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jogaq 2020. 2. 19. 07:36

최초작성: 2020. 1. 14. 7:21

 

정부는 이러한 악순환의 근원이

갈수록 하락해가는 출산률로 인해

청년자원 대부분을 강제적으로

징병하는 시스템으로 인한

국방 인적자원의 질적 하락하를 비롯한

병영자원의 낭비라고 판단,

국가 안보 실장 계획을 발표한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 foxhole 이라는 타이틀은 불과 일주일, 이주일 전까지 돌리던 타이틀이다. 와! 10월, 11월, 12월.. 근 3개월간 쌓여있던 게임들을 다 털어내고야 말았다. 하나 더 남긴 했지만, 그것도 곧 써야지. 대신 일이 조금 쌓여버렸다. 나는 참 게으른 인간이다. 가끔은 고양이가 되고싶다.

 폭스홀은 캐나다 토론토 연고의 개발사 clapfoot이 2017년 얼리엑세스로 출시한 MMO 슈팅 게임이다. 탑다운 시점의 전장에서 플레이어들은 일개 병사가 되어 노동을 수행한다. 이 노동에는 물론 서로 총을 쏘는 것을 포함해, 탱크와 트럭을 몰고, 참호를 파고, 벙커를 짓는 건설업무, 게다가 후방에서 자원을 채취해 가공하는 일까지 전부 포함한다. 어떻게 보면 게으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전선에서 소모되는 붕대, 총알 하나하나가 모두 플레이어들이 직접 생산해 보급한 물건들이고 게임 시스템이 자동으로 뽑아주는건 하나도 없기에 그렇다.

 슈팅은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낮고, 탄착군을 좁히려면 짧지 않은 시간동안 조준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의도대로, 플레이어간 사격전은 굉장히 지지부진하다. 박격포나 탱크 주포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와의 실시간 협력이 필요하다. 지형지물에 가려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면 피아 가리지 않고 화면에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같은 분대원이더라도 얄짤없이 안보인다. 분대장 위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나침판에 하나 있을 뿐이다.

 자원의 채취 과정 또한 정적으로, 플레이어는 슬렛지 해머를 들고 마인크래프트 광석 캐듯이 꾹 눌러야 한다. 정제와 제조 과정 또한 다르지 않은데, 제조에 필요한 자원을 넣어 놓고 일정 시간 기다리면 끝이다. 이건 모바일 게임 같다. 보석좀 박아서 즉시 끝내야 하는 그 감각이다. 일련의 행동들엔 퍼즐적 요소 따위가 전혀 없어 지루하다.

 

이리저리 짐을 싣고 이동하는 트럭이 많다.

 

 이런 식의 전장을 배경으로 하는 RVR 게임은 이전에도 꽤 있었다. 플래닛 사이드 2, 배틀필드 시리즈, 최근 나온 스쿼드 등. 이런 게임들은 대개 개인의 활약보다는 분대 단위의 플레이가 주가 된다. 특징을 꼽자면 단일 플레이어의 기대 활약이 숙련도 차이에 크게 좌우되지 않게끔 디자인되어 있는 것이 첫번째고, 분대 단위로 뭉쳐야만 전장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두 번째다. 폭스홀의 경우 첫번째와 두 번째 특징이 동시에 적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폭스홀은 다른 아군과의 상호작용, 협력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대단히 무미건조한 게임이다. 일개 보병으로서 총 몇발 쏘다 죽거나, 탱크 한 번 몰아보기 위해 몇십분씩 투자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설령 분대의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거나 하는 등의 단체 활동을 한다 해도, 개인이 하는 플레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적을 쏴 죽이는 것 보다 전략의 일부분이 되어 총 맞고 죽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dkn이 한 말이다.), 딱 그 짝이다. 폭스홀에서 개인의 미력함은 여타 스쿼드, 플래닛사이드 같은 게임들에서보다 두드러지는데, 이걸 납득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게임을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폭스홀은 어떻게 보면 슈팅 게임보다는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다. 유로 트럭이나 파밍 시뮬레이터 같은 게임들이 연상된다. 개인 단위의 전술엔 달리 파고 들어갈 만한 것이 없고,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다른 노동으로 특정 목표를 달성해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폭스홀은 굉장히 뛰어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기존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싱글 플레이 또는 부분적인 멀티플레이만 가능한 데 반해, 폭스홀은 무려 500명 이상이 한 서버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유저풀이 몇년이나 유지될 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폭스홀은 다른 게임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매우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모여서 전진 기지를 설치하는 분대

 

 내 경험에 비추어, 폭스홀 이야기를 하면서 running with rifles (이하 총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블로그에 따로 리뷰도 써 두었는데, 총뛰는 폭스홀과 유사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게임이다. 똑같은 탑뷰 슈팅에다, 차도 몰 수 있고, 독립적 행동보다는 분대 플레이를 지향한다. 차이점은 디테일인데, 총뛰는 플레이어가 직접 탱크를 만들어 오도록 시키지도 않고, 탄창은 무한에다가, 총이나 방탄복 등의 자원도 무한이다. 자꾸 무한무한 하니까 총뛰는 굉장히 널널한 게임이구나 느낄 수도 있을 법 하지만 보통 게임은 이렇고 폭스홀이 특이한 편이다.

 총뛰는 도전적이지 못한 게임이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캠페인을 지원했고, 봇이 분대원이 되어 주었으며, 이 캠페인에 맞춰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가 가능했다. 유저 공병이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전선이 가변적인 폭스홀과 달리, 총뛰는 고정적이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캠페인 맵을 제공했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스팀 서버가 따로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뛰 역시 멀티플레이 인원을 어느정도 기대했었던 것 같지만, 몇 년간 지속적으로 플레이어를 잡아두진 못했다. 총뛰 멀티를 돌리다 폭스홀로 건너온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단지 넓고 현실적인 전장을 바랬던 것일까?

 

다리 건너 제압 사격하는 중

 

 현실성이 담보하는 것은 재미일까? 우리는 게임에 들어간 온갖 현실적인 요소들이 게임의 특징이나 장점으로서 소개되고, 광고 문구에 쓰이는 것을 지금까지 오래도록 봐왔다. 현실적인 요소라는 것에는 묘한 로망이 있다. 현실적인 슈팅, 현실적인 생존 게임... 하지만 나는 또 봐왔다. 현실성이 큰 특징이나 시스템으로 삽입된 일련의 생존 게임들은 발매 전의 화제성에 비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사례를 자주 보기 힘들다. 게임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게임의 현실성이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도약이고, 현실성은 복잡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복잡함을 디자인에 잘 어울리게 섞어넣을 수 있으면 그건 재미있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유사한 총뛰와 폭스홀을 비교했을 때, 총뛰보다 폭스홀에 사람이 많은 것은 단순히 총뛰가 더 캐주얼하고 폭스홀이 더 세분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폭스홀이 밀도있는 시스템을 시뮬레이션 식의 멀티플레이와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총뛰와 폭스홀은 방향성이 꽤 다른 게임이긴 하지만, 총뛰 역시 다대다 멀티플레이를 지원했고 (초기엔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았다.) 폭스홀도 초창기엔 한 서버당 60명 제한인 게임 모드만 지원했다. 이러나 저러나 개발자들이 상상한 플레이는 꽤 비슷할테니만큼. 아주 무의미한 비교는 아닐 것이다.

 

현시각의 월드 컨퀘스트 상황

 

초창기 멀티플레이 맵 화면

 

 폭스홀은 이런 복잡한 멀티플레이를 원하는 게이머들의 수요에 잘 들어맞은 게임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다. 이런 디자인은 상당히 도박에 가깝지 않았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코난 엑자일, 트리 오브 라이프, 아틀라스같은 할 일들이 분업화되어있고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은 사람이 빠지면 재미없어지는 것도 굉장히 빠르다.

 

 지금 폭스홀의 메인 게임모드인 월드 컨퀘스트 또한 위 게임들과 비슷한데, 다만 차이점은 이 폭스홀이라는 게임이 처음부터 월드 컨퀘스트만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은 또 아니라는 것이다. 폭스홀의 개발자들은 활발히 라이브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으며, 전체 플레이어의 인원수가 월드 컨퀘스트를 진행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서면 60/60같은 이전의 게임 모드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유저 이탈을 늦출 것임이 분명하다. 혹은 다른 게임 모드를 새로 도입할 수도 있다.

 인게임 음악까지 아예 없다. 다른 FPS였으면 '아 사운드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구나' 할텐데 폭스홀에 대해서는 편의성보단 현실성을 위해 미수록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특이하고 꽤 성공적이기까지 한 게임이다. 분대 플레이에 흥미가 있다면 퍽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사실 트롤하기도 쉽다

 

자대에서도 강하게 살아가렴.

핑크퐁은 놀랍게도 여우 수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