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4. 12. 13. 09:17

 

 FFT라이크의 게임. 그리웠다 #SRPG의 시즌5쯤 되는 게임. 깨달았다. 사실 그리운 것은 SRPG가 아니라 마츠노 야스미의 SRPG였고, 그리운 것은 나의 유년시대였다. 고전의 답습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요소다. 고전 명작을 잘 베껴오는 것만으로도 종종 어떠한 칭송을 듣고는 한다. 다만 그건 제대로 베껴놓았을 때의 얘기지, Fell Seal은 습작에 가깝다. 관용적 표현을 빌려와 말하자면, Fell Seal은 고전에 보내는 러브 레터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를 내가 돈 주고 사와서 읽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건 변태나 하는 일이다.

 

 질려서 엔딩은 보지 않았다. 13시간 플레이면 평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플레이한 그 13시간에 대해서는. SRPG의 S는 Strategy의 S가 아니다. 개발사가 붙이기 나름이지만, 대개는 Simluation의 S다. 다만 이 명칭의 발원은 일본에 있으며,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서양권에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뮬레이션 RPG라는 것은 결국 한 화면 안에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여 전투한다는 뜻이며, 스토리상 그럴 필요가 있는 게임이 SRPG로 개발되고는 한다. 옛날 일이다.

 

 솔직히 옛날 장르다. 또한 Fell Seal은 그 옛날 게임들에 비해 나은 요소가 몇 없다. 굳이 꼽자면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되었기에 멀티 플랫폼 이식이 쉽다는 것, 그리고 게임 용량이 커서 그래픽 에셋의 해상도가 높다는 것 정도. 더 나쁜 요소는 두어가지를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굳이 언급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소규모 인디 팀에서 개발했기에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용의는 있다만, 그런 태도를 가진다고 해서 게임이 더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Fell Seal은 고전 SRPG의 몇 가지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는 것에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행동으로 경험치 얻기... 행위자와 행위 대상의 레벨 차이가 획득하는 경험치에 반영된다는 점 역시. 몇 세대 전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필연적인 경험치 노가다에 직결되어 있다.

 

 이 게임은 전략적이지 않다. 매 턴마다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항상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닛의 이동-배치에는 큰 의미가 없다. 어떻게 이동시키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언코 그런 걸 고민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유닛의 이동은 대체로 자유롭고, 적 유닛의 이동은 훨씬 더 자유롭다. 이 게임은 소위 "고저차"가 있는 지형이 구현되어 있는데, 이 게임의 고저차는 대개 유닛의 이동에 있어서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아래를 못 쏜다.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1. 각 유닛은 고저차 극복 한계를 수치로 가지고, 이는 쉽게 이해해서 "점프력"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데, 이 점프력은 악세서리 하나 끼는 것으로 최소 2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건물 옥상이든 절벽이든 대개 점프 한 번으로 극복이 가능하며, 유닛을 고지에 배치하는 것으로 전술적인 이득을 얻기란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2. 원거리 유닛의 공격 방식은 단순히 공격 한계 고저차 안에 대상 타일이 존재하는가를 판단하여 공격의 성패 여부를 따질 뿐이며, 지형의 형태가 명중률, 사거리, 공격력 등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사선상에 뭐가 있든 없든 공격은 막히지 않는다.

 

3. 그러한 까닭에 전투의 양상은 단순히 빠르게 뛰어가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으로 수렴한다. 

 

 게임의 각 캐릭터는 십여가지의 클래스로 전직이 가능하다. 각 클래스로 전직한 상태로 전투에 참여하여 AP를 벌 수 있는데, 이 AP를 가져다 각 클래스마다의 스킬을 해금한다. 그렇게 현재 클래스의 액티브, 패시브 스킬들과, 부가적으로 사용할 특정 클래스의 액티브 스킬 세트, 자유롭게 가져온 패시브 스킬 2개를 조합해 원하는 형태로 캐릭터 빌드가 가능하다. 캐릭터를 개성있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은 아니다. 모든 캐릭터를 똑같은 빌드로 "자유롭게" 육성할 수 있다면, 그 사실 어디에서 개성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포션도 쓰고 돌도 던지고 난리도 아니다. 160피짜리 유닛 하나를 잡으려면 힐 포함 300딜 이상은 넣어야 하는 느낌

 

 이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적 캐릭터들, 인간 캐릭터들 역시 퍽이나 개성적이다. 전사/마법사 캐릭터들이 붙어서는 근접공격, 멀리서는 마법, 어떤놈은 디버프, 어떤놈은 힐. 빌드가 다양한들 전투 양상은 똑같다. 파이어로 맞으나 아이스로 맞으나 다를 건 없다. 개나소나 힐에 포션에, 심지어 적이 부활 아이템까지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니, 게임이 질질 끌리기까지 한다.

 

 게임의 스토리? 글쎄요...흥미가 생길락 말락 한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플레이타임이 벌써 13시간이 찍혔다. 늦다.

 

엔딩이 궁금하긴 하다만

 

4. 유닛이 전투에서 누우면 "부상 상태"가 스택되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다음 전투에 투입하면 스탯이 낮아진다. 부상 상태를 빼주기 위해선 쌓인 스택 수만큼 전투에 불참시켜야 하는데, 자연스레 예비 인원을 조금씩 키우게 된다. 이건 OK. 여러 캐릭터 키우면 좋지. 근데 이러면 캐릭터가 굉장히 빠르게 도태된다. 전투 두어번 빠지면 스펙이 밀린다. "부상 상태"가 적립되지 않은 캐릭터를 굳이 쉬게 냅둬야 할 필요는 없기에, 필연 도태된 캐릭터들의 레벨 노가다가 요구되는데,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나 싶어 괴롭다.

 

 소위 택틱스류 게임들.. Fae Tactics는 독특한 시스템이나 전투방식 등에서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는데(타일 그리드베이스 턴제 전투를 한다는 것 외엔 FFT랑 딱히 비슷한 요소도 없다.), Feal Seal같은 게임만 계속 나올 예정이라면 관심을 끊어도 될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