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2. 13. 03:40

최초작성: 2018. 12. 27, 5:11

 

좀비 바이러스는 사실 게임 중독으로 감염된다.

 

 가장 많이 팔린 인디 게임은 무엇인가? 마인크래프트일 것이다. 한 세대를 풍미하는 게임이다. 요즘 IPTV에서는 마인크래프트 전문 채널이 따로 있는 것도 같다.(요즘은 못봤다.-20) 어린 사촌동생들이 시골 집 테레비로 열심히 보면서 웃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아프리카 TV의 개인방송에서 유행했던 상황극 포맷이다. 아동용 시트콤 같다. 거의 매일매일 연속해서 방송하는 걸 보면.

 

 여튼 마인크래프트에 대해 조금만 더 말해 보자. 마인크래프트는 샌드박스 게임의 대표 주자이다. 이것저것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게임이다. 나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인가 열심히 주변 친구들에게 영업하고 다녔다. 한 번은 다운로드 받은 도시맵을 돌리는데,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네가 만들었냐' 길래 그렇다고 해 버린 적도 있다. 정말 쓰레기가 아닌가?

 

 그렇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도시도 만들 수 있다. 블럭을 쌓다보면 그렇게 된다. 이렇게 뭘 만드는 게임에서는 도시건설, 마을 건설에 대한 토목적인 로망이 있다. 나도 몇번인가 시도해봣는데, 워낙 게으른 탓에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던져버린 것이 수 번이다. 열심히 만들던 과정 스크린샷을 네이버 카페에 올렸던 적도 있다. 꽤 좋아요를 많이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기분은 좋아도 딱히 부지런해지진 않았다. 건물 한 두채는 몰라도 도시를 만들 순 없었다. 책임 돌릴 곳도 없어 곤란하다.

 

 마인크래프트는 게임의 플랫폼이 될 수도 있었다.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새 인생을 살 수도 있고 (마비노기에서 했던 것 처럼), RPG, 대전, 미니게임, 기타등등 많다. 7days to die(이하 세투다)는 개중 좀비 서바이벌 포맷을 따 와서 발전시킨 형태의 게임이다.

 

 마인크래프트 아류는 굉장히 많다. 테라리아 발매 초창기, 마인크래프트 짭퉁 논란이 있었다. 테라리아처럼 블록 쌓고 좀비 잡는 정도의 유사성으로는 짭퉁 축에도 못 낀다. 입방체 블록으로 이루어진 맵 위에서 생존한다는 디자인까지는 와 줘야 짭퉁으로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유수의 짭퉁 게임들 사이에서 세투다는 나름의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 며칠 전(18년 12월 말-20)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는 게임이었는데, 스팀 상점 페이지를 보고 놀랐다. 리뷰수가 50000건에 달하는 것이 아닌가? 아틀라스 리액터의 10배를 넘는다.

 

 후발 주자로서 성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카피가 완벽하거나, 오리지널과 비교해서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 세투다의 차별점은 좀비 서바이벌로서의 완성도가 될 것이다. 황폐화된 도심에서 좀비를 사냥하고, 도처에 널린 폐지를 주워서 이것저것 만들 수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헬기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마인크래프트엔 헬기가 없다. 모드로 넣을 순 있겠지만 논외로 한다.

가시 함정에는 어떠한 낭만이 있다.

 평소 보는 개인 방송에서 시청자 참여 세투다를 한다길래 잠시 보았다. 전에는 흔한 좀비 서바이벌 정도로 생각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팀 대기열에 나왔었다면 관심 없음이 박혔을 것이다. 그런데 마인크래프트에서처럼 노가다를 할 수 있다고? 허울 뿐인 '하우징'을 지원하는 여타 서바이벌 게임과는 다르게 땅파고 들어갈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가? 망크에 학창생활 2년을 허비한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의 험블번들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왔는지 라이브러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다운로드 받았다.

 

마! 우리가 인생이 없지 시간이 없나!

 

 세투다는 무슨 원리인지 알 수 없지만 밤마다 강해지는 좀비에게서 살아남는 게임이다. 최고 난이도에선 좀비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알아서 사려야 한다. 마인크래프트마냥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적당한 나무집 같은 것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다. 7일 밤마다 훨씬 강한 좀비 무리가 몰려오는데, 플레이어의 위치를 맵핵이라도 쓴 것 마냥 탐지해 벽이 가장 얇은 부분을 뚫고 들어온다. 다행히 여러 함정들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니 이걸 이용해 막는다.

 

 게임은 자유도가 상당히 높았다. 하고자 하는 왠만한 것들은 다 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들긴 한다. 블럭의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다. 망크 짭퉁들은 대개 땅바닥도 각지고, 둥글어주면 좋을 부분도 각지고, 요철이 들어가주면 좋을 부분들은 퀄리티도 별로인 텍스쳐로 때우곤 한다. 세투다는 지형지물과 오브젝트들에 대해서는 꽤 공을 들여 몰입감이 있었다. 서사적인 몰입감이 아니라, 환경적인 것이다. 좀비 서바이벌이면 살고는 싶어야 할 텐데, 누가봐도 폴리곤 덩어리인 맵에서는 좀비가 걸어다니던 에일리언이 기어다니던 딱히 무섭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좀비나 크리쳐 자체의 디테일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한 세대 전에 발매된 하프라이프2와 비슷하거나 보다 떨어지는 수준처럼 느껴졌다. (엘리엑세스 단계임을 고려하더라도-20) 여러 종류의 좀비들이 있는데, 스펙을 공유하는 좀비는 텍스쳐도 공유하고, 모션도 공유한다. 개체마다의 디테일이 전무한 수준이라 같은 좀비가 서너마리쯤 모여 있으면 그놈이 그놈이다. 좀비를 때려도 데칼이 남지 않아 내가 치던 놈이 어떤 개체인가 알 수도 없다. 그래픽 옵션을 낮춘 것도 아니었다. 좀비 텍스쳐 종류도 많지 않기에 보던 놈만 보니 좀 그렇다. 다른 좀비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다. 팔이 떨어졌다던가, 머리를 파먹혔다던가 하는 디테일 정도만 있었어도 더 나았을 듯하다.

 

 모션은 또 불편한 부분이 적지 않다. 공격 모션은 두세가지가 있는데, 좀비들은 하나같이 팔만 휘두른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좀비나 플레이어 캐릭터가 회전할 때는 별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개나 멧돼지, 곰처럼 한 방향의 너비가 길어 회전이 클 때는, 회전 축을 중심으로 사지는 움직이지 않고 빙빙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거 큰 문제같다. 마인크래프트의 좀비도 회전할 때는 사지를 열심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비를 제외한 적대 생물체들은 공격 모션도 없는 것 같다. 얼리엑세스라기엔 너무 오래된 게임이다. 반성을 요구한다.

좀비가 입은 드레스는 모두 분홍색이다. 무분별한 유행 추종이 항 바이러스 능력을 감퇴시킨 것은 아닐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만들 수 있는 게 많다. 조합법이 많다는 뜻이다. 모든 조합법은 인게임에서 어렵잖게 알아낼 수 있지만, 아이템 종류가 많은 것은 꽤 고통스럽다. 이 게임의 인벤토리가 좁은데다, 아이템 종류별로 인벤 한 칸씩을 잡아먹기 때문에, 은근 불합리한 면도 있다. 깃털 하나와 철 덩어리 수백개, 자전거 하나가 각각 한 칸씩 차지한다. 그렇지만 이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초과 과적을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하고, 인벤토리 추가 퍽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투다에선 여러가지 활동으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데, 개중 가장 효율이 좋은 것은 다른 몹을 죽이는 것이다. 일정 경험치를 모으면 레벨업을 한다. 레벨이 오르는 것만으로 체력이 오르거나 주는 데미지가 높아지진 않고, 레벨업 때마다 주는 스킬 포인트로 퍽을 찍어 여러 가지를 올릴 수 있다. 원거리 전투, 근접 전투, 블럭 데미지, 인벤토리, 추가 조합법 등 세분화되어있다. 다른 행동의 효율은 크게 떨어지는 편이라 어쩔 수 없이 레벨업을 위해서는 좀비를 잡아야 한다. 집에서 요리만 해서는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다. 파티를 맺어 경험치를 나눠 받을 필요가 있다.

 

정말 훌리건이 따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플은 재미가 없다. 어떻게 하고자 한다면 할 수야 있겠지만 나는 안한다. 특히 최고난이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멀티플레이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도중에 그만두었다. 엔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컨텐츠 중에서는 10%정도 해본 것 같다. 하지만 이후 플레이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부활한 낙오자들이 모여있다.

 친구한테 같이 해보자고 영업해볼만큼 취향에 맞는 게임은 아니었는데, 이런 장르의 게임(좀비, 샌드박스)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한 번쯤 해 봐도 좋을 것이다. 나름 '생존'한다는 느낌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