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판촉용 게임, 프로못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소녀다. 청운의 꿈을 품고 조리 학교에 들어간 소녀다. 그녀는 학교 킹카 커널 샌더스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렇게 썸을 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내용의 비주얼 노벨이다. 비주얼 노벨이 맞나? 한두시간이면 쫑이라는 분량에 마음 놓고 시작했으나, 이게 웬 일이람. 너댓시간은 쓴 것 같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걸림돌이 하나 있었는데, 이런 느끼한 중년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이 게임은 그 정체성부터가 하나의 농담에 가깝겠지만, 내게 윙크하는 커널 샌더스를 BG에 띄워놓고 한글패치 없는 영어지문을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가며 읽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낯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소녀라는 말은 틀렸다. 주인공은 분명 커널 샌더스다. 우리 캐릭터는 커널 샌더스를 공략하는 입장에 있긴 하지만, 단순 관찰자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커널 샌더스가 누구인가?
치킨킹 이즈 커밍
KFC는 누구나 아는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다. 커널 샌더스는 그 창업자로, 실존 인물이었고, 1980년에 죽은 사람이다. KFC 하면 생각나는 흰 양복 입은 영감내기가 이 양반인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죽은 뒤로도 마스코트 캐릭터, 기업의 심볼로 절찬 쓰이는 중이다. 생전의 이 양반은 실제로 자신의 "캐릭터성"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더 흰색 양복을 고집하는 등 신경썼다고 하는데, 란란루보다야 동서양 막론하고 호감상이니 나름 잘 먹히고 있는 셈이다.
KFC는 옛날부터 저렴한 이슈화를 통한 대외 홍보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게임을 내는것도 딱히 뭐 이례적인 일은 아닌 셈이다. 이를테면 PS1 시절 펩시맨처럼 말입니다. 알럽유 커널 샌더스 출시 전에는 VR 방탈출 게임도 하나 냈다고 한다. 이건 몰랐다. 가둬두고 치킨을 잘 튀겨야 내보내준다나 어쩐다나 그렇다는데, 별로 관심이 가진 않는다.
VR 기기가 있었어도 안해볼듯
개발사는 Psyop 스튜디오라는 곳인데, 이번에 처음 들어본 곳이다. 전문 게임 개발사는 아니고 프로덕션 스튜디오라고 한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유명 게임의 트레일러나 비디오 프로젝트, SNS 홍보물같은걸 만드는 회사인 모양이다. 게임도 가뭄에 콩나듯 개발하는 모양인데, 스팀에 등록된 게임들만 보면 죄다 무료다. 아무튼 전문 개발사는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전문 개발사가 아닌 이런 스튜디오와의 커넥션이 있었기에 이렇게 엉뚱한 기획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서 게임은 어떤가? 틀만 보면 간단한 서양식 일본풍 비주얼 노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방하기로는 Dating Simulator라지만 딱히 시뮬레이션을 하지는 않는다. 분기가 있다고는 하는데 단순히 정답 수에 따른 엔딩 차이로 보인다. 사실 열심히 이 분기 저 분기 둘러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무튼 만듬새가 단순한 편이다. 파워포인트를 써도 이정도는 무난하게 만들 수 있겠지 싶다.
할연시를 표방한다지만 일자진행에다가 선택지도 딱히 없다. 여러 타입의 할아버지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지 잘못 고르면 죽고 재시작하는건 있는데, 이걸 분기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다. 스토리나 캐릭터는 어떤가? 캐릭터는 나름 씹덕풍으로 잘 그려져 있기는 한데, 진지하게 만들었다기에는 조금 그렇다. 물론 딱히 진지하게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일본 본토풍이라기보다는 넷플릭스풍이다. 스토리도 뭐, 사실 이 이상 얘기해도 의미가 없다. 하는 사람은 재미없는데, 아마 쓰는 사람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배경 멋있다
사실 다른거 다 버리고 배경 아트가 꽤 멋있다. 열댓가지정도 있는 것 같은데, 어디 대기업 상용 게임만큼 잘 그렸다. 이런거보면 이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월급 많이 받는 사람 데려와다가 그린 것 같기는 하다. 음식 그림도 기억에 남는다. 실제 KFC 점포에서 파는 메뉴를 그려다가 올려놨는데, 꽤 맛있어 보였다. 직접 가서 한 번 먹어봤다.
오리지널 치킨 한 조각 2700원
보통 음식 그림 하나 띄우기 전에 한참 설명을 한다. 이 메뉴는 너무 맛있어서 먹은 사람이 기절을 하고 어쩌고. 흥이 올랐다 싶으면 띠로리링 하는 효과음, 반짝이 이펙트와 함께 음식 그림을 내보낸다. 사진은 대령의 11가지 비밀 양념이 들어간 오리지널 치킨으로, 게임에서 처음 11가지 양념 운운하는걸 봤을땐 그냥 농담하는 건줄 알았다. 작중 주인공은 이걸 먹고 너무 맛난다는 까닭에 정신이 우주로 승천하던데, 난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맛은 있었다.
궁금해서라도 한 번 먹어보게 만들었으니, 게임으로서의 재미나 완성도는 둘째치고, 판촉용 게임으로서의 출시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한 것 아닐까?? 성공한 게임이라는 뜻이다. 비주얼 노벨로 성공하기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
기획, 프로젝트로서는 재미있지만, 단일 게임으로서는 B급도 아닌 C급이다. 여기서 요즘의 포켓몬 시리즈를 한번 생각해보자. 최근의 신작 타이틀의 그래픽 품질이나 마감 완성도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IP빨을 못받았으면 망했을 게임이라는 둥의 얘기가 많이 보인다. 포켓몬 신작 게임을 IP와 떨어뜨려놓고 하는 얘기가 정말 이치에 맞는 주장인지는 또 모르겠다마, 여튼 시리즈빨을 받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커널 샌더스의 후광이 없었다면 아무런 관심도 못받았을 게임에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포켓몬이건 알럽유 커널 샌더스건 기획 기본 수준에서 이런 기존 유명세, IP빨을 타먹으려는 의도가 있었고, 그걸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 그만큼의 성공에 대한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포켓몬 신작을 자꾸 개판으로 내면(불만은 조금 있다지만 진짜 개판 수준으로 내지는 않는다.) 시리즈의 수명 자체가 깎여나갈 테니 팬심이 있는 팬이라면 이 부분에서 걱정하여 시리즈와 신작의 불가분한 관계를 애써 무시하고 IP빨을 지적하는게 아닐까 싶지만, KFC 게임이야 뭐 진짜 어지간히 개판을 치지 않는 이상 실제 패스트푸드 사업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치킨을 하나 사이드로 시켜다가 먹게 만들었다.
쪽
게임의 내용에 대한 얘기나 조금 더 해야겠다. 커널을 꼬시는 과정에서, 커널은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해준다. 실존 인물 할랜드 샌더스의 개업 전 일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별 생각없이 하다가 이 부분에서 미묘하게 현실감이 있길래 혹시나 싶어 킹무위키에 검색해보니 역시나였다.
영미권에서 만든 게임이기에, 특징적인 문화요소가 눈에 띄었다. 게임의 엔딩 부분엘 가면 프롬 파티가 나오는데, 미묘한 애니메 외모의 캐릭터들이 아메리카식 파티를 즐기는 것을 보니 이 무슨 혼종인가 싶어서 흥미진진했다. 문화적 오올블루가 아닌가? 메타버스식 스토리텔링이 따로 없다. 보다보면 우리의 프롬 킹 커널 샌더스가 흰 티셔츠에 진 차림으로 치명적인 눈빛을 카메라에 마구 쏘는데, 정말 너무 끄고 싶었다. 애슐리가 이뻐서 참을 수 있었다.
↖커엽
하나의 농담에 가까운 게임이고, 사실 이걸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 안하나 관계 없이 출시 목적은 단지 이 게임의 출시에서 이어지는 KFC의 이슈화 그 자체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KFC에 한번 가봐야지~~ 싶은데 무슨 메뉴가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한번 해 봐도 괜찮겠지 생각한다.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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