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비루에트에게,
포도주, 치즈, 프티 포스티옹 광장, 건배.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이곳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다.
안부를 전하며.
알베르 메지그.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멋있는 비주얼의 도트 게임이 많이 나온다. 3D를 활용해서 멋있는 라이팅을 쏘거나 하는 식으로. 2D 도트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카타나 제로나 라스트 나이트같은건 꽤 멋있었다. 이스트워드도 마스터피스다.
패스웨이는 출시 전에 텀블러의 Devlog를 업데이트해가며 개발 현황을 공개했었는데, 같이 올라오는 인게임 스크린샷GIF의 완성도가 꽤 높아서, 좋아요를 많이 받았었다. 이스트워드랑 비슷하다.
패스웨이는 탑뷰 전략 턴제 RPG다. 전투 화면 자체는 xcom(클래식 시리즈)랑 비슷하고, 전투 밖, 지도 화면은 FTL이랑 비슷하다. 여기에 멋진 도트 그래픽이면 평타는 치겠지? 했는데 솔직히 좀 미묘하다. 평타를 아슬아슬하게 못 치는 느낌이다. 틀은 잘 만들어놓고 살 붙이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면 그래픽이 이뻐도 나가리다.
이것도 해보고 싶긴 한데
패스웨이의 개발사는 Robotality인데, 여기는 예전에도 비슷한 장르의 하프웨이를 한 번 냈었다. 배급은 마찬가지로 처클피쉬고, 대체로 긍정적이라서 따로 해보진 않았는데, 아마 비슷한 완성도로 내놓았던 것 아닐까? 근데 거의 똑같아보이는 게임을 한 번 내놓고 패스웨이가 두번째로 내는건데 이게 최선이었나 의심스럽긴 하다.
일단 이 게임은 로그라이크가 아니다. 퍼마 데스 옵션이 있긴 한데, 솔직히 전혀 의미가 없어 보여서 켜지도 않았다. 한 캠페인에서 취득한 아이템, 장비, 돈을 통째로 갖고 나와서 그대로 다른 캠페인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또 캠페인을 언제든 패널티 없이 철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원 관리에 있어서 별다른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기름이 다 떨어져서 진행이 불가능하다? 그냥 그대로 나오면 된다.
노드간 연결되는 경우의 수가 적다
맵은 보다시피 약빤 거미줄처럼 생겼다. A포인트에서 시작해서 목적지인 B포인트까지 노드를 하나씩 골라가며 진행하면 되는데, 각 노드마다 이벤트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 보통 대다수의 인카운터는 전투고, 일부 이벤트는 전투 없이 아이템만 몇개 주고 만다. 전투 외 이벤트를 보게 됐을 때, 딱히 생각할만한게 없다. 선택지에 따라 특별한 아이템이나 퍽을 준다던가, 디메리트를 받고 메리트를 받는다던가. 그런게 없다. 별로 흥미롭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카운트는 전투로 이어지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길게 얘기하겠지만, 전략성이 부족하고 반복적이다. 별로 재미없다. 장비템이 떠서 캐릭터 강하게 만드는건 재미있는데, 이건 전투랑 직접 관계가 있는건 아니다. 말하자면 전투의 보상 자체는 만족스러운데, 전투가 재미없다.
그리고 맵의 각 노드를 넘어가려면 FTL의 연료마냥 기름이 필요한데, 가끔가다 아무 전조없이 기름이 두어개씩 증발하는 이벤트가 뜬다. 이게 뭔가? 이것저것 생각해가며 경로를 짜야 하는 게임에서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캐릭터를 때리던가 강도가 나타나서 돈을 뺏던가 하지 연료가 갑자기 휙 날아가는건 좀 이상하다. 상점 위치를 봐가며 파밍하려고 경로를 짰더니 연료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어쩌다 그냥 길바닥에서 연료를 두어개씩 주워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줬다뺏다할거면 그냥 처음부터 안뺏고 안주는게 맞지 싶다. 뭐 지역마다 있는 고유 특성같은것도 아니고.
대신 뭘 주는것도 아니다
다시 돌아오기도 번거로운 끄트머리에 뭐가 있길래 가보니 상점이다. 별 기대도 안했다
그리고 하다보면 이런 말도안되는 거미줄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건 진짜 잘못 만든게 맞다. 한번 방문했던 노드를 재방문할 때 연료비용이 절감되는것도 아니고, 새로운 인카운터로 재생되는 것도 아니고, 쌩 연료만 추가로 날려야 하는 지형을 만들어 뒀다. 지도를 이쁘게 그려놓고 노드를 박아넣다보니 이런 참사를 낸 것 같은데, 차라리 노드를 당당히 바다 위에 찍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각 노드가 서로를 연결하는 경우의 수가 적은 것이 문제다.
그리고 취향이지만 리스크 없이 보상만 많이 주는 보물 노드같은게 없는 것도 아쉽다. 덕분에 안그래도 흥미롭지 못한 지도가 더 재미없게 됐다. 일발성 캠페인이 아니라 지도 밖까지 재산을 가지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재산이 쌓이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그런 노드는 만들지 않았다, 라고 한다면 수긍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있었어야 하지 않나? 맵에 보이는 인카운터랍시고 표시해둔게 상점, 전투, 이벤트(대부분 전투로 이어짐) 밖에 없다.
전투의 경우 솔직히 아쉽다는 것이 결론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엄폐물이나 수풀 따위의 지형지물 식별이 어렵다. 시각적으로는 정말 예쁜데, 이게 엄폐를 주는건지 마는건지, 시야를 가리는건지 마는건지 알아보기가 힘들다. 탑뷰 시점 상 가려지는 위치에 엄폐물이 있는 경우, 이것 또한 알기 힘들다.
캐릭터를 선택했을 때, 이동 가능 위치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파란색으로 그리드를 표시하는데, 캐릭터가 넘어갈 수는 있지만 자리할 수는 없는 위치에 대해,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다. 분명 세워둘 수 있는것처럼 표시해놓고 막상 눌러보면 안가진다.
뭐지? 싶은게 많다.
엄폐물의 시야 판정 또한 직관성이 떨어진다. 엄폐물의 시야 차단 여부를 알기 어렵다. 보통 시야까지 차단하는 엄폐물의 경우 따로 표시를 하긴 하는데, 지형지물의 보이는 높낮이 자체는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똑같이 생긴 벽돌이라도 미묘하게 살짝 더 높아서, 어떤 건 시야를 가리고 어떤 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텐트는 가운데 라인이 시야를 완전 차단하는데, 양 옆의 살짝 낮은 부분은 엄폐만 제공한다. 굳이 세모모양 텐트를 그렸어야 했나..?
적의 AI가 단순하고, 전투의 패턴 또한 몇가지 없다. 이런 전략 게임이라면 보통 상상하게 되는, 탈출 미션이라던가 점령, 혹은 특수 목표의 달성같은게 없다. 스포지만 보스전도 없다. 이래저래 부족한 아이지만 많이 사랑해주세요.
적의 가짓수가 적다. 10종류가 조금 넘는다. 중후반부 캠페인의 경우 적어도 적을 100마리 이상 보게 되는데, 똑같은 종류의, 똑같은 행동을 하는 적을, 똑같은 방법으로, 비슷한 지형에서, 반복적으로 죽여야 하니, 굉장히 지루하다. 뭔 중동의 사막 한복판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나치와 마주치는데, 보이는 나치마다 전부 다 죽여버리고 다니니, 솔직히 내가 나쁜놈같다.
개인적으로는 뛰어난AI나 심도있는 스킬트리같은것들은, 분명 훌륭한 디자인이며, 게임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요소들이겠지만, 게임의 재미라는 면에 비춰서, 이것은 필수적인 소양이 아니며, 흥행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벌이나 IO 게임들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선적인 것은 게임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이며, 부속 디자인의 초점은 여기에 잡혀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인게임 그래픽의 심미적 성취도를 보면, 이들은 한정된 자원으로도 분명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텐데, 그래픽에 비해 게임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아이템 파밍 부분이나 캐릭터 스킬 트리 역시 깊이가 얕은것은 매한가지이나, 실질적인 플레이타임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부속품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진 정말 갓겜이었는데
게임 자체가 이뻐서 그냥저냥 만족은 했다. 아이템 파밍하는것도 단순하지만 재밌고. 그래픽은 사실 경탄스러운 레벨이다. 전달하는 텍스트와 음악, 분위기도 꽤 흥미롭긴 하지만, 가장 비중이 큰 전투 부분이 별로였다. 도트 좋아하면 한번 돌려볼만은 하다.
지금까지 봤던 도트 UI중에 가장 예쁜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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