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다.
캡틴 포에버는 우주선 키우기라는 이름으로 과거 유명했던 플래시 게임이다. 개발자는 인디 개발자 Farbs로, 그 사람 홈페이지나 다른 플래시 모음 사이트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 플래시 지원이 끝나서 이젠 못한다. 사실 정말 유명했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따로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시절 봤던 인방에서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인터넷도 부식되는구나
2015년 Pixelsaurus Games에서 기존 개발자 Farbs에게 라이선스를 받아 새로 만들어 출시한 것이 이 캡틴 포에버 리믹스다. 캡틴 포에버 리믹스의 크레딧을 보면 Farbs가 리믹스의 개발 과정에서 어떠한 종류의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데, enthusiastic shouter라고 적힌 그의 역할만 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감수했다는 정도가 아닐지.
오리지널 개발자 Farbs는 캡틴 포에버의 기본판 완성 이후 확장팩 두어개를 더 냈다. 각각 캡틴 포에버 석세서, 캡틴 포에버 임포스터라는 이름이다. 리믹스의 정식 출시 이후 캡틴 포에버 트릴로지라는 이름으로 오리지널의 합본 팩이 스팀에 올라왔다.
Farbs는 카드 헌터의 초기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포트폴리오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이다. 게임 개발과 관련된 그의 다른 행적은 구글링으로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언제 또 다시 해보고 리뷰한대냐
사람은 뭔가를 만드는 데에서 재미를 느낀다. 아마 사람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솔직히 정확히 이게 왜 재밌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세계에 대한 모방 행위이며, 스포츠와 도박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 놀이의 일종으로서 분류하고 있다. 정확한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즐거움을 얻는 형태의 오락이다. 개인의 성향이나 놀이하는 시점,환경의 분위기에 따라 재미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설명이 아닐까 싶은데, 난감하다. 흙장난을 리뷰하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10가지 종류의 레고 블럭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1가지 종류의 레고 블럭을 가지고 노는 사람보다 즐거울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10가지를 가지고 노는 것이 1가지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 얼마만큼 즐거울까? 10배만큼? 알 수 없다. 캡틴 포에버에서의 만들기가 왜 재미있는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별로 없고, 그 외의 요소에 대해서나 몇가지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캡틴 포에버 리믹스는 우주선을 만드는 게임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진짜 별 거 없다. 그냥 떨어지는 부품들 주워다가 우주선만 잘 만들면 끝인데, 재미있다. 이게 정확히 왜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모르겠다.
레고 어질러놓은게 생각난다
캡틴 포에버 시리즈는 기본 컨셉,아이디어가 재미있는 게임이다. 자기가 만든 우주선으로 남의 배를 부수고 다니면서 부품을 훔치고, 자기 배를 더 강하게 만든다. 샌드박스성이 강하다. 만들고 디자인하는걸 좋아해서 취향에 맞는 편인데, 뭘 쓰자니 골치가 좀 아프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다. wasd로 조작하여 우주 공간을 떠다닌다. 아무것도 안 붙은 상태의 순정 배를 커맨드 모듈이라고 하는데, 이게 터지면 죽는다. 여기다가 다른 부품을 붙여 배를 확장시킬 수 있다.
남의 배도 마찬가지로 커맨드 모듈이 터지면 죽는다. 그리고 붙어있던 다른 부품들은 드롭되는데, 이걸 끌어와다가 내 배에 붙일 수 있다. 우주 공간에서 다른 배들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것이 핵심 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물고기같다.
은근 정신없다
내 배에 붙일 수 있고 남의 배에도 붙어있는 모듈엔 여러 종류가 있다. 배의 뼈대를 이룰 뿐 다른 기능은 하지 않는 헐이 있다. 잡다한 스킬을 부여하는 기능성 부품도 있고, 무기 추진기, 실드 등등 이것저것 있다. 모든 부품에는 각각의 티어가 있어서, 같은 종류의 부품이라도 그 티어에 따라 성능과 내구도가 달라진다. 티어의 구분 자체는 매우 직관적으로, 색으로 표시한다. 시작할 때 주어지는 초록이 1티어다.
기본적인 플레이로는, 캠페인과 샌드박스가 준비되어 있는데, 샌드박스는 이름 그대로 만들기만 하는 모드라 게임으로서 뭐라고 설명할 것도 없다.
직업 선택하는 느낌
캠페인은 말하자면 로그라이크 비슷한 모드다. 처음 시작하면 커맨드 모듈과 함께 몇 가지 기본 모듈의 프리셋을 제공한다. 이걸로 배를 만들어 몸집 불리기를 시작하면 된다. 티어가 자기보다 높은 적을 잡으면, 배 고치라고 약간의 대기 시간을 준 뒤 다음 섹터로 무대가 변한다. 섹터가 바뀔때마다 적의 평균 티어가 오른다. 10섹터에 11티어까지 있다. 10섹터까지 가서 11티어 적을 아무거나 하나 잡으면 크레딧이 뜬다.
샌드박스는 캠페인의 부속 모드로, 캠페인에서 만들었던 배를 불러올 수도 있고, 샌드박스 치트를 사용해 이것저것 조정해볼 수 있는 정도의 모드다. 다른사람이 만든 배의 데이터를 창작마당에서 불러 올 수도 있다. 별거 없다.
남의 배를 쪼개고 모듈을 훔쳐와서 자기 배를 강화시킨다는,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약간의 살만 붙은 게임이다. 솔직히 얼리엑세스 달고 나와서 정식출시까지 해놓고 이게 진심인가? 싶다!! 이삼천원 받는것도 아니고 9.99달러다. 비교하기는 미안하지만 테라리아 가격이다. 좀 더 게임다운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솔직히 그냥저냥 재밌어서 화난다. 대체 이게 왜 재밌지?
알록달록
사실 캠페인 플레이의 경우 로그라이크의 문법으로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다수 있다. 우선 매 게임(런)이 독립적이고 전회차에서 계승되는 것이 없다는 점(사실 이건 게임의 내용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각 런에서의 죽음은 영구적이며 복구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등장하는 적들의 형태와 유형이 다양하며 무작위에 가까워, 각 런이 새롭다는 점.
싸울 때의 전략에 대해서라면, 자기 자신의 강함, 적의 강함에 대한 판단, 추진기의 갯수와 위치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기동성에 대한 판단, 결과적으로 어떻게 싸울 것이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즉 경험이 필요하다. 적들이 화면 밖에서부터 달려드는 것이 아니며, 전투의 회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꽤 로그라이크스럽다.
블럭의 형태나 기능이 썩 단순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대해서는 별다른 전략과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배의 설계에 대한 제약 역시 없다. 우주선에 붙일 수 있는 부품의 갯수 제한이라던가, 에너지 시스템이라던가, 엔진과 쓰러스터가 따로라던가, 회로라던가, 이런건 없다.
귀상어처럼 됐다
배의 디자인에 대해서, 개개인마다의 취미나 성향이 다를 수는 있지만, 매 런마다 모이게 되는 부품의 출현 빈도, 유형, 수량 자체는 비슷하기 때문에, "이번엔 새로운 빔 말고 화염방사기만 써 봐야지~" 하면서 의식적으로 자체적인 제약을 두지 않는 이상, 각 사람마다 취하게 되는 우주선의 형태, 전략은 결국 수렴될 수 밖에 없다.
캠페인 맵에는 지형지물과 함정이 산발하여 있다. 함정을 이용해 적 우주선을 처치하는 것은 썩 재미있긴 한데, 우주선 만들기라는 핵심 플레이에 딱히 기여하는 것이 없다.
캠페인을 재미있는 로그라이크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줄 만한 지표가 부실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게임이 아쉬워질 수밖에 없다. 여러가지 요소가 무작위이긴 하지만 랜다트같은게 떨어지는건 아니라서 매 판 또이또이다.
말하자면 캠페인은 우주선 만들기라는 핵심 플레이를 단순히 풀어내기 위한 보조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지만, 게임에 달리 플레이라고 할만한게 없을 뿐이다. 캠페인이 게임의 틀을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우주선 만들기라는 핵심 플레이에 추가적인 기여를 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냥 우주선 만들기 자체가 재밌다.
자기만의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우주선을 만들 수 있는 개성있는 타이틀이긴 하지만, 전자오락으로서는 중박 이하다. 마음에 들긴 하지만 놀라운 타이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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