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4. 4. 18. 19:15

성은-분홍색, 연한 보라색, 회색, 그림자로 이루어진 조그만 습작처럼 보인다- 아침의 사양斜陽을 받고 서 있었다.

 

 전형적인 턴제 로그라이크-던전 크롤러로부터 바로니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별점이란, 이 게임이 단지 턴제 진행이 아닌 실시간이라는 데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심지어 특정 시점까지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기까지 한다. 달리 세세한 부분에서도 다른 점들이 있지만, 그들은 단지 바로니가 실시간으로 성립하기 위하여 조정된 디자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 게임은 넷핵과 스톤수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무엇이 더 로그라이크다운 게임이냐는 물음에 대해, 미식별 아이템이나 맵의 절차적 생성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것들은 세부 혹은 하위 시스템의 이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주문의 확률적인 실패나 매핑 스크롤 등, 달리 생각하면 바로니는 이것들을 그저 베꼈을 뿐이다. 하지만 바로니에 대한 호평의 근거로서 그보다 적절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리니지를 이렇게 베껴놓으면 고소의 근거가 되는 것 같다.)

 

 Turning wheel은 3명의 개발자로 이루어진 인디 개발사이다.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세계 각지에서 온라인으로 협업하고 있다는 듯하다. 게임 Barony는 15년에 스팀 출시된 게임이다. 아마 그린라이트를 경유했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이 게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나로서도 최근으로, 게임이 한글 패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dkn에게 전해들은 것이 24년 2월쯤이다. 게임은 최근에 업데이트되었다. 캐릭터의 머리 장비 여럿, 그리고 미믹 등이 추가된 것인데, 출시 10년차가 다가오는 인디 게임인 것을 감안하면 특이한 일이다. 그간 DLC가 2개 출시되긴 했지만, 마지막 DLC가 출시된 지도 5년 가까이 된다. DLC를 더 내려는 건가?

 

멀티가 꽤 깔끔하게 돌아간다.

 

 바로니를 처음 접했을 때 당신이 느낄 감상은 이거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바로니는 정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게임이다. 전형적인 그리드베이스 던전 RPG가 머릿 속에서 몇 개 스쳐지나간다. 세계수의 미궁, 그림락, ... 그리고 바로니는 그들 중 가장 실시간 FPS에 가까운 게임이다. 게다가 복셀 그래픽, 부머 슈터, 그렇다. "던전 크롤러"를 머릿속 한 켠으로 밀어놓고 보면 이건 부머 슈터다. *(둠 라이크 레트로 FPS를 뭉뚱그려 틀딱 슈팅이라고도 부른다.)

 

 하나의 선분을 상상하자. 그 선의 양 극단에는 던전 크롤러(로그라이크)와 부머 슈터(말이 부머 슈터지 그냥 FPS)가 있다. 바로니는 그 사이 어딘가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어중간하지만 던전 크롤러에 치우쳐져 있다. 이 위치에 서는 것으로 바로니는 어느 정도의 개성을 확보했다. 동시에 이 위치에 서기 위해 던전 크롤러 부분에서 어느정도 경량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읽힌다.) 결과적으로 어디선가 조금씩 아쉬운 디테일이 보이더라도 어느 정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플레이어는 종족(DLC 없으면 인간 하나)과 직업(DLC로 추가 해금되는 종류가 몇 있음)을 골라 던전에 들어간다. 던전의 맵 구조는 일부 히든 레벨을 제외하고 무작위로 생성된다. 깊이 들어갈수록 나오는 적의 수준이 높아지고 맵은 넓어진다. 서너개의 층을 지날 때마다 레벨의 테마가 바뀐다. 동굴 → 습지 → 유적, 이런 식이다. 기준 레벨이 되면 보스가 나오며, 이걸 클리어하는게 목적이다. 이전 레벨로 복귀할 수 없으며 문은 기본적으로 하나, 서브 테마같은 건 없다.

 

 플레이어가 고른 종족에 따라 강점과 약점,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종족의 종류, 사용하는 고유 자원 등이 달라진다. 플레이어가 고른 직업에 따라서는 시작 기술과 스탯(들에 대해서는 후술)이 달라지며, 고르는 직업에 따라 익힐 수 는 기술이나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같은게 갈리지는 않는다.(다만 굳이 익히고 싶지 않은 기술이나 착용하고 싶지 않은 장비가 달라지기는 한다.) 스탯은 말 그대로 캐릭터의 기본적인 신체 성능으로, 그 종류는 전형적이다. 특이사항이라면 마법 공격에 속성이 따로 없어서, 저항 스탯은 세분화되지 않았다. (불저항 전기저항 이런거 없다는 뜻) 기술은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동작들-공격, 연금술, 분석 등의 수행 능력을 표시하는 것으로, 관련된 동작을 반복하는 것으로 올릴 수 있다. 플레이어의 레벨은 기술 레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플레이어 행동의 최종 성능은 기술, 그리고 기술과 연관된 스탯의 영향을 받는다. (활을 쐈을 때, 그 효율은 원거리 공격 기술과 민첩 스탯의 영향을 받는 형식.)

 

숙련도 상승에 보정치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서, 원하면 올100도 가능하다.

 

 그 외 게임의 세부 시스템은 던전 크롤러-로그라이크의 정석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아이템(장비 포함)은 미식별된 상태로 드롭되며, 몸으로 확인하거나 식별하는 것으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장비까지 싹 다 미식별인 대신 "분석" 기술이 따로 있어, 아이템의 가치에 따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석 기술의 레벨이 높을수록 높은 가치의 아이템들까지 식별할 수 있음) 

 

 스크롤, 일회용 주문서,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며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그래픽은 스크롤인데 식별해보면 스크롤이 아닌 잡템같은 것도 있다. 스크롤은 대체로 가치(주관적인 가치가 아닌 게임 내 골드 가치)가 낮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스크롤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식별 기회를 아끼기 위해 몇 장 쌓이면 한 번씩 긁어보는 다른 로그라이크들과는 대조적이다.

 

 포션 역시 비슷하다. 여러 종류가 있고 (바로니에서는) 성능을 쉽게 알 수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영구적인 스탯의 증감 효과를 주는 포션이 없다는 점. 그리고 한정된 칸 수의 그래픽 인벤토리에서 기인하는 특징인 것인지, 서로 같은 성능의 포션이라고 하더라도 병의 그래픽이 다르면 서로 다른 인벤토리를 차지한다. 포션의 사용시 성능은 "연금술"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양조기" 아이템을 이용해 포션을 합치거나 새로 조합하거나 할 수 있다. 근데 이 조합 기능이 불편한데다 포션의 투척 성능 또한 애매하기 때문에, 나는 포션의 양조 관련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그냥 상점가서 사는게 편하다.)

 

포션은 사서드세요... 제발

 

 장비나 포션을 비롯한 모든 아이템은 저주받거나 축복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아이템의 이름 옆에 정수로 표기되는데, 정수로 +1, +2, +3... 되면 그만큼 강화되었다는 뜻이다. 음수가 붙으면(-1, -2 등) 그 아이템은 단순히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주받은 것으로, 손에 들거나 장비했을 경우 해제할 수 없다. 아이템의 약화와 저주 상태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동반한다. 다른 게임의 경우 분리되어 있곤 하다.

 

 마법 책을 읽는 것으로, 그 책의 주문을 배울 수 있다. 관련된 기술은 "마법"과 "시전"의 둘로 나뉘는데, 솔직히 나뉘어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주문이 여러 학파로 나뉘어 따로 숙련도를 가졌던 로그라이크 유전자의 흔적기관인 듯하다. 일단 각 기술이 하는 일이 나뉘어있긴 하다. "마법"기술은 익힐 수 있는 주문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 기술이 낮으면 고급 마법은 책을 읽어도 배울 수 없다. "시전"은 주문이 성공하는 확률과 주문을 읊는데 걸리는 시간을 결정한다. 캐릭터의 "지능" 스탯이 높으면 주문의 성능도 덩달아 오른다.(오르는 수준은 약간 제한적)

 

 인간형 NPC에게 말을 걸거나 특정 주문이나 수단을 이용해 몬스터를 지배하는 것으로, 추종자(팔로워)를 만들 수 있다. 이 팔로워에게 내릴 수 있는 지시의 해금 등이 "통솔" 기술에 묶여 있다. 대부분의 적 개체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 근데 추종자의 AI나 스펙이 적 몬스터보다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에(똑같음) 보통은 게임에 별반 도움이 안된다. 팔로워 중에서도 나름의 네임드 개체가 있다. 이런 개체는 스펙도 좋고 등장도 희귀하다. 종종 보면 반갑긴 하지만, AI는 여전히 별로인 탓에 똑같이 고기방패 신세를 못 벗어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게임에서 고기방패는 별로 쓸모가 없다. 게다가 팔로워를 내가 죽일 경우 경험치가 들어오는데, 몹이 죽이면 안들어온다. 흥미롭긴 하지만 매력적이지는 못한 시스템.

 

이것저것 명령은 가능한데, 별로 유능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게임에 신앙 시스템이 따로 없다는 것. 구체적인 무언가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상 진행의 핵심이 되는 축, 그것이 마법과 무기 전투의 두 가지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디테일이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바로니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그리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으며, 각각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은 비교적, 다른 턴제 로그라이크와 비교하여, 단순하다. 포션의 가짓수가 적고 효과가 경직되어 있다. 장비의 성능이 표준화되어 있으며 새로운 드롭 아이템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 공격 마법의 성능에 부드러운 상한이 있으며, 확장성이 없다. 게임에 전반적으로 무작위성이 크지 않아, 각 세션이 상당히 예측 가능하다. 달리 얘기하면, 쉽다.

 

 그렇게 해서 바로니는 실시간 1인칭 던전 크롤러-로그라이크라는 포지션에 서서 어느정도 무난한 게임성을 갖출 수 있었으며, 본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멀티 플레이가 원활하게 작동(통신적인 면이 아니라 디자인적으로)하는 게임으로서 성립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니의 각 세부 디자인 디테일이 더 높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판매량이나 평가에 있어서 더 긍정적이었을지는 아리송한 느낌이다. 물론 어떤 유형의 플레이어들은 더 환호했겠지만...

 

가볍게 하기 좋다. 무슨 카우치 코옵마냥 가볍지는 또 않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이 부분은 좀 사족에 가깝지 않나 싶은 시스템이 더러 있긴 하다. 일단 포션의 양조는 그 기회가 어느정도 제한적인데 비해, 기대 효과가 크지 않고 비직관적이다. 제작,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시스템인데, 이게 또 굳이? 싶다. 상당히 번거로운데다 성능도 미묘. 재미있긴 하다. 마찬가지로 재미만 있는 팔로워 시스템. 일단 추종자를 양산해두면 밥값은 하는 것 같은데, 이 멍청이들을 살려서 데려가는게 스트레스 극심이다.

 

그리고 실시간 전투의 경우, 초반의 감상은 이거다. "턴제랑 거의 다를 게 없는데?" 적 몹이 슬슬슬 다가와 툭툭 치는게 일반 몹의 패턴이다. 쓸 수 있는 다른 기술이 있으면 한 번씩 섞는 정도. 그리고 나중의 보스전에 가면 이 양상은 바뀐다. 보스는 여러 가지 공격 패턴을 구사하며, 한 번씩 순간이동도 한다. 쫄 소환은 덤이다. 일반 몹과의 전투는 단순하지만, 보스전에서는 또 순발력이 요구된다. 약간 일관성이 없지 않나 싶다.

 

 몇 번 하기는 좋은데, 리플레이 내구성이 조금 부족하다. 포지션이 비슷한 바간치가 오히려 세션 상 변수가 더 많이 나오는 듯. 대신 1회 런의 볼륨 자체는 바로니가 더 크다. 패드 조작이 꽤 잘 되어 있어 스크린스플릿도 꽤 원활하다. 오히려 싱글플레이보다는 멀티로 꺼내기 적합한 게임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