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4. 6. 6. 08:54

 

 저번에 이어 덱빌딩 특집 2회째. 배너스 오브 루인은 확실히 별로였다. 네오버스는 그보다 좋았다. 그보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개성적인 플레이 내용이 있었냐로 따지면 또 그보다 못한 것 같다. 네오버스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고스란히 받아썼다는 인상이 상당히 강하다. 몇가지 변주는 있지만. 리니지를 웹진에서만 보는 입장에서 비유하자면, 리니지와 오딘의 관계가 아닐까?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리니지고 네오버스가 오딘이다. 여담이지만 저 여성 캐릭터들, 굉장히 몰개성하게 느껴지는데, 알 수 없게도 서양권 게이머들의 팬아트가 좀 있다. 무슨 매력을 느끼는거냐? 당신들.

 

 네오버스, 한국 게임이다. 개발사는 티노게임즈. 고등학교 동창 두명이서 공동 창업했다는 모양. 그 중 한 명인 문준용이 유명하다. 문재인 아들이다. 나머지 한 명인 김동효가 이 게임의 디렉터, 유일한 디자이너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네오버스는 19년에 얼리엑세스 시작해서 20년에 출시했다. 이후 소소한 픽스 몇 번을 끝으로 업데이트는 없다.

 

수영복 DLC 판매중(...)

 

 이 게임, 단평하자면, 서로서로 비슷한 디자인이 짜잘하게 많아서 정신 사납다. 그리고 특유의 핸드 시스템 때문에,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카드를 별 생각 없이 슥슥 던지게 되는데, 어쩌다 한 두판 이러면 몰라도, 매번 이러니까 경험이 반복적인 인상이 강하다. 그래도 카드 간 연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또한 카드 밸류에 대한 변형자가 여럿 있다), 덱 빌딩 자체는 꽤 재미있는 편.

 

 세 캐릭터가 전용 카드군과 공용 카드군으로 이루어진 카드풀을 가진다. 세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르고, 시작 덱(기본 카드 8장 중 2장이 다르다)을 골라 런을 시작한다. 5번 전투 후 보스전이다. 보스전을 3번 보고 최종보스전까지 끝내면 엔딩이다. 이 게임은 내리 전투만 한다. 한 런의 체감 길이는 Sts랑 비슷한 편. 개별 전투의 길이가 길다.

 

보스몹 생김새(...)

 

 전투 전에 3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선택에 기재된 것은 전투 난이도와 미션이다. 전투 난이도는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적 유닛의 스탯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등장 유닛 자체가 달라진다. 요컨대 엘리트 몹이다. 전투 승리 후의 보상은 난이도와 비례하지만, 엘리트 몹 자체가 엄청 쎈 것도 아니라서, 고만고만하다.

 

 전투 선택지에 기재된 미션은, 대체로 전투 중 임의의 조건을 달성하는 것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데, 거기에 부속된 보상이 엘리트 전투 승리 후 보상보다 매력적이다. 그러나저러나 구미가 당기는 미션은 보통 어려운 전투에 묶여서 함께 제시되기 때문에, 미션 보상만 보고 전투를 고르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다만 일단 미션을 받아두면, 미션을 받은 해당 전투에서 성공시키지 못하더라도 다음 전투에서 이어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다음 전투에서도 미션을 고르게 되고, 미션은 쌓인다.) 이럴거면 왜 묶어둔거지 싶어 어정쩡해 보이기는 한다.

 

솔직히, 골라야 하는 선택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

 

 선택지가 전투밖에 없다. 그 밖의 이벤트, 덱이나 캐릭터 성능을 변화시키는 다른 이벤트는 없다. 대신 상점이 상시 접근 가능한데, 심지어 전투 중 카드나 아이템을 구매하면, 즉시 이용 가능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스킬 보드 역시 마찬가지. 스킬 보드는 전투 후 보상 차원에서 지급되는 포인트를 투자하여 찍을 수 있는 패시브 스킬 25종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 보드다. 매 게임마다 보드의 구성과 배치가 달라진다. 해금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포인트 역시 스킬마다 다르다.

 

 네오버스의 카드 분류는 1차로 유형, 2차로 희귀도의 2단계다. 희귀할수록 강하다. 유형의 경우, 설명하자면 공격, 방어, 즉시, 지속의 4종류로 나뉜다. 공격과 방어는 각각 공격과 방어 옵션을 가지는 카드를 일컫는다. 즉시의 경우 그 외의 즉발성 효과를 지닌 카드들을 말하며, 지속의 경우 여러 턴에 걸쳐 효과를 내는 카드들이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 비교하자면, 방어와 즉시 유형의 경우 sts에선 '스킬'카드의 범주에 들어가는 셈. 지속 카드는 대체로 파워 카드에 대응되긴 하지만, '소멸' 이 따로 적혀있지 않을경우,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꽤 직관적

 

 네오버스의 핸드는 항상 5장 고정으로, 이보다 부족해지면 덱에서 자동으로 카드를 뽑아 보충한다. 6장 이상이 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카드에 1드로우가 붙어 있는 셈. 뽑을 카드가 부족해지면, 턴 시작에 한하여, 그리고 [셔플]키워드가 붙은 카드를 사용한 경우에 한하여 버린 카드 더미를 뽑을 카드 더미로 옮겨 뽑는다.

 

 보스를 잡거나 하면 트로피를 얻는다. 트로피는 게임 종료 후에 남는 자원으로, 이것을 이용해 장비를 해금할 수 있다. 장비는 게임 도중 탈착하거나 새로 드롭되지는 않는, 캐릭터 업그레이드에 가까운 요소. 3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효과를 보면 전투 중 마나+1이라던가, 시작 스킬 포인트+5라던가, 꽤 유용한 옵션들이다. 여튼 그렇기에 이 부분만 보면 상당히 로그라이트다.

 

다회차 보너스. 이 게임을 로그라이트로 만드는 커다란 요소.

 

 이거, 별로 재미없진 않다. 그런데 엄청 재미있는 것도 아님. 덱 빌딩 게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라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점은 퍽 명확하다. 거기에 로그라이크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이룰 수 있는 결과의 예는 이미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 제시되어 있다. 우연히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 그리고 그 전략을 세운다는 것이 카드 형태의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게임플레이로 이루어진 것. 그리고 이 과정에 대한 플레이어의 인식이 명확할 것.

 

 각 캐릭터마다의 카드군에서 크게는 두어가지 정도의 아키타입이 성립한다. 드로우라는 요소 자체가 배제-간소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덱의 구성에 있어 선택지 자체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온갖 스킬들, 지속 카드들, ... 그리고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무한 루프. 그래도 일단 덱의 구성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꽤 괜찮다.

 

0코스트, 마나, 셔플 카드. 이 세장으로 무한 루프가 성립한다.

 

 다만 전투 중에 덱이 작동하는 과정, 상당히 알아보기 힘들다. 몇 번의 플레이에서 공통적으로 받는 인상은, 상당히 게임이 정신없다는 것. 일단 UI에서부터, 모디파이어 아이콘을 알아보기 힘들다. 모종의 심볼을 그려놨는데, 단색으로, 추상적으로 그려둔 탓에 정말 알아보기 어렵다. 보기는 깔끔한데, 의미는 알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하나의 모디파이어에 대해 관여하는 다른 요소들이 지나치게 많다.

 

 예를 들면 포스, 쌓인 수치만큼 공격 피해량을 늘려주는 모디파이어인데, 방어 카드를 4장 사용하면 오르는 스킬이 있고, 공격 카드를 3장 사용하면 오르는 스킬이 있고, 방해 카드(저주)를 사용하면 오르고, 적을 처치하면 오르고, 2턴마다 1씩 오르고, 진짜 더럽게 많다. 모디파이어 없이 추가 피해를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기능이 비슷한 것들은 언급도 안했다. 포스만 이런것도 아니고 다른 모디파이어들도 비슷하게 너저분하다.

 

기본 데미지가 1인 카드. 왜 이렇게 증강된건지 전혀 모르겠다.

 

 나중엔 캐릭터가 왜 세지는지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덜 지저분한 덱 빌드도 있긴 하지만, 게임의 기본 구조상의 문제로, 이 난잡스러움은 필연적이다. 각 덱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이런 마구잡이식 모디파이어는 다르지 않으니, 경험 측면에서도 다양성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심지어 다른 캐릭터, 다른 덱을 하더라도 마찬가지. 

 

 더군다나, 수동적인 드로우 없이 항상 손패가 5장이 될 때까지 카드를 자동으로 뽑기에, 코스트가 낮은 카드일수록 유연하고 쓰기 편한데, 아예 0코스트인 카드의 수 자체가 적지 않기 때문에(상황적으로 0코스트가 되는 것 포함), 게임이 시간적으로 상당히 늘어진다. 낮은 코스트 카드를 관성적으로 슉슉 던지다보면, 딱히 고민이 필요한 순간도 없는데다,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 설명을 깜빡한 것 같은데, 기본 마나는 5다.

 

보여주는 정보가 꽤 디테일한 것은 마음에 든다.

 

 총평, 네오버스는 덱빌딩 로그라이크에 기대할만한 여러 재미있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UX, 정보 표시나 카드 내기 등, 신경 쓴 것이 많고 유저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시각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요소가 몇몇 있고(적 유닛이 전혀 기억에 안 남는다던가), 모디파이어 그래픽이 굉장히 헷갈리는데, 이 근본적인 원인은 단지 게임의 아트 에셋이 아니라 디자인에서 찾아야 한다. 

 

 매 판마다의 다양성을 이끌어내줘야 하는 역할이 있는 스킬 보드, 스킬 보드만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며, 엄청 매력적인 디자인도 아닌 것 같다. 런 중에 등장하는 스킬은 25종인데, 캐릭터마다의 스킬 풀은 총 60개다. 반수에 가까운 스킬이 게임 시작부터 보이는 셈인데, 솔직히 알아보기도 귀찮고, 리셋의 여지가 대놓고 열려있는 것도 그렇고.

 

 애초 카드의 입수 기회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네오버스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아류라는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애초 벗어날 생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리고 거기에서 진일보한 구석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게임 중 특별히 불쾌한 순간도 없었으니, 게임의 완성도는 좋은 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