지줍기마냥 시즌제가 도입된 것은 또 아니다. 마인크래프트 키드도 질려서 오래는 안할 것 같다.

 상인이 몇 명 있는, 마을의 역할을 하는 "캠프"맵은 그 규모에 비해 내실이 빈약하다. 맵은 큰데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요소는 얼마 없어서 지나치게 텅 빈 느낌이 든다. 한 구석에 꾸며둔 마이 하우스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사실 장르적 관점에선 이런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불필요한 여백으로 느껴진다.

 전투 경험 면에서는 또 나쁘지 않았다. 우선 타격감이 괜찮고 몹의 HP바가 정확히 잘 보였다. 쫄을 모아서 뭉텅이째로 잡는다는 느낌도 잘 살아서 좋았다.

숫자뜨는건 재밌다

 그래픽은 마인크래프트 풍의 텍스쳐, 블록으로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질감이 느껴질만한 구석은 따로 없고, 굳이 하나 꼽자면 월드맵 화면의 배경 아트가 다른 부분에 비해 스타일이 튀는 편인데, 거슬리는 점은 아니다.

 캐릭터 스킨이나 장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원작과 괴리감이 없는데, 이목구비 요철이 미묘하게 디테일했던 스토리모드의 캐릭터 묘사보다 훨씬 불쾌감이 덜하다. 원작 게임 스킨의 규격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게임성이 미묘하면 그래픽이나 음악은 보통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내가 눈이 낮은건가? 아무튼 그래픽이 개성적이고 품질도 괜찮으니 호감이 간다.

코스매틱도 좋지만 다른 부분의 보강이 먼저 아닐까

 결론적으로 틀은 잘 짜놨지만 충전재가 부족했다. 빈 공간이 너무 잘 보이는데, 출시한 DLC나 업데이트의 방향성을 보면 이걸 채워넣는게 아니라 바깥으로 상자를 늘리고만 있다.

 재미는 있다. 틀은 괜찮으니까. 하지만 든 게 없으니 금방 질린다. 차라리 얼리엑세스면 모르겠는데, 정식 출시되고 1년 반이나 지난 상황에서 이 모냥이니, 별 기대는 안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