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2. 18. 06:29

최초작성:2019. 6. 10

넌 거기 있는데, 난 여기 있어.

 

 슈퍼자이언트 게임의 스토리들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해보기로는 트랜지스터와 그 전작인 베스쳔 뿐이지만. PYRE 스토리도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한글패치가 없어서 문제지. 파이어는 멀티엔딩이라는데 정말 기대됩니다. 사놓은지 1년이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기대라는 어휘를 쓰는 것도 새삼 어색합니다. 옆에 영어사전이라도 띄워놓고 트라이해봐야 하나 싶습니다.

 사실 트랜지스터도 발매하자마자 바로 사서 바로 달리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이 발매한지 1년쯤 지난 뒤 사서 2년 뒤에 엔딩을 봤지요. 이 때의 문제는 언어 압박이라기보다는 컴퓨터의 성능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 컴퓨터로는 트랜지스터 풀옵이 버벅거렸습니다. 컴퓨터가 트랜지스터를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진화한 다음에야 켜볼 수 있었습니다.

 맨 처음 엔딩을 봤을 당시는 이제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기대보다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후술할 게임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게임의 전투 방식은 턴제 전투와 실시간 전투를 섞어놓은 형태입니다. ATB같은 것이랑은 또 살짝 다르고, 발더스 게이트나 필라스같은 CRPG 전투 시스템의 변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 비슷합니다. 클라우드뱅크에서는 클라우드뱅크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실시간+턴제가 섞인 시스템에서 내 고집이라고 턴을 안쓰면 저만 고달파집니다. 그래서 당시엔 게임이 고달팠습니다.

 그리고 스토리가 살짝 난해했습니다. 게임에서 다루고 있는 스토리를 시간 순서대로 전달해주지 않고 일부분을 컷씬으로 떼어내 순서를 섞어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이나 영화에서도, 게임에서도, 프롤로그 뒤로 도치시키고 바로 진행하는 사례가 적지는 않지만, 스토리의 발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게임을 진행하는 시간이 살짝 길었습니다. 트랜지스터의 스토리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은 으레 이 부분을 언급합니다. 2회차 3회차쯤 하면 세계관이나 자잘한 설정들은 다 알 수 있게 되지만 1회차에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일겁니다.

 

노 렸 다!

 

 조금 늦었지만, 트랜지스터는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두 번째 게임입니다. 전작인 베스쳔은 대성공했고, 트랜지스터는 이제 슈퍼자이언트 게임즈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느냐에 대한 분수령인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성공했습니다. 파이어도 나오고 최근엔 하데스도 나왔죠. 베스쳔이 잘 만든 액션 알피지였다면 트랜지스터는 액션에 턴제가 살짝 섞인 형태입니다. 그리고 스토리 비중이 더 셉니다. 사건 순서도 살짝 섞어서 보여주고 텍스트도 더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트랜지스터는 세 가지 구성 요소로 나눠서 보겠습니다. 첫째는 스토리, 둘째는 전투, 셋째는 아트입니다. 제가 작곡에 대해 귀동냥으로라도 아는 게 있었다면 사운드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았겠지만, 전혀 아는 게 없는 막귀이므로 그냥 좋다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나 어디 가게에서 틀어주는 그 당시 아이돌 노래보다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트랜지스터는 한 연인을 비추면서 진행합니다. 주동 인물 반동 인물은 뚜렷하지만 그보다는 이 연인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는 스토리입니다. 몸을 잃고 트랜지스터에 갇힌 남자와 목소리를 잃은 여가수가 그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에 닥친 일련의 사건들을 헤쳐나간다는 흐름입니다.

 

모두가 항상 이 도시에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하지.

 

 트랜지스터의 평가가 깎여야 한다면, 십중팔구 그 이유는 스토리에서 나올 겁니다. 위에서도 적어뒀듯이 초회차에 이해하기 힘든 것도 그렇고, 초회차 엔딩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완결성은 있지만 그래도 게임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좋지 않습니까? 소설도 아니고. 캐릭터에게 이입할 수 있다는 것이 쌍-방향 매체인 비디오 게임의 장점 중 하나일텐데, 해피엔딩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보통? FF15의 엔딩이 무슨 소리를 듣는지도 빤히들 보고있고.

 

 제가 초회차 엔딩이라고 써 놨습니까? 2회차 엔딩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으신 건 아닙니까? 저도 초회차를 깼을 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고요.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런데 또 괜히 2회차 초반부 연출을 1회차랑 이어지는 듯하게 만들어놓는 바람에, 기대를 하게 됩니다. 엔딩은 이만하면 충분히 깐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운이 남는 괜찮은 마무리이긴 합니다.

 트랜지스터의 스토리는 분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토리는 위의 엔딩과 맞물려 다회차 플레이요소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직선형 스토리냐 멀티엔딩이냐를 두고 더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쨌든 결론을 내자면, 부분적으로 깔만한 요소는 있을지언정 완결성이나 디테일같은 것들을 보면 괜찮은 서사입니다. 특히 또 매력적인 것은 세계관입니다. 일종의 가상 현실로 이주한 사람들의 도시를 그리고 있습니다.투표로 하늘의 색을 바꾸거나 도시의 모습을 바꾸거나 한다는 것 같습니다. 생존 그 자체보다는 자아실현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디테일은 코덱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트랜지스터의 전투 시스템은 꽤 특이한 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탑뷰 액션입니다. 조금 느립니다. 전작인 베스쳔보다 속도감이 덜합니다. 액션의 선딜레이, 후딜레이가 길기 때문입니다. 공격 모션 돌아가는 동안 여기맞고 저기맞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턴Turn();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턴 상태가 될경우 적의 움직임은 멈추고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행동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턴은 일정 준비 포인트를 제공하고, 턴에 설계하는 모든 행동은 이 포인트를 소비합니다. 설계를 끝내면 적은 여전히 느려진 상태고 주인공은 턴에 설계했던 행동들을 실행합니다. 선딜레이, 후딜레이가 거의 없으므로 대부분 적중합니다. 턴에 소비했던 준비 포인트에 비례하여 턴의 쿨다운이 돌아갑니다. 쿨다운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대부분의 스킬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상황을 봐가며 일반 액션을 할지, 턴을 사용할지 결정하는것이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액션의 재미, 턴을 사용했을 때의 퍼즐적인 재미가 맞물려 돌아갑니다.

오늘은 내가 코드몽키

 

 캐릭터 스킬은 플레이어가 직접 세팅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16개 칸이 열리고, 사용할 수 있는 메모리도 조금씩 늘어납니다. 레벨이 올라가다보면 스킬도 천천히 늘어납니다. 이것들은 함수()라고 부릅니다. 함수는 액티브 칸에 배치했을 때의 효과, 업그레이드 칸의 효과, 패시브 칸의 효과가 따로 있어서 퍽 다양한 세팅을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한 함수를 각 슬롯 위치에 세팅하고 사용할 때마다, 코덱스의 텍스트가 열립니다. 이런 시스템으로 슈퍼자이언트는 플레이어가 인물별 세부 스토리를 알아내게끔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턴 시스템 덕분에 트랜지스터의 전투 시스템은 본격 액션 RPG보다는 느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다 때려부수면 그만이었던 베스쳔이랑은 달리 턴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전투가 수월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근데 굳이 또 말하자면 턴이랑 액션이 조금 따로 노는 느낌이 있습니다. 턴을 한 번 써 버리면 쿨다운이 다 돌아갈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빤쓰런 밖에 없기 때문에, 전투 흐름이 끊기고 지루하다는 소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스킬 커스텀은 꽤 재미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전투는 고정 인카운터입니다. 게임 자체가 선형적으로 진행된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사실입니다. 전투를 스킵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전투가 끝날 때 마다 '끝났다!' 하고 알려주는 연출도 있기 때문에 전투가 스토리 일부로 끌어들여져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게임 자체도 스토리 비중이 큰 비주얼노벨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가...... 스파인의... 안...?

 

 트랜지스터를 비롯해 슈퍼자이언트 게임들의 아트는 게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요소들입니다. 베스쳔때부터 훌륭했습니다. 트랜지스터의 아트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굉장히 다채로운 쉐이더 효과들과 컬러 스타일입니다. 게임의 모든 맵에서 다양한 이펙트가 효과가 화려하게 비춰집니다. 일개 조명을 비롯해 렌즈 플레어, 오버레이에 기타 안개 효과 등등, 하나하나 언급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다양한 효과가 맞물려 돌아가는 동시에, 컬러 자체도 총천연색에 가까우나 어색함이 없습니다. 슈퍼자이언트 아티스트들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게임의 배경은 도시이며, 시간적 배경은 저녁에 가깝습니다. 굉장히 호화롭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퇴폐적인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뒷골목 쓰레기나 잡동사니같은 것들이 거의 안보이는 2070년대의 가상현실 도시입니다.현대 도시를 비롯해 전근대 여러가지 양식의 구조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나 스토리에 흥미가 없어도 아트에 흥미가 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트랜지스터 적격 플레이어입니다.

 

 밤인데 저런 색감이라니, 솔직히 돈 주고 아래 들어가서 좀 배우고 싶을 지경입니다. 요즘 좀 헷갈리거든요. 밤의 색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요. 옷이 금흰이냐 검파냐 하는 문제랑 좀 비슷합니다. 분명 다 파랑 계열인데 사람마다 인식하는 색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사람 뇌 자체가 이쪽 색을 헷갈려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UI나 저런 스파인 내부 디자인같은 경우 클림트가 떠오르는듯한 스타일입니다. 아마 조금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디지털로 저렇게 그리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꽤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멘트가 생각이 잘 안 납니다. 아무튼 좋은 게임입니다. 스팀에서 94% 긍정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베스쳔이 낫냐 이게 낫냐 하면 솔직히 베스쳔이 조금 더 나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슈퍼자이언트는 아직 제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저도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야겠습니다.

 

LB를 눌러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