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2. 17. 23:24

최초작성: 2019. 2. 18

  잠깐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틀정도 리마스터를 쉬었다. 그 사이 꾹모군이 리뷰를 몇편 올려주었다.

 

제대로 된 이야기는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하는 법이지. 이건 결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거든.

 베스쳔은 2011년 출시된 슈퍼자이언트의 이소메트릭 뷰 액션 rpg입니다. 좋은 아트, ost, 나레이션으로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고, 굉장히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슈퍼자이언트라는 개발사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11년 PC 버전 이후 ios, ps4쪽으로 기기 저변을 넓혔습니다. IOS 버전의 경우 조작이 복잡하지 않아 기기 환경에 적절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참작되어 다른 이식판들보다 평가가 더 후하기도 합니다. 조작이 간단한 것은 단점이기도 한데, 아래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IOS판은 메타94까지 올라갔다. 도타보다 높다.

 

 저는 이걸 13년도에 샀습니다. 그때 85%할인을 해서 2천원 3천원돈에 샀는데, 완전 거저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로 격년에 한 번씩 엔딩을 봤습니다. 정말 괜찮은 게임입니다. 11년도 인디게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 이 게임은 아트나 나레이션같은 외형적인 특징, 장점들을 빼면, 디자인적으로는 사실 독보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쉐이더가 빡세게 들어갔다.

 

 일단 베스쳔은 동명의 대피소를 수리하는 게임입니다. 주인공들이 사는 세계에 돌연한 대재앙이 덮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핑거스냅이라도 맞은 것처럼 먼지가 되어 버리는데,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각자 나름의 사연을 품고 사람들은 베스쳔이라는 이름의 대피소에 모입니다.

 

 대피소를 완전하게 만들고, 다른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우리 주인공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코어를 회수합니다.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재앙의 진실..! 멀어지는 서로와 깊어지는 갈등! 그리고 대단원은 막은?! 하는 내용입니다.

 게임의 세계관은 무난하게 재미있습니다.. 좋은 판타지 동화 같습니다. 슈퍼자이언트 게임의 공통점인데, 배경 설정이 좋습니다. 가장 최신작인 하데스는 아직 모르겠지만.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합리한 구석 없이 잘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컷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여차할 때는 나온다.

 

 게임은 굉장히 모범적인 액션 RPG입니다. 이소메트릭 시점을 사용하며,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구르기 닷지가 있고... 일반적인 조작입니다. 제노니아, 건틀릿, 크롤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됩니다.

 총 11개 종류의 무기가 있으며, 한 번에 2개씩 마음대로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기마다 2갈래의 5가지 특성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진행하고 있으면 차례대로 언락되는데, 무기 밸런스는 적절히 잘 잡혀 있는 수준입니다. 우상 전부 켜고 고난이도 플레이 시 잘 쓰기 어려운 무기도 있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밖에 플레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장치로는 술과 우상 정도가 있습니다. 술은 레벨에 따라 한 종류씩, 최대 10가지 종류의 술을 양조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하는 술의 종류에 따라 디메리트와 메리트가 붙습니다. 스타일에 맞춰 레벨마다 찍는 퍽이라고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우상은 디메리트만 붙는데, 대신 추가적인 정험치와 재화로 보상합니다. 매운맛을 조금 더해줍니다.

 

코어를 모아 건물을 올린다

 

 여타 액션 RPG랑 비교해 봤을 때 차별화되는 점 중 하나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겁니다. 우선 캐릭터간 대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스토리 진행은 나레이션이 때우거나 맵 기믹상 이벤트로 처리됩니다. 캐릭터 일러스트 뜨고 대화 텍스트 뜨고 하는 그런 부분이 아예 없습니다. 

 

 난이도 자체가 그렇게 높지 않고, 가만히 이동키만 누르고 있는 파트도 없습니다. 맵이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하고, 적과의 전투가 아예 강제되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잡아도 되고 잡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덕분에 때문에 게임의 맵이 복도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유스러운 감상을 받을 구석이 적습니다. 일단 투명 벽 같은건 없으니까요. 대부분 낭떠러지이긴 하지만.

 또한 맵의 대부분의 오브젝트를 부술 수 있습니다. 부수면 재화가 나오는데,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거 싹싹 긁어모으지 않아도 재화가 크게 부족하지도 않으므로 플레이어의 장난감으로 남아있어주는 셈입니다. 이런 부차적인 요소는 게임을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장난감으로서 게임의 역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요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게 다 부숴진다.

 

 또한 베스쳔에는 숨겨진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얼마전에 리뷰했던 페즈는 숨겨둔 것들이 지랄맞게 많았던 것과 비교해서, 아주 텅텅 비었습니다. 이건 단점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페즈는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퍼즐을 풀고 페즈의 세계를 여행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런 숨겨진 요소들이 게임의 완성도에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 베스쳔은 액션 RPG입니다. 정해진 스토리 루트를 따라서 신바람나는 액션을 하는 게 주력인데, 그런 숨겨진 것들이 없어 곁다리를 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은 고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맵 살짝 구석에 업그레이드 부품이 숨겨져있고 그런 게 있긴 한데, 이정도는 지나가면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다, 숨겨진 것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죠.

 일본 옜날 jrpg 같은 것들을 보면, 일반적으로는 알아내기 힘든 커맨드를 입력해야 한다던가, 찾기 굉장히 힘든 요소가 있다던가 하는 게 좀 있었는데, 저는 이런 것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이퍼 라이트 드리프터는 그나마 숨기는 것에 일관성이 있어서 했는데, 두 번 할 게임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좀 나중에 복기할 것 같습니다.

좀 극단적인 것들을 찾아보자면, AVGN의 악마성 에피소드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베스쳔에는 퍼즐이 없습니다. 무기 연습장 같은 곳들이 있긴 하지만, 스토리 진행에 필수적 퍼즐은 없습니다. 버튼 때려서 같은 색으로 맞춘다던가, 틱택토 만든다던가,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오로지 전투 전투 전투인데, 마음에 듭니다. 깔끔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투가 재미없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없는 사람이나 문어발을 치는 거겠죠. 펀드가 뭡니까. 주식은 올인입니다.

 그래픽은 대단히 인상적인 수준입니다. 그때가 벌써 8년 전에다가 베히모스에서 캐슬크러셔도 나오기 전인데, 레이어 효과에 조명 효과에 기타등등 굉장히 화려합니다. 캐릭터들은 3D고, 이 외에는 전부 직접 그린 디지털 이미지들을 섞어서 타일 배치하고 맵으로 만들고 하는 식인데, 같은 소스 여러개 사용하고 색조만 바꿔서 단조롭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정도 그릴 수 있으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OST도 좋습니다. 예전부터 자주 듣는데, 기타 파트나 보컬 파트를 가장 좋아합니다. 좀 예전에는 노동요랍시고 몇시간씩 반복 재생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가끔가다 한 번 듣는 정도.

 게임의 나레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인역의 로건 커닝햄이 게임 내내 주인공의 행동마다 나레이션을 치는데, 이것 또한 베스쳔을 설명할 때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세계관 설명이나 잡시런 정보들을 억지 편지같은 텍스트로 만들어두지 않고, 나레이션으로 퉁쳤습니다. 속도가 빠른 게임의 맥을 끊지 않고 효과적으로 세계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Two? Forget about two

 

 아무튼 좋은 게임입니다. 당시 베스쳔을 개발했던 슈퍼자이언트는 이 게임의 성공 이후 지금까지도 그들만의 색이 베어나오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던 클래식입니다. (최근 출시한 게임으로는 Hades가 있다.-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