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작성: 2020. 1. 20. 6:03
최근에 했던 게임으로는 마지막이다. 아니 사실 리뷰를 쓸 만한 게임으로는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지금 리뷰를 써서 올려둔 게임들 말고도 여러가지 하기는 했다. 대난투도 돌렸고, 젤다 4검도 돌려봤고, 짧게 크롤이나 여타 파티게임들도 돌려는 봤는데, 리뷰를 쓸 만큼 내용이 안 쌓였다. 새삼 반리뷰를 쓰기도 애매하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좀보이드 리뷰만 끝나면 또 당분간 리뷰 쓸 일도 없을 것 같으니 미리 인사를 드린다. 바쁠 것 같다. 점찍는거 싫어!!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아주 오래 전, 2012년경 최초 공개되어 13년 스팀 얼리엑세스로 출시한 게임이다. the indie stone에서 개발했는데, 좀보이드 외에는 다른 출시작이 없는 일회성 인디 팀이다. 이 게임은 2020년 현재까지 얼리엑세스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게으르기로도 유명하다. 내가 알기로 좀보이드가 최장기 얼리엑세스 게임이다.
지금도 계속 자기 기록을 갱신중인 디펜딩 챔피언이니 참 대단하다지 않을 수 없다. 12년 당시엔 나와 내 주변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었다. 좀비 서바이벌 게임 자체가 흔하지 않았던 데다가 도트 그래픽이었다. -지금은 도트라고 하기 좀 애매하지만- 그래서 데수라까지 굳이 깔아서 데모 버전을 해봤었다.
당시 감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스팀에 얼리 엑세스로 출시했을 때, 멀티 플레이를 잠시 돌렸다. 기대에 부풀었던 우리는 안타깝게도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아래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래저래 미흡한 게임이었다.
게임은 그렇게 고이 접혀 라이브러리 한 구석에 치워져 있다가 가끔씩 한번 업데이트되면 꺼내보는 정도의 입지가 되었다. 이를테면 어디 아껴둔 뱀술과 비슷한 것이다. 마시기는 좀 그렇지만 버리기도 아깝다. 그러다가 이번에 또 기회가 있어 멀티플레이를 잠깐 하게 되었다.
거의 2년에 한 번씩 보는 메인 화면. 한 6년째 일러스트가 그대로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탑뷰 isometric 시점의 좀비 생존 게임이다. 우리가 보통 좀비 게임이나 생존 게임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것들을 대부분 할 수 있다. 총쏘고 좀비 때려잡고 쉘터 만들고 농사짓고, 최근엔 차도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있는 건물의 개보수도 가능하고, 발전기 놓고 냉장고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이 넓은 꽤 자유로운 게임이다.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지만, 싱글이건 멀티건 일단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지금 당장은 조용한 공간에 스폰된다. 맵을 돌아다니면서 아이템을 수집해, 어디 한 군데 정착해서 오랫동안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다. 달리 말해서, 역설적으로, 좀보이드는 플레이어에게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굶어죽을 일은 없다.
좀보이드는 플레이어에게 '100일만 버티면 구조대가 올 거에요~' 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살아남고 싶어하게끔 작은 동기를 부여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개인 기록을 어디 저장하고 보여준다던가 하는 것도 없고,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좀비가 많아진다던가 하는 것도 없다. 좀비가 천천히 리스폰되기는 하지만 개체수를 유지하려는 것이지 난이도를 올리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후반 위기같은 시스템도 없다. 다시 말해서, 게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직접 건드리지 않는 한 맵의 자원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좀보이드는 방치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이 대개 이렇다.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상황이 복잡해진다. 멀티플레이가 아닌 싱글플레이 기준에서, 좀보이드는 시뮬레이션에 가까워진다. 생존 난이도를 올리는 몇가지 시나리오 세팅이 있지만, 기본 게임모드에선 사실 살아남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다. 당장 필요한 아이템을 몇가지 구하고 나면 당장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해야 할 일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게임은 매우 빨리 지지부진해진다.
캐릭터가 죽기 전까진 지금 몇 일을 버텼는지도 안 가르쳐 준다. 할 일 없이 멍하니 있다가 결국 게임을 꺼 버리는 것이다. 날이 간다고 좀비가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니, 마인크래프트랑 비슷해진다. 이쁜 집 하나 지으면 게임이 질려버린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자기 캐릭터, 상황, 혹은 서바이벌에 몰입하느냐, 또는 스스로 목표를 어디까지 정할 수 있느냐에 따라 플레이타임이 달라진다.
이 폐지들로 뭘 해야하죠?
프로젝트 좀보이드가 구현한 현실성은 그 수요층이 꽤 얇은 수준이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어떤 생존 게임은 밥 잘못 챙겨 먹었다가 비타민 C가 부족하다고 괴혈병을 앓는 등, 골때리는 수준의 디테일을 구현한 바 있다. 좀보이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마인크래프트보다는 괴혈병 게임에 가깝다.
잠 안자고 한참 돌아다니면 졸린 것은 기본이고, 가만히 서 있으면 심심해하다가 우울증에 걸려버리기도 한다. 게임 내 캐릭터가 괴혈병에 걸려버리는 수준까지 가면 솔직히 몰입감이 되려 떨어진다. 좀보이드는 그 점에 있어서는 그래도 준수하다. 짭짤한거 많이 먹었다고 당뇨가 걸린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심심함 디버프는 살짝 불만스럽다. 책을 읽고 있거나 최근에 좀비랑 혈투를 벌인 적 없거나 하면 캐릭터는 '심심함' 디버프에 걸린다. 상태를 안 풀어주면 악화되고, 우울증에 걸린다. 출혈이나 골절같은 거야 캐릭터가 얻어맞아서 걸렸다곤 하지만, 요리하느라 좀 서있었다고 심심할랑 말랑 하고 있으면 납득이 잘 안간다. 현실에 '나는 23%만큼 심심해' 하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막상 해제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은 참피같은 디버프라 귀찮기만 해 몰입감이 떨어진다.
아이템 부분도 좀 애매하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비타민 종류마다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각 행동들마다 요구하는 아이템들이 상당히 고정적이다. 게임엔 두 가지 종류의 삽이 등장한다. 하나는 모종삽이고 하나는 그냥 삽이다. 모종삽은 밭을 만드는 데 쓰고 삽은 무덤을 파는 데 쓴다. 모종삽으로는 무덤을 못파고 삽으로는 밭을 못 만든다. 무덤이야 그렇다 쳐도 밭은 확실히 의아하다.
나무 가구를 해체하려면 망치와 드라이버 또는 톱이 필요하다. 게임에 도끼도 등장하지만 도끼로는 가구를 못 부순다. 아예 칠 수가 없다. 물론 가구를 재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미는 것도 안되고, 아주 그냥 다 안된다. 이런 선택적 현실성 때문에 체감이 생존 게임보다는 샌드박스 게임에 가깝다.
이래저래 의아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임은 또 아니다. 유저 평가가 그럭저럭 긍정적(88%)인게 그 증거다. 얼리엑세스를 7년째 달고 사는 게임치곤 꽤 놀라운 수준이다. 좀보이드라는 게임을 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뜻이다.
아주 못 할 게임은 아닌데다가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가 긍정적인게 아닌가 싶다. 지금껏 만들어진 게임의 상태를 보면 얼리엑세스를 벗어날 날이 요원하긴 하지만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인 얼리엑세스 게임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개발자들에게 박수라도 쳐 주고 싶다.
최근엔 5년만에 자동차도 추가됐다.
위에서는 할 게 없어서 빨리 질린다고 써 두었지만, 사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또 어렵다. 유다희까지 끌어오면서 게임 시작할때 알려주듯, 결국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다. 평범하게 물려죽을 수도 있고, 키 잘못눌러서 낙사할 수도 있고. 감기 걸려 죽을 수도 있지만 표백제 원샷하고 죽을 수도 있다. 같은 캐릭터로는 리스폰 할 수 없다. 좀비에 살짝 긁혀서 감염되는 경우만 빼면 불합리하게 죽는 일은 거의 없다.
개발자들도 양심은 있는지, 좀비 공격에 대한 피격 판정이 꽤 후하다. 좀비의 공격 모션이 끝나기 전에 밀쳐내면 기각 처리해주고, 공격 모션 한창 들어오는 중에 살짝 피하기만 해도 안 물린걸로 쳐 준다. 앙앙 물어대는 와중에 캐릭터 상태창을 살짝 봐도 체력 빠지는 속도는 퍽 느리다.
샌드박스의 면을 보면 꽤 충실하다. 게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오브젝트는 대부분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 수 있다. 못 만드는 아이템엔 대체품이 있다. 자기만의 쉘터를 만드는 일은 충분히 즐겁다. 도구만 이것저것 갖춰지면 차에 짐을 싣고 좀비 없는 시골 숲속 어딘가에 정착할 수도 있다. 이것저것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기본은 꽤 탄탄한 셈이다.
게임 삭제하기 전에 인쁘라는 갖춰보기로 했다.
멀티플레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싱글 플레이만 되는 오픈월드 생존 게임은 반쪽짜리가 아닌가? 좀보이드의 멀티플레이는 구현이 제법 잘 된 편이다. 직접 테스트해보지는 않았지만 세 명의 호스트를 거쳐 봤는데, 인터넷 문제가 없는 한 로딩도 빠르고 핑이 튀는 일도 없었다. RP가 중요시되는 해외 멀티플레이 서버도 있긴 할텐데, 이런 서버는 게임 시스템보다는 RP 당사자들이 만들어나가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멀티와 싱글플레이의 차이점은 몇 가지 있는데,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차원의 변화는 아니다. 우선 일시정지와 빨리감기가 막혀있다. 호스트건 클라이언트건 빨리감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는 자지 않는다.싱글 플레이에서는 캐릭터를 재우면 빨리감기가 돌아가는데, 실시간으로 캐릭터가 누워 자는 걸 구경하게 시키는 것도 못할 일이니 멀티에서는 깔끔하게 수면이 삭제됐다.
솔직히 멀티플레이는 구리다. 안그래도 밤에는 화면이 어두운데 어디 나가서 파밍할 수도 없고 멍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니 어지간한 똥믈리에가 아니면 못 할 게임이 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하는 멀티플레이에서 퍼마 데스를 강요하는 것도 웃긴 일이니 안 그래도 흐리멍텅한 게임이 더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그래픽은 도트 그래픽에 3D가 얹혀 있긴 한데, 픽셀아트만의 멋을 살리지는 못했다. 텍스쳐 하나하나의 퀄리티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비용이 저렴할테니 픽셀 그래픽을 채택한 것이 아닐까 싶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넓게 봤을 때의 비주얼 자체는 꽤 준수하기 때문에 납득이 간다. 개발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2012년 경 스크린샷을 보면 픽셀 그래픽이라는 표가 났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초기 그래픽
난 좀비라는 소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레프트 포 데드나 노몰룸인헬같은 게임은 약간 꺼려진다. 괜히 어두워서 눈이 아프고 3D라 머리도 아프다. 몸도 별로 안좋으니 알아서 사릴 필요가 있다. 가장 재미있게 했던 좀비 관련 게임은 식물 대 좀비다.
이번 좀보이드 리뷰는 유난히도 글 쓰이는 속도가 뻑뻑했는데, 내가 좀비 서바이벌이라는 장르에 대한 경험치가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게임에 워낙 언급할 것들이 많아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굳어지고 있다. 소소한 문제가 사방팔방 퍼져 있어서 글의 맥락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딱히 긴 글도 아닌데!
아무튼 이래저래 빵꾸는 많이 나 있는데, 한 번쯤 해볼 만한 게임이다. 오래 할만한 게임인지는 모르겠다. 플레이어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데, 좀보이드가 준비해둔 구멍이 너무 좁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정식 출시되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때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배너로드 출시일 이후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죽여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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