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3. 9. 13. 10:49

 

 여기서 뜬금없지만, 식욕과 성욕은 서로 맞닿아 있더라고 한다. 나아가, 뷔페와 수음의 공통점을 짚어보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매번 드높지만, 결과가 그에 따르지 못한다. 뷔페를 파산시킬 것을 다짐해놓고 3접시 끝에 두리안을 찾으며, 2회전을 각오했으나 1회전에서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고 회군하듯, 매번 반복하지만 비슷한 결과를 마주한다. 만족했다지만 만족한 것이 아닌다. 과연 주체는 결핍이로다. 워테일즈는 비유하자면 중저가 뷔페라고 할 수 있는 게임으로, 스팀 리뷰란에선 추천하냐 비추천하냐의 선택밖에 할 수 없어, 양심에 따라 "이 게임을 추천" 하기는 했으나, 내심 불만족스럽다.

 

 2010년대 초반에 출시된 "Evoland"는 나름의 유명세를 떨쳤던 성공한 게임이다. 게임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비디오 게임 산업계의 발전을 비유하듯 그래픽이 일신하는 컨셉이 눈길을 끌었다. 이 "Evoland"의 개발사가 다름아닌 Shiro Games인데, 프랑스 보르도에 적을 둔 이 회사는 이후 Northgard(미니리뷰에서 다룸),Darksburg등의 신작을 계속해서 찍어내고 있으며, 이 리뷰에서 다루는 Wartales 또한 Shiro Games의 작품이다.

 

 워테일즈는 21년 말에 얼리엑세스를 시작해, 23년 4월에 정식 출시했다. 최근 공식 한글화를 위한 사전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이 게임은 자신만의 용병대를 꾸려 지역마다 주어진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RPG인데, 전체 시나리오를 아우르는 큰 줄기는 없다. 대신 중점을 둔 것은 용병단의 육성과 운영이며, 이 면에서 몇 가지 고려할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용병단 야영지의 소소한 커스터마이징(POE마냥)도 가능하고, 용병단의 구체적인 인원 제한은 없다.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조금 이른 감도 있지만, 배틀 브라더스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워테일즈라는 게임을 면밀히 파악하고자 함에 있어 불가결한 것 같다는 말을 우선 하고 싶다. 배틀 브라더스라는 게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블로그에만 배브 리뷰가 3편이나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참고하시라.

 

3번이나 썼는데, 사실 써놓고도 잘 모르겠어서 두 번 더 쓴 것이다.

 

배틀 브라더스

 

 명작 배틀 브라더스는 Overhype Studios에서 17년에 출시한  턴제 전략 게임이다. 재기드 얼라이언스 시리즈, 엑스컴 리부트 시리즈와 공유하는 단체 육성 게임의 정체성을 가진다. 육성 선택지가 많고 전투 전략성이 깊어, 비슷한 게임을 기다려왔던 유저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으며, 눈에 띄는 게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게임이라는 것은 없고,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원하기에, 배틀 브라더스와 비슷하지만 다시 새로운(발전된) 용병단 운영 게임에 대한 수요 역시 명백했으며, 워테일즈는 이러한 유저층의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워테일즈와 배틀 브라더스는 적지 않은 접점을 가진 게임들이다. 팬층의 교집합 역시 크다. 그러나 공유하는 것보다 공유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워테일즈를 배틀 브라더스의 개선판 내지 아류작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각자 게임에서 받을 인상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후자가 건전한 쪽 아닌가 싶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불건전한 쪽이었다.

 

원형 공격범위를 지정하는 방식의 스킬이 많다. 혹자는 아틀라스 리액터가 생각난다고도..

 

야영지에서 일을 시켜 물품을 생산할 수도 있음. 솔직히 변변찮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워테일즈는 전략, RPG, 자원관리, 탐험, 미니게임 등의 작은 요소들이 종합된 게임으로, 전술 전략 일변도의 배틀 브라더스와는 그 결이 다르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우열을 따질 수는 없고, 다만 워테일즈 쪽의 공수가 더 많이 들었을 것 같기는 하다. 워테일즈라는 게임 안에서 볼 수 있는 플레이가 더 다양한 것이 사실이긴 하며, 나열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기본 4인의 간단한 캐릭터메이킹을 마치면, 월드맵 위에서 별다른 튜토리얼 없이 게임이 시작되어, 플레이어 주도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탐방하게 된다. 마을이나 동굴 모습의 표지가 맵 위에 그려진다. 눈 앞에 보이는 이것을 방문하다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퀘스트를 수행하게 된다. 따로 "메인 퀘스트"가 있는 게임은 아닌데, 대신 독립 지역 시나리오와 관계된 핵심 퀘스트와, 거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이드 퀘스트가 나뉘어 있다. 퀘스트의 분량이나 내용이 그럭저럭 튼실하다. 내용이 대단히 흥미롭거나, 선택지 자유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수준 미달은 아니다. 더군다나 놀랍게도 풀-더빙이다. 과연 공수가 적잖게 들었을 것 같다.

 

 월드맵 위, 혹은 표지 내부의 컨테이너(자물쇠로 잠긴 것, 훔쳐야하는 남의 것 포함)에는 갖은 자원이 떨어져 있는데, 이걸 채집해서 갖은 종류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장비나 포션에서 시작해, 야영지에 설치하는 작업대나 텐트같은 각종 시설, 장신구 등을 만들게 되는데, 그 가짓수가 상당하다. 물론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긴 하다... 개중에는 기능이 미미하거나 무의미한 경우도 많아, 대체로 게임이 정제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만든다.

 

조건부 딜 5%는 대체 누구 코에 붙이라는 것인지..

 

리듬 게임. 연주를 마치면 잡템을 던져준다

 

 장비 제련이나 낚시, 장작패기, 채광같은 자질구레한 작업마다 이것저것 미니게임이 배정되어 있다. 타이밍 게임이 많다. 소소하게 재미는 있는데, 수십시간의 플레이타임 내내 반복하게 되니 지루하다. 스킵도 없다. 워테일즈가 짧게 즐기는 게임이라 몇 번 하고 말았으면 마냥 좋았을텐데, 이걸 수백 수천번 반복하려니 쉽게 질린다. 

 

 워테일즈의 게임플레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부분은 전투다. 용병단이 주인공인 게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배틀 브라더스를 위시한 여타 전략 게임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워테일즈의 용병은 저마다 미리 정해진 "직업"을 가진다. 그에 따라, 사용 가능한 무기 풀과 스킬 트리를 가진다. 직업이 허용하지 않는 무기는 쓸 수 없다. 고를 수 있는 스킬 트리의 절대적인 가짓수, 기회, 경우의 수가 적다. 성능이 좋은 무기와 특성 역시 대체로 정해져 있다. 캐릭터의 능력치 역시 모두 표준화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개별 캐릭터의 개성적인 육성은 불가능하다. 

 

 전투를 시작하면 비전투 유닛을 제외한 파티의 모든 유닛이 전장에 돌입하며, 유저 임의로 유닛을 전투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투 시작 시 무작위 위치에 배치 지점이 생성되어, 모든 유닛은 그 위에 놓이며, 허용된 위치에 한해서 아군 유닛의 위치를 교환할 수 있다. 배치 지점의 수를 약간 더 늘리거나, 약간 더 조밀하게 만들거나 하는 업그레이드가 하나 있긴 하지만, 배치의 무작위성을 이 이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매 전투 시작마다 이리저리 흩뿌려지는 캐릭터들을 찾아서 하나씩 재배치 해 줘야 하는데, 재미있는 작업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턴제 전투인데, 방식이 조금 특이하다. 상대 AI는 유닛 개별의 턴을 받는 것에 비해 플레이어는 아군 유닛의 총 수만큼 임의 행동 기회를 받아, 차례가 왔을 때 자신이 원하는 유닛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유닛은 각 라운드마다 1회 행동할 수 있으며, 모든 유닛이 행동하여 라운드가 넘어가면 다시 행동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임의 턴과 AI의 개별 턴을 비롯, 모든 행동 순서는 하나의 시간선 UI 위에 표시되는데, 이것이 정해지는 기준은 매우 아리송하여, 그 규칙이나 경향성을 살짝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게 명시되지는 않는다. 유닛이나 팩션의 주도력-우선권과 같은 수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더라도 알려주지 않는다. 전투에 참가한 각 팩션의 인원수에 차이가 있을 때, 시간선상의 턴 배치 간격은 팩션별 인원수 비율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분명 적보다 아군이 더 많은데, 적 유닛 3명이 연달아 행동하기도 하는 등, 솔직히 말해서 중구난방이다.

 

스탯 , 스킬 가짓수부터가 적다. 의지력엔 캡도 있다. 물론 종류만 많다고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전투에 들어가서 일일히 재배치 해 줘야 함. 흔히 사용하는 방식대로 진입 전에 기본 진형을 짜게 해 줬으면 안 되는 걸까..?

 

 플레이어 임의 턴이 주어졌을 때, 원하는 유닛을 선택해 이동이나 스킬 사용 등의 행동을 취하면, 그 유닛의 턴으로 고정되어, 동시에 다른 유닛을 움직일 수 없다. 각 유닛은 본인의 이동력만큼 움직일 수 있으며, 매 턴마다 한 번의 기본 공격을 할 수 있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기본 공격이 아닌 스킬은 AP라는 팀 공유 자원을 소비하는데, 야영지 시설물 업그레이드에서 몇 점 받을 수 있고, 전투 중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조건을 충족하는 것으로도 임시 AP를 수급할 수 있다. 시설물에서 받는 AP는 소비하지 않으면 전투가 끝나도 남아 있는데, 임시 AP는 안쓰면 날아간다. 스킬은 대체로 1AP를 쓰고, 일부가 2를 쓴다. 

 

 이 게임의 전투는 전술이 필요하지 않다. 시뮬레이션보다는 퍼즐에 가깝다는 감상. 명중률이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필중이다. 존재하는 확률 요소는 피해량 범위(데미지 레인지), 치명타율, 아군 오사 확률 정도이고, 상술했듯 배치가 랜덤이다. 전략 게임의 전략성이라는 것은 대체로, 게임 내에 존재하는 변수를 줄이고 고민하여 최적해를 내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워테일즈의 전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 대부분의 경우 너무나도 명백하다. 명중률의 부재가 그 자체로는 중차대사가 아니다. 명중률이 아니더라도, 고민거리가 존재한다면 그걸로 좋다. 하지만 워테일즈는 부족하다. 주어지는 배치 지점에 흩뿌려진 본인 캐릭터들을 만지작만지작 옮겨주는 것은 어렵다기보단 지루한 일이다.

 

 개별 유닛은 3x3 사이즈의 지상 그리드를 점유한다. 각 그리드가 0.5M이므로, 가로세로 1.5미터를 차지하는 셈이다. 큰 동물은 한 칸 더 써서 2M다. 유닛의 이동력은 미터로 치환되며, 그만큼 이동할 수 있다. 유닛은 진영 관계없이 서로 통과할 수 없다. 그런고로 아군 유닛끼리도 서로의 운신을 방해하는 감각이 있다. 게다가 이 게임에서 주로 쓸 만한 공격 스킬이라는 것들이 대체로 광역기인 까닭에 더 방해된다. 광역기가 깔끔하게 들어가는 위치를 찾아 0.5M 단위로 캐릭터를 찔끔찔끔 움직어야 하는데,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유닛은 자체적인 ZOC 가 없는데다 배치가 기본적으로는 무작위이기 때문에, 진형 싸움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상대 유닛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유닛들끼리만 뭉쳐 있어도 아무것도 못한다. 인원 제한을 넣는 것이 맞지 않았는지?

 

경비대에 잡혔을 경우, 동료 하나만 고발하여 감옥에 보낸 뒤, 감옥가서 80원으로 재고용하기만 하면 범죄 수치가 0이 된다. 8000금 가까이 털고 다녀도 달라지지 않음

 

 전투를 종합하여, AP라는 용병단 공용 자원을 사용하는 특이한 시스템이지만, 전투는 단체전이라기보다는 개인행동이다. 유닛이 서로 붙어있을 때, 포위나 지원등의 소소한 보너스가 붙기는 하지만, 소소하다. 캐릭터 육성의 폭이 넓지 않다. 그러므로 개별 캐릭터의 개성은 다소 희생되어 있으나, 막상 단체전이라는 면에서도 미흡하다. 개별 캐릭터의 육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게 장점이 되기에는 다른 돌출되는 부분이 없다. 그리고 종종 맵에 캐릭터가 랜덤 배치되는 과정에서, 상대와 아군의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곤 하는데, 좋지 않다.

 

 이것저것 즐길 거리가 많이 갖추어진 게임이기는 하다.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고대 유적이 있는데, 어두운 공간에서 횃불을 비롯한 광원을 활용해야 하는 전투가 발생하며, 퍼즐이 많다. 지역마다의 메인 시나리오와 무관한 보스 전투가 하나씩 있고, 고유의 전투 규칙을 따르는 투기장도 있다. 지역마다 시나리오 진행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어느 지역에서는 추리물로 장르 전환도 한다. 게임이 흥미로울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게임이 애매하다. 덜 만든 것 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실제 덜 만들었기 때문이다. 쓰이지 않는 아이템이 많고, 의미가 없는 패러미터가 있고, 쓰이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시스템이 있다. 반면에 자잘한 버그는 많다. 캐릭터 스탯이나 전투, 생산에 소소한 보너스를 주는 배낭 장신구와 허리띠 장신구가 있는데, 정말 너무 소소한 반면에 가짓수는 많다. 마을이나 성채 등 거주지의 경우, "인구수"라는 수치가 표시되는데, 왠지 기능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어디에서도 쓰이지 않는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획득할 수 있는 "칭호"가 있는데, 한 캐릭터가 여러 개 얻을 수 있지만 바꿀 수 없고, 볼 수 없고, 기능도 없다.

 

헬로 하와유 암 안덜더워터

 

나름 멀티플레이도 구현되어 있음. 재미있긴 한데 멀티로 할 만한 게임은 아님


 결론적으로, 워테일즈는 중심축이 애매한 게임이다. 샐러드바는 괜찮은데 메인이 맛없는 식당과 비슷하다. 전략 시뮬레이션과 RPG 둘 중 어디에도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기 애매하다. 그렇다고 또 하는 내내 재미없는 게임은 아닌 것이, 이러한 깊이 부족이 드러나는 시점이 다소 늦다. 20-30시간 정도 해보면 슬슬 느낌이 온다. 플레이타임 4시간쯤 만들어두고 2만원 받는 게임이 천지에 널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워테일즈는 두말할 것 없는 선녀다. 다만 분량은 100시간 이상을 만들어놓고, 막상 그 내용물이 빈약하니, 이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는 듯한 기분을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

 

 반면, 배틀 브라더스는 전략 시뮬레이션과 용병 육성에 온전히 집중한 게임이다. 자질구레한 임무같은 것들은 모두 텍스트로 처리되어 있으며, 미니게임도 퍼즐도 자원 채집도 성우 더빙도 없지만, 배틀 브라더스의 핵심 게임플레이 역시 대체제가 없다. 둘 중 어느 게임이 나은가 하는 것은 이제 취향의 문제이고, 개발론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할 자격은 내게 없지만, 감히 말하자면 배틀 브라더스의 디자인이 더 정교하지 않나 생각한다. 야망이 너무 컸던 게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정식 출시 이후로도 워테일즈의 업데이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로 게임즈의 전작 노스가드의 전례를 보면, 18년에 낸 게임을 23년까지 업데이트하고 DLC를 내고 있으니, 여러 면에서 게임이 개선될 가능성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튼간에 나처럼 과도한 기대를 품지만 않는다면, 누구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