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게이샤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어쩌지?
미소녀 동물원의 설정은 때로 해괴하다. 이 미소녀들이 사실은 탱크라던가 전함이라던가. 뭐더라. 새? 음식? 별의별 사물들을 갖다가 원래 이거라고 우긴다. 특히 전함은 생각나는것만 세 개다. 반-근-부적이 되는 오리지널이 하나있고 짭퉁 칸코레가 몇개 더 있다. 메이드 카페의 종업원들을 보는 기분이 이런게 아닐까. 묘한 불쾌감? 창피함? 코스프레 AV? 정말 고생이 많구나 싶다.
소녀전선의 경우는 어떤가. 여긴 총기와 미소녀가 엮였다. 물론 총기에 팔다리 달고 이쁜 눈 두짝 달아봤자 어뢰걸 이상의 비주얼이 나오긴 힘드므로 그냥 로봇이 해당 총기를 들고 있다는 설정이다. 자기가 들고 있는 무기가 코드네임으로 붙는다. 그림 툴로 생각하면 환쟁이들이 서로를 [클립 스튜디오], [cc2020]라고 부른다는 느낌. 그리고 cc2020은 cs6을 두고 언니~ 이러면서 들러붙으며 씹덕 모먼트를 창출해낼 것이다. 오..
아무튼 소녀전선은 미카팀에서 개발, 출시한 모바일 게임이다. 동방 팬게임이나 동인지를 내놓던 동인 서클에 가까웠던 미카팀은 이 소녀전선의 개발-출시를 위해 정식 법인 SUNBORN Network Technology를 설립한다. 게임의 흥행으로 개발사는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소녀전선 관련 차기작을 4개 발표했다. 개중 연내 출시 예정작은 2개다.
뭔가 문어발
어차피 비슷비슷하게 생긴 오타쿠 그림 보겠다고 하는 게임에 설정이 뭐가 중요하냐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모양이다. 2D 미소녀의 처녀성을 숭배하는 일부 오타쿠 집단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그렇기에 소녀전선의 설정과 스토리가 게임성에 기여하는 바가 극히 적다고 할지라도, 오타쿠 게임이라는 특성상 이런 설정놀음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게임 외적인 이야기를 더 하자. 캐릭터를 모으고 키운다. 이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이것뿐이 아니다. 풍부한 오타쿠층을 바탕에 두고 형성된 2차 창작물 따위를, 그리고 공식 애니메이션, 만화 따위를 향유하는 것 또한 소 조 젠 세 er들의 유흥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팬덤의 뎁쓰는 오타쿠 구름이 아닌 오타쿠 바다에 준한다.
더 진행하기 앞서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녀전선이라는 게임 자체는 별로 재미없다. 이 게임은 이를테면 폐지를 줍는 게임이다. 캐릭터 모양의 전자폐지를 줍고 키운다. 마음에 들면 결혼도 하는 모양이라지만 그건 자유다.
결혼반지가 비싸서 내가 직접 해보진 못했다.
튜토리얼에서 열어주는 순서로 짚어보자. 우선 전투로 시작한다. 전투는 두 화면으로 나뉜다. 워 게임같은 전역 맵 화면, 캐릭터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인카운터 화면이다. 소녀전선의 전투는 이 전역 맵을 특정 조건에 따라 클리어하는 것을 기본으로 두며, 초반에 열리는 것은 적 지휘부 점령이다.
우선 전역 맵에서 적이든 아군이든 유닛이 점유한 타일은 턴이 끝날 때 각 세력에 점령된다. 색칠된다는 말이다. 연결된 다른 모든 타일이 한 색으로 칠해진 타일도 점령된다. 이건 턴 시작에 시행되는 규칙이라, 유닛 혼자 후방 침투해서 타일을 하나 빼 먹으려 해도 점령한 다음 턴에 적 세력에게 다시 "포위섬멸" 된다. 다만 적 지휘부가 일시적으로라도 아군 유닛에게 점령되면 다음 턴의 시작 페이즈로 넘어가지 않고 전역이 승리 처리된다.
음.. 그냥 땅따먹기
전역 맵에서 아군 유닛(제대)와 적 제대가 인카운트하면 전투 화면으로 전환된다. 자신이 키운 유닛이 직접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미리 정해둔 진형에 맞춰 서 있다가 때가 되면 알아서 싸운다.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것들은 전투중 퇴각 결정, 진형 변경, 스킬버튼 터치가 끝인데, 진형 변경을 빼고는 전부 설정에 따라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고, 자동이 더 낫다. 결론적으로 말해 구경밖에 할 게 없다.
전역 클리어는 스토리 진행과 직결된다. 출시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껏 진행했던 스토리도 많고 상시이벤트로 열려있는 전역도 많지만 솔직히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스토리를 보려고라기보단 단지 스펙을 올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전투를 진행하게 된다.
어찌보면 모바일 게임, 수집형 모바일 게임의 숙명과도 같은 일인데,게임에 어떠한 정 비슷한 것을 붙이게 되면, 이 시점에선 전투, 혹은 잦은 조작을 하게 되는 부분의 재미가 출중하지 못하더라도 (아직 접지 않았다면) 비교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야 하겠지만,어쨌든 별로 재미는 없다.
소녀전선의 캐릭터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자원 구조를 먼저 살펴본다. 모바일 게임의 자원이라 하면 보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도 보석으로 뭐든지 살 수 있지만 일반적인 플레이로도 천천히 수급할 수 있는 보통의 자원이라는 게 있고, 이런건 캐릭터나 장비의 강화에 사용되곤 하는데, 소녀전선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자원은 인력, 탄약, 식량, 부품의 4종이다.
메인은 꽤 깔끔하다.
이 4가지 자원 말고도 인형 성장에 관여하는 여러 자원들이 있고, 이 자원들의 교환에 사용되는 일회성 고가치 자원들도 많지만, 위의 4가지 자원은 소녀전선의 디자인에서 제1순위 자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밖의 자원들은 잡다하고 시시콜콜하니까 굳이 여기 적지 않는다. 4가지 자원은 창고 한도 용량까지 자동적으로, 시간 흐름에 따라 누적되는데, 이 충전 속도는 지극히 느리므로 일일 퀘스트나 주간 퀘스트, 군수 지원에서 채굴하게 된다.
4가지 자원의 사용처는 게임 플레이의 핵심적인 부분에 관여하기에, 사실 자원이라기보다는 스태미너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전역 맵을 도는 인형들의 보급을 위해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전역을 돌다가 탄이 없으면 전투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 죽는다. 은근히 여기 들어가는 자원이 많기 때문에 재미도 없는 전역 밀다보면 곳간이 텅텅 빈다.
제조 계약이나 즉시완료권은 얼른 폭사하라고 퍼준다.
이 자원은 인형의 제조에도 쓰인다. 인형은 일단 개별 전투의 승리 보상으로도 하나씩 얻을 수 있지만 주된 수급처는 인형 공방의 제조 탭이다. 자원을 써서 인형을 뽑는 시스템인데, 4가지 자원을 일정량 넣으면 자원 비율에 따른 경향성에 맞춰 무작위 인형이 드롭된다. 타 게임의 일반적인 캐릭터 가챠를 대체하는 것인데, 희귀 인형의 출현율이 꽤 높은 편이라 혜자 소리를 듣곤 했다.
보석 비슷한거 넣고 하는 일반적인 가챠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전용 티켓을 사용하는 가구/스킨 가챠가 따로 있는데, 한정 스킨은 여기서밖에 얻을 수 없으니, 잠재적인 폭사 고위험군에 속하는 씹덕들은 미카팀이 싸게 쥐여준 캐릭터에게 옷을 입혀주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공책 게임(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이퍼 RPG)랑 다를게 없다. 시스템이 시키는대로 맵을 톡톡톡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폐지를 받는다. 톡 누르면 몇시간 뒤에 폐지가 온다. 생각할게 별로 없다.
폐지란 캐릭터의 성장-게임의 클리어를 위해 필요한 온갖 재화를 의미한다. 아이템이랑 의미가 대강 겹친다. 이런 폐지가 그윽한 게임을 돌리다보면 단순 '게임의 클리어를 위한 재화' 라는 개념에서 탈선해 폐지의 수집 자체에 게임 플레이의 새 초점이 잡히기도 한다. 단순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른 현상일수도 있지만, 게임의 디자인에 따라 의도적으로 이렇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물론 까마귀도 아니고 이런걸 죽자고 모으려는 사람은 또 없겠지만, 동전 수집이니 우표 수집이니가 신사의 로망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인터넷 폐지 수집이 디지털 신사의 로망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사족으로 한 발 더 빼자면 이런 디지털 신사의 예시로는 스팀 Hentai 게임 수집가라던가 스팀 도전과제 수집가 따위가 있다.
운영자 제공. 그는 불량식품이나 껌 같은 걸 결제수단으로 받았다.
여기서 소녀전선이란 오로지 폐지 수집에만 초점을 맞춘 모바일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형의 전투력을 올리면 스토리를 더 쉽게, 잘 밀 수는 있겠지만 이건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개구려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소녀전선을 돌리다보면 결국 할 게 인형 키우기밖에 없다. 게임에서 자체적으로 (이제 접어도 됩니다~) 하고 제시해주는 지점이 아예 없다.
솔직히 이런걸 즐길 수 있다면 꽤 재미있다. 캐릭터 옆에 적힌 숫자가 올라가거나 색칠되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식이다. 솔직히 내 경우엔 어디서 한 번씩 봤었던 캐릭터들이 나올 때마다 웃겨서 뽑기하는 재미는 있었다. 다만 딱히 애정이 가지는 않는 까닭에 이걸 다 키워서 뭐하나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금 상품은 꽤 합리적인 편이다. 앞서 언급한 자원 따위를 보석으로 살 수도 있지만, 사실 편의성 기능을 결제시키는 것이 소녀전선의 판매전략이다. 보석을 보통 여기 쓴다. 가챠 슬롯을 늘린다던가, 창고를 늘린다던가, 자동사냥에 보낼 수 있는 제대의 수를 늘린다던가.
잘 만들긴 했다. 그런데 게임을 접어도 접은 것 같지가 않고 후련하다기보단 찝찝하기만 하니, 의도한 바가 이랬는지는 몰라도 소녀전선은 괜찮은 경험이기는 했으나 썩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할 숙제를 미루고 있다는 느낌? 일러스트 품질의 최소치는 대체로 괜찮은 듯? 출시 연차가 쌓인 뒤 추가된 인형이나 스킨일수록 더 괜찮다. 최신 스킨의 라이브 2D와 초기 일러스트를 비교해보면 기술의 발전마저 느낄 수 있다.
'개인 리뷰 > 전화기로 게임을 한다구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험] 드래곤 퀘스트 택트 (Dragon Quest Tact) (0) | 2022.12.23 |
---|---|
[체험] 월드 플리퍼 (World Flipper) (0) | 2021.11.24 |
[체험] 포켓몬 마스터즈 EX (Pokémon Masters EX) (0) | 2021.11.03 |
[체험] 카운터사이드 (Counter:side) (0) | 2021.07.13 |
[체험] 포켓몬 퀘스트 (Pokemon Quest) (1) | 2021.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