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의 왕관 테두리에 발톱을 박아 넣고 팔을 벌린 채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나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올렸다.
몇 년씩 출시가 지연된 게임들에 대해, 사람들은 으레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작자들의 내분, 혹은 방향성, 추진력의 상실, 혹은 예산 부족을 의심한다. 전례가 부족하지는 않다. 심지어 아울보이 또한, 아울보이는 9년의 개발 끝에 출시된 게임인데, 개발자들은 인터뷰에서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딴 소리를 좀 하면, 먼 과거의 예술가들은 하나의 작품 (이를테면 조각상)에 십수년, 반평생을 바치기도 했었는데, 그들이 겪었을 고난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수년간 공을 들인 예술품이 한 순간의 실수, 혹은 자연적인, 혹은 타자의 실수로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인생 자체가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장기간 개발하는 현대의 게임 개발자(창작자 공통이겠지만)들 역시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아, 게임의 성패에 대한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누군가는 이 과정 속에 머리털이 빠지기도 한다. 아울보이의 개발자들은 오랜 개발 도중 가족을 여럿 떠나보냈던 것이 큰 상처로 남은 모양이다.
각설하고,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아울보이는 팬덤(사전에 공개된 개발 소식들에서 비롯된)의 기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완성되었다. 평론가 점수도 좋고 팔기도 꽤 팔았다. 하지만 아울보이의 개성은, 이처럼 게임 외적인 부분, 그리고 완성도 높은 픽셀 그래픽에 있다는 것, 그것이 중론으로, 인게임 내용에 관해서는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여 묘사하는 경우가 잘 없다. 그리고 나로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출시 전후로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D-Pad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아울보이는 정의하자면 사이드스크롤 액션 어드벤쳐 RPG다. 횡스크롤 맵을 돌아다니는 게임이고, 몇가지 섹션- 던전 구간들로 나뉜다. 맵의 대부분은 퍼즐로 채워져 있으며, 전투 역시 소소하게 후첨되어 있다. 전투와 퍼즐이 특기할만큼 섞여있는 경우는 잘 없고, 있다면 보스전에 한정된다. 그 외 중요한 것이라면 캐릭터들과의 대화, 상호작용(비주얼에 국한된), 지형지물의 묘사, 컷씬 등이 볼거리가 되며,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엔딩 변경 따위의 요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숨겨진 스토리에 대한 파고들기 요소가 은근슬쩍 제시되기는 하는데, 애초에 그런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게임, 아울보이는 모종의 기술, 아마 고대의 마법 같은 것인데, 이것으로 섬들이 공중에 떠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흔히 보이는 하늘섬이다. 예컨대. 주인공은 Otus라는 이름의 아울이다. 여기서 아울이라는 것은 부엉이 비슷하게 생긴 종족을 일컫는 인데, "부엉이 수인" 이라기보단 "부엉이 동물 캐릭터" 라고 할 수 있겠다. 짚어두고자 하는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아무튼 이 아울들은 이름대로 날아다닐 수 있어 세계관의 해결사 역할을 도맡고 있다.
주인공 오투스는 실패하는 인물이다. 벙어리인데다가 좌학 성적도 별로고 비행술도 좋지 못하다. 스승 아울인 Asio는 그의 앞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과 친구 Geddy는 오투스의 선한 내면과 끈기를 인정해주는 이들이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한 모양. 그런 못난 오투스와 괴짜 동료들이 활약한다는 스토리.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커다란 반전, 독창적인 설정같은 것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사소한 결점이 있지만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무난한 활극이다, 라고 밖엔 더 할 말이 없다. 게임의 스토리로서도 딱히.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멀티엔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 선택지라는게 없다. 중요하진 않다.
중대장은 실망했다
스토리는 역시 중요하지 않다.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조작체계, 사이드스크롤 액션 플랫포머라는 장르 면에서, 아울보이가 어떠한 특징을 갖추고 있는지가 나의 관심사다. (게임의 디자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사이드스크롤 액션 플랫포머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마리오 시리즈다. 부연하자면 가로로 진행되는 맵에서 점프를 이용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게임들이다. 여기서 점프를 이용한다는 것은 중력을 전제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다른 종류의 게임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는 사이드스크롤 플랫포머+액션에서 아울보이가 어떠한 매력을 갖추고 있나를 생각하면, 좀 아니올시다이다.
아울보이의 주인공 오투스는 날아다닌다.(비행이 서툴다는 설정이 무색하게도.) 그렇기에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드스크롤 플랫포머에서 날아다니는 캐릭터라고 한다면, 마리오3의 너구리 마리오인데, 실제 D-pad 스튜디오는 인터뷰에서 아울보이의 아이디어를 마리오에서 얻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아울보이의 비행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반영구적인 것으로, 마리오의 비행이 일시적으로 on되는 기믹이라면, 아울보이의 비행은 기믹에 따라 일시적으로 off될 뿐, 기본적으로는 on인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날아다니는 주인공을 조작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 사이드스크롤 플랫포머 게임으로서는 재미없는 경험이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아울보이의 비행, 그 특징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오투스는 기본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아 땅 위를 걸어다니며, 점프할 경우 잠시 체공한 뒤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때 오투스가 체공중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점프 키를 입력할 경우 "비행"상태로 전환된다. 비행 상태일 경우,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상하좌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가끔 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진다던가, 공기가 부족하다던가 하면 비행이 막힌다. 그리고 공격당하면 비행이 풀리고 떨어진다.
비행 상태에서만 가능한 조작, 퍼즐이 게임에 여럿 준비되어 있어, 기존의 플랫포머 점프 게임들과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라고 쓰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일단, 비행 자체가 별로 재미 없다. 화면 안을 이동하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다. 말하자면 그거다. 슈팅 게임의 조작이다. 섹시 파로디우스의 사이드스크롤 슈팅 조작과 하등 다를게 없다. 둘째, 이러한 비행 조작이 그래서 보통의 사이드스크롤 플랫포머 게임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냐라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애당초 마리오3의 너구리가 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비행기를 타던 로켓을 타던 날아다니는 "스테이지" 정도는 꼭 한번씩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의 경험과 오울보이에서의 경험에 큰 차이가 있나?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울보이의 조작은 개성이 없다.
재미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아울보이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내 눈인데, 게임의 아트와 연출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다. 레벨 디자인도 괜찮았다. 재미있는 연출이 나올 수 있을법한 모든 부분에 연출이 들어갔다. 일회성 에셋도 아낌없이 쓰인다. 덕분에 게임의 체급보다 한 층 더 높은, 애니메이션 같은 게임이 되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경우 모두 직접 그려져 있어, 덕분에 스프라이트 시트가 방대하다. 서브픽셀 트랜지션 역시 능숙하다. 서브 캐릭터의 경우 팔 로테이션이 들어가는데, 이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축 회전으로 대체했다. gg2에서 쓰이는 것이랑 비슷한 방식인데, 팔의 각도에 따라 스프라이트를 교체하는 것으로 어색함을 줄였다. 확실히 하나의 방법이다. 맹점은 이 팔에서 출발하는 투사체의 위치가 변경되는 스프라이트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무시하고 넘긴 모양.
대부분의 배경은 픽셀 퍼펙트인데, 종종 필요할 경우 일부 에셋에 로테이션을 넣어 사용했다. 컬러 스킴의 트랜지션 역시 능숙하다. 아울보이는 픽셀 그래픽 마니아들을 위해 준비된 테마파크나 다름없다. 다만 비슷한 시기 출시된 Mummy Demastered나 Chasm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좋은 픽셀 그래픽이 게임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 말한 흥행이라는 것은 투자 노동력 대비 수익이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다.
개발에 9년이 걸린 게임이다. 사업적으로는 불건전하다고 본다. 하지만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개발 지연이라는 것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같은 게이머 입장에서는, 그냥 한 번 해 보기는 좋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나로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픽이 좋았기 때문에, 게임으로서 엄청 재미있지는 않다고 결론짓는 것에, 저항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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